발은 가려 딛고 눈은 천지를 뛰어 다니네제792호 눈과 비가 함께 내렸다. 눈비 또는 비눈은 농밀한 안개 사이를 잘게 헤집고 지구로 낙하했다. 눈비 머금은 안개는 폐를 지그시 눅인다. 폐의 수많은 꽈리들은 어머니 양수에서 보낸 열 달을 기억한다. 수중 호흡의 유전자는 건조한 공기 대신 축축한 물기를 맞이하며 설렌다. 깊은 호흡을 시작한다. ...
기관총이 열어젖힌 ‘학살의 시대’제792호 1894년 10~11월, 일본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같은 해 6월 말에 집권한 개화파가 조선왕조의 기본틀을 흔들 만한 대변혁을 한창 실행하고 있었다. 양반에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과거제가 폐지되는가 하면, 상인·지주들의 편의대로 일체 조세를 금전으로 상납한다는 조세금납제가 결의되고, 부자의 재산...
초혼의 해제792호 2010년은 초혼(招魂)의 해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린 일대 사건들이 100주년, 60주년, 50주년, 40주년, 30주년을 맞는다. 역사의 회오리에 휘감겨 아프게 이 땅의 생을 마감했던 영혼들을 다시 불러내 기려야 하는 날들이 우리 앞에 즐비하다. 2...
[블로거21] 10년제792호 10년이다.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그 시간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지나 있었다. 우연찮게 입사 10년에 맞춰 하게 된 한 달 휴직이 아니었으면 이마저도 모르고 지나쳤을지 모른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불안과 희망의 교차로 시작해, 먼 나라에서...
할머니의 냉면제792호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온 하늘과 땅을 얼어붙게 하고 머리가 띵해질 만큼의 혹한을 은근히 기대할 때가 있다. 그런 날마다 발동하는 기이한 식욕 때문이다. 식욕이 향하는 대상은 냉면이다. 단 여기서 냉면이라 함은 갈빗집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새콤달콤 국물에 고무줄 면발을 말아 내는 공장제 냉면을 가리키는 …
[부글부글] 걸면 걸리는 빵꾸똥꾸 2009제792호 ‘걸리버’를 아시는가. ‘안 터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휴대전화 단말기 걸리버가 내세운 건 통화 품질이었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반지하만 내려가도 휴대전화 단말기에 표시되는 수신감도 안테나가 뚝뚝 떨어져 짜증을 유발하기 일쑤였다. 걸리버의 광고 카피는 이런 불만을 파고...
“응원이 기적을 만들어줬어요”제791호 온두라스에서 살인 혐의를 쓰고 석 달째 수감돼 있던 한국인 한지수(26)씨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 12월3일 현지 법원에 낸 ‘예방조처 변경 신청’이 14일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우리로 치면 ‘구속 적부심’으로 풀려난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보석금 1만달러를 내고 가석방됐다”며 “앞으로 불구속 ...
악마라는 ‘종족’은 태어나는가제791호 수십 명의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원래는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어떤 계기로 변해서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지르게 된 걸까. 아니면 날 때부터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존재일까. 양쪽의 견해는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개 자기만의...
착한 이별제791호 일본에 ‘1세기 캘린더’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100년분, 3만6500여 일을 신문지 2배 크기에다 빽빽하게 인쇄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발매 금지됐단다. 이유는 그것을 바라보다 자살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1세기 캘린더’는 묘한 힘을 가졌는데, 그 무수한 날들을 보노라면 나도...
나쁜 사람 미란다제791호형사사법 절차와 관련해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 가운데 하나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미란다 대 애리조나 사건’(1966) 판결이다.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을 확립한 판결이다. 이후 미국은 물론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피의자는 묵비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누리게 됐다. 이 재판의 피고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