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의 정서제909호 1980년대 중반 무렵 우리 동네 엄마들 사이에 카스테라팬 공동 구매 바람이 분 모양이었다. 전기를 꽂아쓰는 엄청 커다랗고 깊은 프라이팬 같은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방석만 한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었다. 엄마는 계란과 우유와 밀가루를 쏟아넣고 빵을 구웠다. 그때 집에서 그 빵을 먹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
사랑이 꽃피는 태릉선수촌제909호 둘은 태릉선수촌에서 눈이 맞았다. 둘 다 잘해야 본전인 ‘고독한’ 골키퍼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서였다. 당시 선수들은 토요일 아침마다 선수촌 인근 불암산에서 크로스컨트리 훈련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부상 중이었다. 훈련을 거를 순 없었고, 걸어서 산에 올랐다. 둘이 이런저런...
이것은 테니스공이 아니다제909호 7살 때 내 보물 1호는 피아노였다. 종이인형이 시시하게 느껴질 무렵 여자아이의 미감을 한껏 자극하는 디테일들이라니. 부드럽게 새긴 양각 무늬, 새하얀 건반 위에 놓인 새빨간 융, 게다가 피아노와 의자를 덮고 있는 하얀 레이스 덮개까지. 그러나 며칠이 지나 피아노를 볼 때마다 울상을 짓게 되었...
짧은 생을 돌아나오다제909호 아버지가 쓰러지고 며칠 만에 살던 방의 보증금 1천만원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냈다. 그길로 은행에 가서 3년짜리 적금 상품에 가입했다.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었고,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나서 6개월이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적금에 들어가는 돈은 사실상 마이너스 대출의 일부였다. 그래도 해지하지 않았...
아들과 아버지 30년 만에 통하다제908호 수컷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싸움은, 아버지의 질서에 대적하는 아들 세대의 모반이다. 세대론 관점에서 풀이하면, 아들은 아버지 삶의 자취와 방식, 가치를 부정하는 세대 혁명을 통해 새 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해왔다고 할 것이다. 아버지 세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의 시대도 요원해지고 말리라는 세대...
청춘의 옷입기, 화려한 외출제908호 지난 4월2일, 우리나라의 대표적 패션 이벤트 중 하나인 ‘2012 추계 서울 패션위크’가 열렸다. 컬렉션 장소로 마련된 텐트 안에 펼쳐진 런웨이 속 모델들이 ‘하이패션’을 대변한다면, 컬렉션장 바깥에는 또 다른 런웨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옷차림을 곁눈질하며 대화하고 사진 찍는 2...
그 옷만은 제발!제908호Q. 남자도 예뻐 보여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차라리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그 남자’의 패션 센스! 옷장에 불이라도 질러주고 싶은 ‘워스트 드레서’는 누구입니까? A1. 포크음악가 ‘회기동 단편선’. 늪에서 건진 해초 같은 머리 스타일도 그렇거니와, 셔츠 단추를 세 개씩 ...
열 받을 때 최고의 처방제908호 직업이 인권운동가여서 그런지, 열 받는 일이 많다. 단지 술을 마셨다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현행범 체포나 구속까지 가능하게 만든 경범죄처벌법 개정안도 그랬다. 경찰은 벌써 10년 넘게 집요한 로비를 반복했다. 운도 좋아 그런대로 선방했지만, 총선 직전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국회는 일방적으로 경찰의 손을...
체 게바라, 경제를 혁명하다제908호 “회계 관리를 철저하고 정직하게 할 것, 절약할 것, 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노동규율을 엄수할 것 등 부르주아지가 착취계급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숨기기 위해 부르짖었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비판했던 슬로건이 부르주아지 전복 이후 곧바로 혁명운동의 슬로건이 됐다.”(레닌) ‘혁명의...
‘소팔 공주’와 함께 동춘서커스를!제908호 시작은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싶)다. 와잎의 친구 소팔이(가명·855호 ‘머리끄덩이와 엘레강스 사이’ 참조)와 태권이네 커플(가명·867호 ‘여친의 생쇼와 와잎의 만신창이’ 참조)은 초면인데도 잘 어울렸다. 하긴 프리미어 축구 애호가인 태권이가 박지성을 닮은 소팔이에게 친근감을 느낀 것은 너무도 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