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의 노래 없이 한국의 새해는 오지 않는다. 대중은 문학을 무장 외면한다 할지언정, 반도는 신춘문예를 축제 삼지 않고 어느 해도 새로 맞을 수 없다. 아침 신문을 펴들고, 새 문사들이 갓 알을 깨기까지 불면하고 낙망했던 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희망에 제 삶을 결박하는 애절함에 격동한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시·소설·희곡만 치더라도 한 해 20명(<세계일보>는 희곡 없음)이 ‘문사의 영광’을 얻는다. 경인년 정월 초하루 울려퍼진 당선자의 노래만 스무 곡이 되는 셈이다. 환희로 사회는 가득한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한겨레21>은 누구도 청하지 않던 ‘낙선자의 노래’를 켜려고 한다. 당선자가 한 명이면 그 부문 최종심에서 심사위원을 지분거린 이가 서넛이다. 하지만 결과나 그에 따른 처지는 ‘극적’일 만큼 다르다. 축복의 반대말은 저주가 아닌 외면이요 무관심임을 이들이야말로 문학적으로 증명한다. 
 8명을 초대했다. 중앙일간지 2곳(<경향신문> <서울신문>)과 지방지 1곳(<부산일보>)의 시·소설 부문 최종심에서 쓴잔을 들이켠 이들이다. 2010년 1월1일 희망을 권면하는 각 신문 심사평의 소품으로 등장했다 찰나로 사라졌다. 하여 ‘새해 첫 루저들의 축제’가 된다. 
“지난해 12월24일까지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다가 연락이 없어 충전도 하지 않았어요. 1월4일 뒤늦게 인터넷을 뒤지다가 신문 기사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곤 ‘어느 놈이 내 이름하고 똑같지?’라고 중얼거렸어요. 신춘문예는 저한텐 역병이에요. 때만 되면 심장이라도 바싹바싹 씹어먹을 지경이 됩니다.”
 ‘작품’을 쓰며 심장의 절반을 태우고, 결과도 나오기 전 당락을 짐작하며 남은 절반을 먼저 태운다. 결과를 들었을 땐 이미 가슴 없는 자가 되어 멍할 뿐이다. 손현승(38)씨는 그 고통을 10년째 견뎌내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이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접고 기업체에 다니다 공무원이 되었다. 모두 ‘시 쓰기’를 병행하려는 계산이 있었다. 막상엔 바쁘기만 했다. 첫 최종심의 기억은 2000년으로 거슬러간다. <한국일보>였다. “이제는 되겠지 생각하면 시는 달아나고, 이젠 정말 발을 빼야겠다 생각하면 시는 다가왔어요.”
 최종심 낙선은 절망이자 치명적 유혹이다. 당선이 아른거린다. 게다가 글에 투영한 제 삶은 반송되었으나 현실은 그대로다. 오영이(43·필명)씨는 지난 한 해 ‘고3 엄마’였다. 되짚어보자니 단편소설 넘기듯 2009년이 지나갔다. 아들은 인문계 고등학생 중 가장 먼저 귀가하는 ‘문제아’였다. 오토바이에 생을 맡긴 속도광. 아침에 학교까지 태워다주면, 엄마가 차를 빼기도 전에 교문을 나가버린다. 새벽마다 집 앞 8차선 도로에선 폭주족 무리의 굉음이 죽음의 차선을 긋는다. 새벽 서너 시 바람 냄새를 묻히고 오는 아들을 엄마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무면허로 잡히거나 다칠 때, 경찰서로 응급실로 달려갈 뿐이다. 그것은 차라리 안전하다는 신호다. 달려가고 달려간다. 
 오씨는 말을 이었다. “그런 아들을 밤마다 기다리는 엄마로서 무얼 할 수 있었겠어요. 아들이 어디선가 쓰러져 있을 것만 같아 피를 말리던 시간들, 전화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던 그 고통의 시간을 소설을 쓰면서 버텨왔어요. 아들을 이해하려고 시작한 게 이번 <부산일보>에 응모한 ‘터널’입니다. 그리고 난 떨어졌지만, 아들은 어렵사리 지방대학에 합격을 했네요.”
 그는 오래전 이혼을 했다. “가난한 싱글맘”이다. 9년째 신춘문예에 응모 중이다. 문제될 게 없다. 더 긴 세월 동안, 전남편은 글 쓰는 것을 싫어했고 아들은 싫어한다. 오씨는 “소설을 통해 (삶의 문제를) 많이 치유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티켓다방 여고생, 매춘 노인 등 더 큰 좌절과 결락으로 가득하다.
신춘문예 낙선자들의 노래.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쉰 살 정아무개씨는 병을 앓고 있다. <부산일보> 소설 부문에 응모했다. “간과 폐가 안 좋아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작품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다. 그는 “가면의 시간을 살아온 나 자신을 이제라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로소 커밍아웃을 한 셈이다. 생애 첫 투고였는데 최종심에 올랐다. 물릴 수 없는, 글쓰기와의 연애마저 시작된 셈이다.  
 낙선자에 대한 심사평은 인색하다. 매섭다. 올해 <경향신문> 시 부문에서 떨어진 이현미(31)씨는 “내려놓기 아쉬운 분들” 가운데 한 명으로만 언급되었을 뿐이다. 지난해 <동아일보> 최종심과 닮았다. 당시엔 “이 밖에 선자의 관심을 끈 응모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씨는 “절망이라기보다 희망고문”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이에겐 경외의 대상이다. 실제 <경향신문> 시 부문 전체 응모작은 5450편이었다. 1인 평균 5편만 쳐도 1090명. 그 가운데 4명만 최종심에 있었다. 
 한 줄로 충분하다. 절망은 벼려지고 희망은 견고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새해 첫 절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과거 한 차례 이상 최종심에서 낙선했다. “상투적인 표현이라는 평가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고, “신인다운 패기가 부족하다는 말이 여전히 아프게 꽂혀 있다”. 아예 작품명만 언급된 경우도 있다.
 2000년 첫 최종심에 올랐던 손현승씨는 마법에 걸린 듯 10년이 훌쩍 갔다. “이후 어느 신문 귀퉁이에서도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는 그는 “(이번 최종심으로) 10년 만에 팬티를 갈아입은 기분”이라며 웃는다. 
 
 중견 시인 나희덕(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씨는 1989년 <중앙일보>에 응모했다. 첫 신춘문예 도전이었다. “혼자 글을 쓰는 게 외롭고 막막했다.” 대학 졸업 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때다. 시인은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문학과 자신이 만나는 정황이 중요하지, 작가로서의 사회적 레테르는 부차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문학적 토대를 넓게 쌓는 게 중요한데, 얼떨결에 등단해서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대중의 평가나 제 욕망과 능력의 괴리를 직면해야 하는 진정한 단독자로 벌판에 서야 한 까닭이다. 
 사내들은 매일 포장집 비닐을 들춘다 뒤통수 맞은 듯 어정쩡한 얼굴로 들어와 선 채로 잔술을 청한다 어둠, 저 많은 까마귀를 낳고도 푹푹 살이 찌는 엄마, 날지 못하는 갈매기의 흰 배를 훔쳐본 날처럼 나는 주먹을 쥔다 늙은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듯 양수를 퍼내온다 사내들은 비대칭이다 왼쪽의 근친과 오른쪽의 군침이 다른 모습이다 마주 보지 않은 채 엄마의 동공을 통해서 상대의 반대쪽을 확인하고 있다 사내들이 엄마에게 무정형의 신호를 보낸다 먹고 싶어, 줄래? 엄마는 뒤 돌아눕고 나는 칼을 준비한다 바지춤을 내리며 전진하는 사내들, 엄마가 칼로 몸에 거미줄을 그린다 다리에 줄무늬 스타킹을 그린다 탕탕 머리를 쳐박고 까악까악 시체를 파먹는다 사내들은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있냐는 듯 탁탁 잔을 놓고 사라진다 
 
 엄마 곁에 앉아서 엄마라는 희귀병을 본다
 -이현미, ‘엄마가 울면 엄마의 심장을 때려야 한다’ 전문
 
 당선이 곧 희망을 뜻하지도 않는다. 소설가 방영주씨는 “신춘문예 당선 뒤 막상 원고 청탁 하나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등단 뒤 학원강사를 하거나 다른 직장생활에 치여 글을 못 쓰는 이들이 주변에도 있다”고 말한다. 이승하 시인은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자만 따져도 80~90%는 2~3년 안에 잊혀진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른바 ‘신춘 고아’ ‘문단 미아’다.
 작가 지망생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다. 문학은 이를 ‘중독’이라 이른다. 오영이씨는 2008년 <한국소설> 신인상 최종심에 오른 5편 가운데 2편이 제 것이었다. 당선만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는 “안 아픈 척하면서 정작 얼마나 아픈지 말할 수 있어 소설이 좋다”고 말한다. 아니, 이미 소설을 살고 있다. 처음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2002년 직접 신문사에 원고를 냈다. 기자가 서류봉투를 책상에 툭 던진다. “소설 속의 덜떨어진 여자 하나는 낯선 곳에 버리고 가는 느낌”에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 앓아누웠다.
투고를 통해 ‘작가’임을 확인한다
 
 최아무개(31·필명)씨는 지난 1월5일 문예지에 또 다른 응모작들을 보냈다. <경향신문> 시 부문 심사평을 뒤늦게 읽은 날이기도 하다. 중학교 교사인 그는 “최종심에 오른 내 이름은 절망이거나 좌절이 아닌, 계속해서 쓰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글판을 떠날 수 없다. 밤낮으로 취해 있다. ‘왜 글인가’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란 질문과 같다. 정아무개씨는 “글을 잊은 지 30년 만의 유희”라며 “성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전업주부 강가영씨는 신춘문예 첫 도전지로 <부산일보>를 골랐다. 응모란에서 유일하게 생년월을 묻지 않아서다. 시 부문 최종심까지 올랐다. 50대라고만 자신을 소개한 강씨는 “도전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며 축제”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새해 첫 절망에 이들은 되레 감사한다. 찰나지만, 존재 증명이 올돌한 덕분이다. 이현미씨는 2008년 <창작과 비평> 신인문학상 시 부문 최종심에 올랐다. “시를 쓰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등단한대도 이만큼 되진 않을 거라 확신한다.” 심사평이 실린 문예지를 사려고 서점 몇 군데를 헤집었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해요. 누군가 나를 알아봐준다는 기쁨이었죠. 심사평을 달달 외울 정도였는데, 그때 시는 고쳐서 다른 곳에 응모도 하지 않고 보관 중이에요. 등단을 하게 되면 제 첫 발표작이 될 겁니다.”
 
 신산의 기억도 달다. 기억엔 “글 한 줄 못 쓰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서럽게 울다가 메모장을 꺼내 애먼 제 이름만 까맣게 써내려갔던 일”(김승원·<부산일보> 시 부문) 따위 창작의 고통부터 “밤새 열 편을 쓰기도 하고, 1년에 한 편을 쓰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되려니… 아니 20대 중반을 넘기지는 말자, 그러다 취직을 하기 전에, 결혼을 하기 전에, 아이를 낳기 전에 등단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최아무개)는 삶의 무게도 자리한다. 
 “글을 쓰고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상 결혼 같은 건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이 가끔 괴롭히지만 귀를 막고 있어요. 모든 게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려면 많은 것들을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향신문> 소설 부문에서 떨어진 유이지안(39·필명)씨의 말이다. 20대 전부를 은행원으로 보냈다. 글을 쓰고 싶어 그만뒀다. 5년째 등단에 도전 중이다. 
 세상은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과 같다. 진짜 같은 건 어디에도 없고, 진짜를 흉내 낸 사진 같은 것들이 걸려 있을 뿐이다. 아저씨의 신념은 언제든지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블록 같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를 향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유이지안,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 일부
 
 “당선자만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에서, 낙선자들의 이야기를 싣고 싶다”는 농담 섞인 취재 요청에 낙선자들은 모두 웃었다. 하지만 <세계일보>와 <한국일보> 최종심 낙선자에겐 물을 수조차 없었다. 전화번호도 관리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낙선자는 잊혀져야 하는 이름이다.  
 낙선 기간이 길수록 희망과 절망이 어찌 교차할지 알 수 없다. 이현미씨는 “한 10년쯤 더 낙선자로 머무른다면 그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도전 10년차 손현승씨가 대답한다. “당선이 되었다고 시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선이 안 됐다고 시인이 아닌 것도 아니죠. 다만 예전처럼 내 시가 최고라는 자만심을 버리려고 합니다. 시를 쓰는 만큼은 나를 스무 살 청춘으로 돌려놓는 신춘문예가 그저 고맙지요.”
 9년차 오영이씨도 말한다. “아홉 번이나 투고를 한 건 1년에 한 편이라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낳자는 뜻이 있어요. 해마다 열병을 앓는 작가들 틈에 끼어 자극을 받고 싶어요. 투고를 통해 정체성이 찾아질 것 같고, 스스로 작가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거든요.”  
 단 하나의 진리는 절망도 희망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최종심의 경우 심사위원들의 선호도에 따라 갈리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실제 올해 <경향신문> 시 부문 최종심 낙선자 강윤미(31)씨는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한국일보> 시 당선자 김성태(24)씨는 <조선일보>에서 떨어졌다.
 
“쉽게 희망에 도달하는 예술은 의심스럽죠”
 
 1월은 절망의 달이다. 취업 실패자, 신춘문예 낙선자, 입시 실패자가 쏟아진다. 그래서 새해 첫 절망자들이 부르는 희망가는 이름 없는 루저들에게 건네는 응원이기도 하다. 
 “나는 쉰 살이다. 또 중증의 환자다. 그래도 매일 글을 쓴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선에서 욕망의 임계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니 포기하자 말라.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 나보다는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어떤 선택이든 나는 당당해지고 싶다. 죽음 앞에서도.”(정아무개)
 “저는 쉽게 희망을 말하지 못하겠어요.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도 잘 안 해요. 쉽게 희망에 도달하는 예술을 보면 그가 가졌던 절망을 의심하게 돼요. 덜 절망했거나 타협하려 한다고 말이죠. 올해 실패한 입시는 내년에도 희망이 없을 수 있어요. 정리해고와 취업 실패는 자본주의가 극단화될수록 심각해질 거예요. 저는 영원히 새해 첫 절망자로 남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한마디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이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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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안도현의 습작 시절
 낙선을 축하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했습니다. 고3 때 쓴 시가 지역신문 심사평을 통해 최종심에 든 걸 보고 날아갈 듯 기뻤고, 시에 한층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그 무렵 <신춘문예 낙선 작품집>이라는 아주 두툼한 책이 나왔는데, 열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대구매일신문>에 시가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지라서 주변 지인들 말고는 아무도 시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청탁도 없었지요. 
 2~3학년 내내 응모했는데 해마다 최종심에 든 작품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같이 문학을 공부하던 친구나 선배들(지금 문학동네 대표로 있는 강태형 사장!)이 당선 통보를 받고도 발표 기간 동안 저를 위로하느라 숨겼던 일도 있습니다. 자취방 벽에다 당선소감을 미리 써놓고 의기양양했던 기억도 있고, 당선만 되면 갚겠다고 학교 앞 식당에서 외상술을 마신 기억도 있어요.  
 등단 전, 내 습작품은 대부분 신춘문예 마감일을 앞두고 마무리된 것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를 그때 끙끙대며 썼지요. 당시에는 매번 당선과 상금이 일차 목표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혹독한 수련과 연마라는 창작의 기본을 신춘문예로 인해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실제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는 낙선의 고배를 마신 시들이 여러 편 들어 있지요.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은 신춘문예 철이 되면 아예 ‘합숙’을 합니다. 11월 한 달 동안 집중적인 합평을 하더군요. 한 장소에서 같이 밥을 해먹으면서, 눈에 불을 켜고, 잠을 아끼면서 몰두를 하지요. 저는 옆에서 가만히 그걸 지켜보곤 합니다. 신춘문예가 아니라면 어디 가서 문학청년들이 그렇게 목을 맬까, 싶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니 저야말로 해마다 떨어진 아이들에게 ‘낙선주’를 삽니다. 낙선을 축하한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따라 단 한 편이 선택되었을 뿐, 낙선작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떨어지란 법은 없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당선이라는 횡재를 만나는 것보다는 ‘준비된 시인’이 더 오래,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지요.
 무엇보다 꼭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시간들이 이들의 문학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한 단계 높여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낙선’으로 더 강하고 단단한 이가 될 수 있다 확신하는 겁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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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