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의 더 나쁜 동기제825호후배 기자 J는 참 올곧다. 너무 올곧은 나머지 아주 간혹 고지식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 J가 ‘위장전입’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무렵, 어머니가 잠시 주소를 옮기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단다. 길 하나만 건너면 배정되는 학교가 달라지는데, 어머니는 길 건너편 학교가 마음...
“죄 없는 식민지화는 없다”제824호 기억에 관한 실험 가운데 인상적인 게 있다. 정상인과 기억상실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다. “당신은 지금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서 있습니다. 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 3분간 상상해보세요. 뭐가 보이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정상인은 별문제 없이 미래를 상상했지만, 기억상실증 환자는 미래를 상상하는...
테러범에겐 법정이 필요 없나제824호에너미 컴배턴트(Enemy Combatant). 9·11 사건 이후에 미국에서 유행한 용어다. ‘적 전투병’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이 말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9·11 사건에 연루된 용의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문제됐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범죄 혐의를 받고 체포되면 ‘피...
[블로거21] 막걸리가 된 등록금제824호 1989년 가을, 한 학기를 마치면 졸업이었다. 집에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등록금을 보내셨다. 마지막 등록금이어서일까. 매번 어렵게 마련해 가까스로 등록을 하곤 했는데 맘이 든든하고 배가 불렀다. 안 먹어도 배부르단 얘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인조인간 시대제824호에버랜드에 갔다. 수년간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던 그 울렁거리는 추문의 진원지에, 아이 손을 잡고, 삼복더위를 헤치며 갔던 건, 차마 썩힐 수 없던 선물받은 ‘자유이용권’의 압박. 하루 종일, 그 희한한 세계를 탐험하며, 지금 내가 겪는 것이 고통인지 기쁨인지 잘 구분가지 않는 포스트모던한 놀이공원의 ...
[와글와글] 판사님은 막말도 훌륭하게?제824호 과거(科擧)는 말 그대로 ‘과목별로 사람을 들춰낸다’는 뜻이다. 위진남북조시대를 종식시키며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관리를 중용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다. 지방 귀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 전에는 ‘구품중정제’ 등 천거가 관리 채용의 중심이었다. 한반도에선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신라…
정이 없는 세상, 정의 없는 세상제824호1. 얼마 전 출근길 버스 안에서 목격한 일이다. 나란히 위치한 일인용 좌석의 앞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뒤에는 남성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고, 한동안 통화가 이어졌다. 노인은 목소리가 좀 큰 편이어서, 대개 조용한 아침 시간 버스에서는 다른 승객들의 신경을 다소 불편하게 ...
17년 만에 살아난 상지대 괴담, 김문기 재단제823호 이빨에 엉겨붙은 엿가락처럼 끈질기게 질퍽거린다. 더위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진광장(41)씨의 코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른다. 그의 왼쪽엔 대학생, 오른쪽엔 교수들이 앉아 있다. 모두 축 늘어져 있다. 폭염을 면할 가망은 없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 담벼락엔 그늘이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제823호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우리는 시험장에 나설 아이들 한명 한명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간절한 기도를 바친 뒤, 뭉툭한 찹쌀떡을 포크로 찍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날이 밝으면 대망의 검정고시 시험일.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본격적인 고시 수업이 시작되기 전, 마자렐로 센터에서나 유래를 찾을...
조카는 유족이 아니다?제823호“김정환을 특별법 제17조에 의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함.” 단 한 문장이었다. 통지서를 받아든 김주명(61)씨의 눈에 물이 고였다. 2010년 5월26일,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삼촌인 김정환씨를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로 인정했다. 유품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삼촌의 강제동원 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