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응원제786호 11월의 첫날, 달리기 좋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트릭 오어 트리트”를 외치며 사탕을 ‘삥 뜯고’ 어른들은 일탈 의상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핼러윈이 도시를 훑고 지나간 다음날, 혹은 ‘데이라이트 세이빙’ 기간이 끝나 얼결에 1시간을 얻은 듯 기분이 좋았던 밤이 지난 직후. 뉴욕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
숨이 끊기기 전 이미 인간으로서 죽었다제786호10월28일, 그러니까 용산 재판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구형된 날에, 나는 김훈의 신작 <공무도하>(문학동네 펴냄)를 읽고 있었다. 당대를 다루는 소설이었지만 김훈은 여전했다. 지상에서의 삶은 문명이나 이념 따위와 무관하게 약육강식의 원리로 이루어지고, 인간의 시간은 역사나 ...
잘 놀아야 잘 뛴다제786호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은 무엇을 하면서 놀까?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그들의 여가생활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선수들 중에 고액 연봉자가 많다 보니, 지브릴 시세(파나시나이코스)와 윌리엄 갈라스(아스널)처럼 고급차 튜닝과 시계 모으기 같은 돈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이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
내 인생 가장 쓰라린 닭볶음탕제786호 공자는 음식을 먹을 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食不語) 음식 맛을 제대로 알고 먹은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나는(아마 다른 많은 이들도) 누구와 먹느냐,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도 음식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들 땐 상대가 맛있게 먹고 행복해지기를 바라...
비구름 뒤덮인 능선들, 먼 천둥소리제786호 단풍 관광객이 몰려든 고속도로 위에서 우울한 소식을 듣는다. 정부가 기어코 4대강 물줄기를 틀어막고 강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뉴스에 심사가 복잡하다. 산을 사랑하는 이라면 오늘의 삽질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몸으로 안다. 손톱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오만상을 찌푸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하물며 수천 년 …
‘누아르 한국’을 소독하다제786호 같은 폭탄주라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술자리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나는 ‘5부, 4부 폭탄주’(맥주잔에 맥주 50%, 양주잔에 양주 40%를 따라 섞는 것)를 좋아한다. 그걸 여럿이 돌려 마시면 적당한 취기가 오래 유지돼,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된다. 술맛도 좋다. 그 반대편에 ‘텐텐 폭탄...
[블로거21] 비 오는 강가에서제786호 욕망이 과하면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지난 주말 나의 경우가 그렇다. 토요일부터 내 머릿속은 낚시하러 가고 싶다는 열망에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일이 있어 바깥에 나가는 바람에 나는 집에서 아들놈들을 돌봐야 했다. 낚시를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욕망에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9시 ...
미국, 그래 너희가 이겼다제785호 한국과 미국의 시차가 줄었다. 문화적 시차 말이다. 따끈한 미드(미국 드라마)가 한국에 ‘동시 방영’되고 있고, 미국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국판’이 전파를 탔고, 가요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와 발맞춰간다. 물론 미국의 대중문화 지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차 대전 이래로 유럽부터 한국까지 미국화(Amer...
소수자들의 이유있는 ‘미드’ 선호제785호 한국 케이블엔 두 개의 핑크 라인이 있다. 하나는 여성의 상징색 핑크,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의 상징색 핑크다. 한국의 지상파가 성소수자에게 하나의 색깔만 나오는 흑백 TV라면, 케이블은 게이와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도 가끔은 나오는 ‘무지개 방송’이다. 여기서 미국 드라마(미드)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
유럽을 공습한 ‘아메리칸드림’제785호 올해 여름 학회 참석차 들렀던 독일 쾰른의 풍경은 나를 다소 놀라게 만들었다. 미국식 카페로 단장해 있는 하이스트리트에서 뉴욕이나 서울과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 처음 독일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런 변화는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