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구하기제833호“아빠가 나쁜 일도 한다는 걸 너는 몇 살 때 알았어?” 얼마 전 외국 영화인가 드라마인가를 보다가 들은 대사다. 작품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대사가 튀어나온 맥락은 더더욱 오리무중인데, 유독 이 대사만큼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아, 아이들에게 그런 순간이 있겠구나. 철이 든다고 해야 할까, ...
지하 3m, 도시를 살리는 노동의 시궁창제833호 80kg짜리 대형 맨홀의 뚜껑은 열려 있었다. 그 주위로 빨간색 안전봉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공사 트럭이 서 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한 쇼핑센터 인근 도로 한쪽. 철제 사다리가 맨홀 아래로 놓여 있다. 가끔 봤던 작업 현장, 그러나 가본 적 없던 3m 땅 밑으로 내려갔다. ...
서러워 울지 마라, 골리앗 노동자제833호 30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장비운영부 기계정비팀 김석진(50)씨는 유령이 됐다. 70여 명이 그 앞에서 침묵한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반장이 그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곳은 동료들이 없는 구석이다. 파손된 기계를 용접하고 그라인딩...
곰팡이꽃과 함께 사라진 그 맛제833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따위가 있다면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말하는 법도 있을 게다. 정말 그런 법이 있느냐고? 피에르 바야르라는 프랑스 교수님이 그걸 안다고 나섰단다. 그가 쓴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나는 읽지 않았지만, 제목 그대로 내가 ...
말하지 않을 자유제833호 대만에 가면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패싱’(Passing)하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대만 사람으로 간주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편의점에서 물건을 골라 점원에게 내민다. 점원이 중국어로 무언가 말해도 대충 ‘생까고’ 계산대만 쳐다본다. 찍힌 숫자를 보고 돈을 내민...
식당에서 ‘개념고객’ 되는 법제833호 ‘이모’가 좋을까 ‘여기요’가 좋을까? 지난 10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가 마련한 펼침판에는 ‘식당 노동자를 부르는 호칭, 어떤 것이 좋을까요?’란 질문이 적혀 있었다. 머뭇거리던 한 시민이 ‘이모 대신 고모’라고 적어넣어...
10대 피의자, 잔인한 자백의 추억제833호소년은 말수가 적었다. 그 말은 어눌했다. 저 혼자 록 음악을 들었다. 드럼을 좋아했다. 절도범으로 몰리기까진 “경찰서를 쳐다본 적도 없다”. 소년은 편지를 썼다. “엄마 여기 들어와서 갑자기 드럼이 싫어졌습니다. 아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였나 봅니다. …엄마, 나 없어도 고생하지 마요. 그리고 (군 복무 중인...
노역하라, 복의 근원이 될지라제832호 지난 10월13일 전북 전주의 A고등학교. 밖에서 보는 학교는 낡고 위태로웠다. 195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가파른 계단 사이로 어지럽게 배치된 교실은 달동네 가건물을 연상시킨다. 산을 등 뒤로 끼고 선 학교의 외벽 페인트는 노숙인의 각질처럼 뜯겼다. 배면을 지탱하기 위한 시멘트 옹벽...
졸업장만 주는 학교?제832호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국에 58곳이다. 초·중·고등 과정을 포함한다. 하지만 10월 현재 수치는 교육과학기술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학력인정시설의 현실, 또는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 수준과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교과부 실무자는 전북 ...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병법의 거짓말제832호 동아시아 전통사상에 대한 한 가지 흔한 미화는, 특히 유가 사상을 가리켜 ‘평화 지향적’ 또는 ‘평화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전쟁으로 멍드는 세상을 바로잡아 백성을 안업(安業)하게 하려던 공자나 맹자는 불필요하거나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전쟁을 반대했다. 그러나 공자는 ‘의로운 전쟁’(義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