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폭설 바보들제794호 경인년 하얀 호랑이의 첫 호령은 굉장했다.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 하늘을 뻥 뚫어버리더니, 쏟아지는 폭설로 이 나라를 실신시켜버렸다. 골목길의 자동차들은 사이좋게 흰 이불을 덮은 채 얼어버렸고, 전철역에 몰려든 직장인들은 사람 더미가 눈 더미보다 무섭다는 걸 깨달았고, 신년 인사로 배달되던 생태 선물세트는 …
[KIN] 〈국경을 넘으니 시가 사진이 되었다〉외제794호국경을 넘으니 시가 사진이 됐다박노해의 사진전 ‘라광야전’ 시인 박노해가 사진가 박노해로 돌아왔다. 평화활동가로 10년 동안 중동 분쟁국가를 떠돌아다닌 그는 그곳에서 만난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을 펜 대신 카메라로 기록했다. 시인이 사진가로 변신한 이유는 간단하다. “국경을 넘는 ...
사람 사는 곳 어디나제794호 지난 4개월간 하루하루가 모험이었다. 은행 계좌를 열고,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집세를 내고, 빨래방에 가는 것까지 낯설고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상적인 파티 초대에도 오만 가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몇 시까지 어떤 차림(!)으로 도착해야 하는지, 준비물(!!)은 무엇인지 등등. ...
이승훈·이상화 ‘밴쿠버의 별’로 뜰까제794호 한국은 올림픽에서 양궁, 태권도, 배드민턴, 레슬링, 핸드볼 등 비교적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그러나 겨울올림픽 메달 획득 종목은 편식이 심하다. 지금까지 겨울올림픽에서 모두 31개 메달(금 17개, 은 8개, 동 6개)을 땄는데, 금메달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한 종목뿐이다. 메달을 획득한 전체...
불안을 잠식하는 과자제794호 대학 시절 하숙 생활을 2년쯤 했다. 두 사람이 한방을 쓰면 위계가 생긴다. ‘방장’이 있고, ‘방졸’이 있다. 나는 항상 방졸이었다. 이상하게도 방장은 늘 고시준비생이었다. 첫 방장은 사법고시생. 그는 밥 먹을 때마다 후루룩 쩝쩝 음냐음냐 소리를 냈다. 더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두 번째 방장도 사법고시...
옛날식 미남의 게으름제794호 미남이었다. 옛날식 미남. 이마와 눈매가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그레고리 펙을 닮았는데 눈이 그보다 컸다. 눈빛이 반짝거렸고 약간 각진 턱선에선 결기와 과단성이 읽혔다. ‘투사+지사’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려대 법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갔다 왔다고 했다. 김의...
그건 절망 아닌, 계속해서 쓰게 하는 힘제794호 당선자의 노래 없이 한국의 새해는 오지 않는다. 대중은 문학을 무장 외면한다 할지언정, 반도는 신춘문예를 축제 삼지 않고 어느 해도 새로 맞을 수 없다. 아침 신문을 펴들고, 새 문사들이 갓 알을 깨기까지 불면하고 낙망했던 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희망에 제 삶을 결박하는 애절함에 격동한다. ...
라디오 무한도전!제793호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1980년대 초, 영국의 팝그룹 버글스는 노래로 라디오의 슬픈 운명을 예견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라디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다. 텔레비전에 밀려도, 인터넷에 치여도 라디오는 ...
스물아홉 성장통이 짠하네~제793호 어느 날 서른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황하보다 넓은 강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둘 사이에는 단지 ‘하룻밤’이 존재할 뿐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르지 않듯, 스물아홉과 서른은 그리 다르지 않다. 유일한 차이라면 연령 제한...
인지과학이 도착한 맹자와 대승불교제793호 책을 읽는 중요한 목적이 배움이라면, <윤리적 노하우>(갈무리 펴냄)는 제목부터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다. 조합은 새롭다. 윤리적 노하우? 노하우가 ‘기술’이나 ‘비법’을 뜻하는 말이니 윤리적 행위의 기술이나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말일까? 힌트가 되는 건 ‘윤리의 본질에 관한 인지과학적 성찰’이란 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