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가지 못하리, 풀의 블랙홀제1422호 뿌리를 뽑는다. 싹을 자른다. 근절한다. 뿌리 깊다. 싹을 밟는다. 싹이 없다. 싹이 노랗다. 풀을 뽑다보면 농사와 관련된 말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풀은 주로 뿌리를 뽑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뿌리를 뽑아 고랑에 던져놓으면 비가 오거나 날이 구질구질 습하기만 해도 슬금슬금 머리를 들고 ...
밥을 전부 사먹는 집에 냄비 파는 방법제1422호 옆집 아줌마 조카딸이 서울 목동 아파트 14단지에 사는데 조카사위는 중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옆집 아줌마는 조카딸을 소개해줄 테니 목동에 가서 요리강습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조카딸은 세 살 먹은 딸을 데리고 살림하는 주부인데, 무슨 요리강습이냐며 시큰둥한 표정을 했지만 그래도 이모 부탁...
나의 다정한 페미니스트제1422호 대학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페미니스트였다. 그 친구는 페미니스트 모드일 때 유독 극단적이고 분노와 냉소가 넘쳤다. 그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면서도, 나는 결코 페미니스트는 될 수 없겠다 싶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사회를 등지고 싶지 않았다. 이후 미디어에서 괴랄한 이미지…
오늘의 집은 내일이면 어제가 되고제1422호 이케아 카탈로그의 별칭은 ‘인테리어 성경’이다. 오프라인으로 발행했던 카탈로그의 배본 부수가 <해리 포터> 시리즈나 성경에 버금갈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이기도 하지만, 선과 악을 구별하듯 인테리어의 미와 추를 제시하는 역할이 핵심적인 이유다.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오늘의집’의 주요 성공 요인도 ...
만리장성을 넘어 만리를 온 ‘노마만리’제1422호 2022년 5월 말 마정저수지의 빼어난 풍광에 매료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남 천안에 책방을 냈다. 책방 이름은 소설가 김사량의 항전기행문 <노마만리>에서 가져왔다. 김사량의 작품은 월·납북 작가들의 해금이 이뤄질 무렵인 1980년대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소개됐다. 해방 전 일본...
페스티벌의 적은 켄타우로스 [뉴스큐레이터]제1422호 코로나19는 다시 바싹 약이 올랐지만 3년 만에 열리는 축제들의 각오도 대단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2021년 공연 등이 열렸을 때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던 터라, 2022년 거리두기 완화 뒤 ‘떼창’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세계 10대 록 페스티벌 중 하나...
수학의 ‘정석’ 말고 ‘정신’ 배우자제1422호 중학교 수학을 마치면 당연하게 이해하는 그림이 있다. 자연수, 정수, 유리수, 실수의 체계를 집합으로 설명하는 그림이다. 1, 2, 3, 4….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수를 정수 집합이 원을 그리며 감싼다. 유리수 집합은 더 큰 원으로 두 집합을 에워싼다. √2, 파이(π) 등 실수 집합은 자연...
조선의 중인은 어떻게 엘리트가 됐나제1422호 1789년 프랑스가 격동의 혁명에 휩싸이기 몇 달 전, 가톨릭 성직자이자 법학자, 급진 혁명가 에마뉘엘 시에예스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치 팸플릿을 출간했다. 명쾌한 논리와 선동적 어투가 혁명가들과 제3신분(평민)의 격정에 기름을 끼얹었다. 전체 인구의 2%도 안 되는 제1신분...
찾을 수 있을까 외계 생명체 [뉴스 큐레이터]제1422호 ‘허블’에 이은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웹’이 포착한 컬러 우주 사진이 2022년 7월12일(현지시각) 공개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30년간 100억달러를 들여 개발해 2021년 12월25일 발사한 제임스웹의 첫 결과물이다. 제임스웹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외계 생명체 ...
보통 사람 허준이제1422호 “음악은 천재만 해야 하나요?” 요즘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추앙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에게 인생 드라마는 <네 멋대로 해라>다. 저 대사는 중년의 재즈 뮤지션들을 보면서 음악은 천재들이나 해야지 안 그러면 삶이 고달프다는 한 기자(이동건 분)에게 히트곡 하나 없는 인디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