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여친, 남은 ‘뽀그리’제801호 좀 별꼴이다. 방금 칼국수를 저녁 식사로 두둑이 먹고 와 심야생태보고서를 쓰겠다며 인터넷에서 한 사진과 글을 보는데 군침을 흘려버렸다. 그러면서 나는 확신했다. 사진 속 음식이 언급되지 않고서 반도의 심야생태 지도는 완성되기 어렵다. 이 음식을 소개할 땐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 뽀그리다.” ...
사람은 빼고 이름만 남아라제801호 구룡령은 막혀 있었다. 산불에 놀라고 사람에 치인 탓이다. 깊고도 굵은 구룡령 고개 위에서 점점이 차단된 강원도의 산줄기를 보았다. 산은 사람의 길을 막지 않았건만 사람은 산의 맥을 짓누르고 끊어버렸다. 홍천에서 올라온 구름은 대간에 비를 뿌리고 양양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산꾼은 말없이 제 길을 따라가는 구…
별 보며 구워먹는 고기의 맛이란제801호 이제 봄이다. 추울 때면 나무늘보보다 게을러지는 천성 탓에 그간 베란다에 방치해둔 쓰레기를 입춘 맞은 기념으로 모처럼 내다놓았다. 터지기 직전까지 꽉 채운 5ℓ짜리 쓰레기봉투 5개를 전봇대 밑에 예쁘게 기대놓으며 생각했다. ‘아, 이제는 입김도 안 나올 만큼 따뜻해졌네. 조금 더 내버려뒀다면 베란다에...
수상한 부작용제801호 한국방송 <수상한 삼형제>가 20회 연장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 연휴에 감기 걸린 아이를 업고 시댁 가서 음식 장만하고 설거지하느라 몸살 걸릴 판국인데, 때맞춰 방송되는 이 드라마 때문에 화병까지 날 뻔했다는 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제목은 ‘삼형제’지만 <...
연렐루야, 꿈은 아니겠지요제800호 너무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정말로 한국 선수는 벽을 넘었다. 세계 피겨 지도에 흔적도 없던 한국에 정말 기적처럼 나타났던 김연아 선수는 그랑프리대회, 세계선수권대회의 벽을 넘더니 마침내 올림픽의 벽도 넘었다. 그렇게 그는 혈혈단신으로 세계 피겨 지도를 다시 그렸다.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완벽했던 김연...
아름다움이 ‘오만과 편견’을 꺾다제800호 그렇게 김연아는 승리했다. 우리 모두가 원하던 그곳으로 그는 올랐다. 13년간 얼음판에서 사춘기를 녹여낸 여성이 가장 높은 자리, 그래봐야 얼음판 위에서 1m가 채 안 되는 높이지만 승자의 모습으로 섰다. 그것은 단순한 금메달 하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승리의 표상이다. 그것은 바로 문화 강국 ‘그들만의 ...
평창도 성역을 깰 수 있을까제800호 장면 1. 2006년 2월19일 이탈리아 토리노 팔라벨라 빙상장.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천m에서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한 사내가 머리까지 덮은 유니폼 지퍼를 가슴팍까지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그는 흑인이었다. 샤니 데이비스(당시 24살·미국). 그는 감격에 겨운 듯 링크를 돌며 ...
재발된 표절 논란, 근본적 대책 세워야제800호 지난 2월23일 밤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라이브 클럽. 입구에 ‘인디권리장전’이란 공연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디음악계의 권리를 스스로 찾자며 모인 일곱 팀의 인디밴드가 무료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하지만 거창한 이름과 달리 공연은 변변한 구호나 부연 설명이 없었다. 더 크랙, 레스카 등 공연에 참여한 ...
온몸으로 세상을 향해 커밍아웃제800호 <밀크>는 하비 밀크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밀크는 미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정치인이었다. 1977년 그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다. 그리고 이듬해 암살당한다. 동료 시의원 댄 화이트가 그의 가슴에 총알을 박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지금도 지구촌 성소수자들의...
우리에게 리영희는 무엇인가제800호 지난해 11월26일, 경기 군포시 산본 자택에서 리영희 선생을 만났다. 팔순(2009년 12월2일)을 앞둔 선생과 인터뷰했다. 안수찬 기자와 동행했는데 안 기자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처음 봤다. 덩달아 나까지 2시간여 내내 허리를 곧추세우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과거의 위인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