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 인간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바보를 바보라고 부르지 않은 것, 그것이 홍대가 자란 시대의 문명이었다. 바보가 아닌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바보로 의심되는 이에게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홍대가 할로할로 위에 한 스쿠프 듬뿍 얹어 올린 우베아이스크림의 보랏빛이 충분히 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가격이 산페르난도의 노점에서 파는 것보다 ...
지하철에 ‘장애’를 심어라제1444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가 벌어질 때쯤이면 지하철역에선 ‘불법’을 강조하는 방송을 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지하철 운행을 5분 이상 지연시키는 행위 1회당 벌금 500만원이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교통공사는 시위가 진행되는 역에…
카스피주엽나무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응급실 당직의 연락을 받은 것은 밤 11시가 좀 넘어서였다. 6개월 된 영아가 갑자기 한쪽 팔과 다리를 늘어뜨리고 처진 모습을 보여 급하게 이송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3층 당직실에서 뛰어 내려갔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응급구조사가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로 보이는 부부가 새파랗게...
측근에게만 술 준 ‘세조의 실패’, 윤 대통령은 다를까?제1444호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는 신하들과 술 먹는 자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술자리’를 검색하면 총 973건이 나오는데 절반가량인 467건이 세조 때 기록이다. 세조는 왜 술을 좋아했을까? 김종서와 사육신, 조카 단종까지 죽인 철혈 정치가는 권력을 향락을 즐기는 데만 사용한 걸까....
옥수수 어디까지 먹어봤니?제1443호 10월 엄마가 옥수숫대에서 마른 옥수수를 몇 가마니 따가지고 온 뒤, 옥수수 먹기 2차전에 돌입했다. 엄마는 며칠을 두고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옥수수알을 분리했다. 과도, 송곳, 드라이버 등 뾰족한 것은 다 동원해서 단단하게 붙어 있는 알갱이를 알알이 떼어냈다. 할머니들에겐 품값으로 짜장면도 사주...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 [손바닥문학상]제1444호 하여간 지구란 것은 버릇없기 짝이 없다. 나를 이렇게 고생이나 하게 만들고. 흠, 아닌가. 지구는 인격체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구는 불에 탄 개미 사체다. 지구는 바닥에 달라붙은 껌이다. 지구는 물에 씻은 솜사탕이다. 이거 꽤 말이 되는걸. 지구는 학사경고장이다. 오, 어감 좋고.나는 흥얼...
아쿠아리움 체험이 아무리 화려한들 <아바타: 물의 길>제1444호 <아바타: 물의 길>을 개봉 첫날 3D관에서 관람했다. 13년 전 <아바타>를 영화사의 혁명으로 치켜세우는 세간의 평에 동의할 수 없던 나였기에 <아바타: 물의 길>이 특별히 더 흥미로우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짐작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2...
15년간 일본 수배망 뚫은 ‘신출귀몰’ 혁명가 이관술제1443호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되지 않은 거물’이라고 불렀다. 이재유와 함께 비합법 혁명운동을 이끌던 이관술(35)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하에서 ‘암약’하는 반일운동의 뿌리를 뽑으려 들던 경찰은 1936년 12월25일 개가를 올렸다. 지하운동의 우두머리로 간주하던 이재유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유감...
책을 고르기 위해 지옥으로 걸어가다제1443호 책을 ‘받는’ 일이 끝나면 드디어 출판평론가의 시간이다. 아니, 선택의 시간이다. “오롯한 취향과 성향, 개성을 가진 존재”이다보니 그런 게 아니라, 기고하는 매체나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읽고 소개해야 할 책과 당분간 관망해도 될 책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눈 밝은 ...
위태롭고도 의연한 예술가들을 아낍니다제1443호 “늘 뭔가 대단히 크게 잃은 적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요. 잃은 후 의연하게 다시 걷는 사람이요. (…) 그들의 위태로움과 의연함, 삶에 대한 사랑, 목마름, 그리고 슬픔을 아낍니다. 그들은 진짜 슬픔이 뭔지 알지요. 당신의 첫 소설 제목처럼 ‘슬픔이여, 안녕’ 하고 슬픔을 맞이하는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