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여, 욕망을 직면하라제887호 여성들이 야한 농담이나 영상을 즐기기 않는 이유는 야한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음담패설이나 포르노가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왜 여성이 즐길 만한 에로물은 별로 없을까? 여성주의 에로물의 필요성은 국내에서도 꽤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작품은 별로 없다. 10년 전 변영주 감독이 인터뷰에서 여성주의 ...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제887호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바람>을 보았다. 스크린보다 브라운관에서 더욱 사랑받았던 이 영화는 겉은 우악스럽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등학생 ‘짱구’는 거칠기로 소문난 부산의 상고에 진학해 ‘간지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한다. 불량서클에 ...
절로 무릎 굽히며 “공자님, 맹자님”제887호 얼마 전 여의도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럭셔리 답사여행’이 화제가 됐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등 3명이 중국 둔황석굴을 다녀왔는데, 일반 패키지 여행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둔황석굴을 전공한 한국인 전문가가 따라붙었다고 한다. 둔황석굴에 대한 현지 가이드의 ‘겉핥기’ 설명 대신 ...
너는 너, 나는 나제887호 가슴에 명찰을 달지 않고 머리에 빨강·파랑 띠로 구별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안다. 누가 누구를 무시하고, 누가 누구와 팀인지. 좌우상하를 가르는 차별의 지표들은 위성항법장치(GPS) 없이도 감지된다. 디자인은 이때 불평등에 저항하거나, 때론 무마할 수 있을까. 불평등에 휘발유를 뿌리는 일을 한다면 ...
‘장가를 간다’는 말에 담긴 역사제887호 “식후에 광선이 남원의 장인가로 돌아갔다. 광연과 어린 누이동생 봉례가 울어 눈물이 줄줄 흐른다. 형제간에 지극한 우애의 정이 어려서부터 나타나니 우리 집안의 기맥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당세의 명문장가인 유희춘(1513~77)이 쓴 <미암일기>에 ...
관객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나제887호 2차 희망버스 때 폭우와 최루탄이 섞인 물대포로 만신창이가 된 승객들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깨운 것은 ‘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의 공연이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무키무키만만수는 2차 희망버스 이후 희망버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서울 홍익대 앞 칼국숫집 ‘두리반’ 출신 ...
만화 살롱으로 초대합니다제887호 “저는 시골 출신이라 어릴 때 만화를 주로 담 밑에서 친구들과 봤어요. 집에서 한 권씩 빼돌려서 친구들과 숨가쁘게 돌려 읽으며 ‘야 빨리 봐’ ‘그다음엔 어떻게 됐대?’ 그러면서요. 함께 만화를 볼 때의 정서적 유대감을 요즘 아이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화가 김홍모(40)씨는 역시 만화가인...
‘비처럼’ 내조의 여왕처럼제887호 오후 5시, 남편 X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했어요. 회사로 무대의상을 가지고 와달라고. 사내 노래자랑 ‘슈퍼스타 H’에 출전한 X가 결선 리허설을 했는데 다들 의상이며 댄스며 준비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자기도 무대의상이라도 갖춰 입어야겠다는 것이었죠.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인데, 위기의식을 ...
혼을 빼놓는 개떡제887호 유명한 주방장은 대부분 남성이다. 길거리 음식에서는 반대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11월 말 늦은 밤 얼큰히 취한 채 어묵 냄새에 끌려 포장마차 휘장을 걷었다가 아저씨 얼굴을 보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저씨는, 더럽다. 이 무슨 무지막지한 남성차별주의냐고 따지지 말라. 나도 아저씨 해봐서 안다...
툭, 하고 던진 그 이야기제887호 어떤 작가·시인들은 책의 맨 앞이나 맨 뒤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 혹은 ‘시인의 말’과 같은 관행적인 장소에서도 관례적인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그냥 멋진 이야기 하나를 툭 던져놓는다. 작가 배리 기포드는 첫 단편소설집 <스타호텔 584호실>(최필원 옮김·그책 펴냄·2010)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