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녹았지만 봄은 아니다제953호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았다. 새 생명이 돋아날 대지 위로 묵직한 전차의 무한궤도가 지나가면 깊게 팬 황토 위로 흙탕물이 모여든다. 군화 밑창에 달라붙은 질퍽한 진흙 더미가 병사들의 발길을 움켜잡는다.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열리고 있는 3월14일 오전, 경기도 파주의 한 훈련장에서 한국군의 박격포 훈…
소록도가 서럽지 않도록제952호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 서정주의 짧은 시 ‘문둥이’에는 아름다운 언어 속에 한센인들의 공포와 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한센병은 완치 가능하고 한국에서는 거의 발병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명은 펄떡거려라제952호겨울잠이 덜 깬 3월의 이른 봄, 경북 영덕의 오십천과 울진 왕피천 등지에 은어 몇십만 마리가 풀려나왔다. 은어는 9∼10월 강에 산란을 한 뒤 바다로 돌아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면 태어났던 강으로 돌아와 일생을 마친다. 그래서 예로부터 은어는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전령사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 개발로 ...
돼지가 삼겹뿐일까제951호한돈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룟값은 올라가는데 돼지고깃값이 몇 달째 급락하고 있다. 전국 평균 경매 낙찰가는 kg당 2900원, 지난해 같은 기간에 5천원이 훨씬 넘게 팔리던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구제역 여파로 생산량이 줄어들자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며 돼지고기를 다량으로 수입한 ...
섬마을 대동굿제950호 아침 일찍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가니 마을의 당집이 위치한 곳이다. 마을 남정네들이 새벽에 갓 잡은 소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릿한 냄새는 해체한 소에서 나온 피 냄새였다. 쇠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굽고, 솥단지에서는 갈비탕이 끓고 있었...
타임아웃 직전의 남자들제950호 0 대 1로 지고 있던 김성권(왼쪽·한국체대) 선수의 입에서 갑자기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상대방 선수의 몸과 부딪혀 김성권 선수의 윗입술이 찢어진 것이다.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간단히 지혈을 마친 뒤 경기 재개 의사를 물었다. 김성권 선수는 경기를 다시 하겠다고 했고, 바로 ...
봄이 온다제949호아직은 날 선 바람이 등을 시리게 해도 어느새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다. 추운 겨울 동안 웅크렸던 만물이 새봄을 앞두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계절.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제주와 땅끝마을 바로 아래의 전남 완도 들녘에는 새 생명이 툭툭 터지는 소리가 가득하다. 늘 그렇듯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
회장님, 창문 밖을 보세요제949호두 명의 해고노동자 여민희(39·왼쪽)·오수영(38)씨가 눈이 잔뜩 쌓인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복직투쟁이다. 이들이 돌아가려는 재능교육의 본사는 도로 건너편에 있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다. 종탑에서 바라보면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
봄에 젖다제948호입춘을 사흘 앞둔 2월1일, 서울 여의도 샛강공원의 버들강아지가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며 활짝 피어나 싱싱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강추위로 전력난까지 겪었던 겨울이 어느새 떠날 채비를 하는 듯하다. 기상청은 2월 초·중순엔 대륙고기압과 저기압의 영향으로 날씨 변화가 잦겠고, 기온과 강수량은 평년 수준을 유…
‘왕언니들’의 새로운 청춘제948호 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1월26일 저녁,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찜질방에서 열린 노원구민 신년음악회. 티아라, 브라운아이드걸스 등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가 흥겹게 울려퍼지고 이에 맞춰 60살을 넘긴 할머니들이 군무를 펼치며 관객의 흥을 돋운다.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할머니들의 평균연령은 65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