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의 수레바퀴제961호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다. 간만에 부부가 마트 나들이를 갔을 때 큼직한 연어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회를 뜬 뒤 소맥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때웠다. 연어는 너무 컸다. 1kg이 넘는 불그스름한 살덩이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자신이 태어난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대신 식도를 역류할 기세랄까. 진격...
문 하나 열어놓은 만리장성제961호한 달 전 경찰이 보도자료를 내어 연인 사이의 이별 방식에 대해 한마디 했다. 일방적 이별 통보에 따른 사건·사고가 많은 모양이다. 어차피 이별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데,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라니 갑갑한 노릇이다. 오래전, 그녀의 집 부근 편의점에 들어가 가장 큰 커터칼을 샀다. 사람을 해하려고 산 것은...
다신 여기에 오지 않을 거야제961호머릿속 세계지도를 펼쳤더랬다. 그리 가본 곳도 없으면서. 유럽과 아시아 몇 곳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지명이 환기시키는 나의 기억들, 볕이라든가 공기, 어떤 사람들, 느슨한 대화, 기차의 흔들림, 버스 안의 막막한 냄새…. 한데 그게 다였다. 그건 여행이었고, 여백에 대한 의무감과 생존 ...
부활한 CK포, 따로여도 고맙다제961호“왜 이리 되는 일이 없나.” 좌절이 밥상을 두어 번은 뒤엎고 남을 분노로 치솟던 날,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마음을 붙든다. ‘SK 김상현, 투런포로 이적 설움 달랬다.’ 시즌 초 타율 1할대였던 김상현은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부진에서 벗어나겠다. 타율을 끌어올리겠다. 난 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
음악보다 봄 꽃보다 음악제961호이른바 ‘봄의 전쟁’이다. 꽃과 푸른 잔디와 시원한 그늘을 배경으로 하는 페스티벌의 이미지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비슷한 형식으로 한정된 향유층을 끌어와야 하는 각 페스티벌 사무국의 처지에서는 이 상황이 전쟁과 다름없을 것이다. 특히 석가탄신일이 낀 5월17일부터 연휴 기간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제960호<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은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47개월간 자국 캐나다의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네스북>을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는 총리에게 얀 마텔은 가장 작가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화예술과 고요한 ...
“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제960호햄릿이 ‘죽는 것은 잠자는 것’이라고 말한 이후, 잠은 죽음과 같은 시간으로 생각돼왔다. 꿈꾸는 일이 없다면, 죽음과 잠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의식의 중지와 망각으로서의 잠은 죽음에 대한 은유이며, 죽음의 예비적인 체험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다. 그 잠든 사람을 ...
강호로 돌아왔으나 민심이 예전 같지 않구나제960호핑, 퐁, 탁, 윽! 방송은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대사 없이 탁구공 오가는 소리와 선수들의 외마디 탄성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스포츠 방송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고요한 순간이 자주 찾아온 적이 있었던가. 경기를 배경으로 좌충우돌 준비 과정과 왁자한 수다가 이어지지만 <우리동네 예체능>...
‘인간퉁소’ X의 폭탄테러제960호가는 봄날, 안녕들 하신가요? 푼수 남편 둔 탓에 공개적 개망신으로 만신창이가 된 ‘와잎’이에요. 엔간히 좀 해라~, 응? 이젠 찌질한 고 향 친구들까지 알뜰하게 바보 만들고 애쓴다 애써. 하긴 생각해보면 ‘X기자’라는 이름부터가 제대로 된 작명인 듯싶어요. 엉망진창인 근 태로 회사에서도 X인 인간인데, 집에서는...
‘오렌지 담배’와 ‘폭탄 담배’제960호록을 사랑하던 친구 영대가 귤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달랑 들고 산속 암자로 들어간 게 1990년대 어느 겨울이었다. 골초였던지 라 담배 한 보루 사들고 갔을 법한데, 법전에 집중하겠다며 그 좋아 하던 담배까지 끊겠다고 했다. 장하다. 몇 달 뒤 나타난 영대는 맛나 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