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과 어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제1445호 내일부터 꼬박 사흘이 지나면 나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병 때문에 마실 순 없지만) 술을 살 수 있고, (피울 생각 없지만) 담배를 살 수 있고, 나이 제한으로 출입 불가능한 공간이 대부분 없어진다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나열해놓고 보니 성인이 된다는 건 국가에서 또 다른 단계의 신분을 ...
표어는 부른다, 의미를 시대를제1445호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어느 공사 현장에는 안전 펼침막이 걸려 있다. 공사 현장은 넓지 않은데 펼침막은 사이즈가 꽤 크다. 펼침막에는 또박또박한 글자로 ‘안전베테랑은 현장정리부터’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무엇보다 여러 아시아 언어로 번역돼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큼지막하게 쓰인 한글 아래 총 여섯 개의 ...
돈을 벌겠다, 목표가 생겼다제1444호 2019년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일했다. 대표가 직원과 회원 몰래 개 200여 마리를 비밀 안락사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곳이다. 대표와 직원 사이 몇 차례의 갈등 끝에 회사를 나왔다. 이후 본질적인 고민을 했다. 대표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동물을 사고파는 이 자본주의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
다음에는 꼭 보자제1445호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두어 달 외국에 나가니 그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거였다. 지금은 제주에 자리를 잡은 그와 잠깐 같이 지낸 적이 있다. 아버지 형제들이 합심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장어집을 열었을 때다. 그는 강원도 어느 리조트에서 일했는데 비수기엔 일이 적어 이직을 고민하던 차였다. ...
타인의 안으로 들어가는 연습제1444호 전성진은 독일 베를린에 사는 레즈비언 창작자다. <굉장한 여자 굉여>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익명의 베를리너린>이라는 팟캐스트를 만든다. 그가 주목받은 계기는 레즈비언 사회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인물을 연기하는 롤플레잉 콘텐츠를 만들면서다. ‘예술밖에 모르는 ...
너와 사랑을 나누는 아침을 기다려제1444호 *제1441호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에서 이어집니다. 사랑이는 자연의 시간에 가깝게 산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반대로 나는 밤에 활동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약속은 주로 저녁에 잡았다. 자연히 아침에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서너 번의 알람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곤...
‘취미’에서 정치를 빼니 ‘취미’가 되었네제1445호 사람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내겐 취미가 그렇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늘 버거웠다. 독서?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산책? 취미로는 아무래도 격이 떨어진다. 칼럼엔 달리기가 취미라고 버젓이 써놨지만, 사실 아니다. 그냥 살려고 하는 ‘루틴’일 뿐. 중학생 ...
칼의 시간을 지킨 작가 조세희 별세 [뉴스 큐레이터]제1445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2022년 12월25일 저녁 7시께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난 조 작가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돼 1965년 등단했다....
아이는 한밤중, 할머니는 한낮인 휴일 아침 8시제1444호 부모님과 3대가 모여 살던 우리 집, 휴일 아침 8시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일곱 살 막둥이에게는 해님이 일어나 자신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유독 아침잠이 없는 조부모에게는 이미 한낮이었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밤잠이 없어진 큰아이에게는 한밤중이었습니다. 직장인인 저와 남편에게는 깨어...
김밥을 말할 때 말하지 않은 것들제1444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말할 거야’라고 각오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언제나 부정확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는 ‘김밥’이란 말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김밥’은 ‘김’과 ‘밥’이 합쳐진 말인데, 눈앞에 보이는 그 음식은 다른 재료들도 가득 담겨 있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깡그리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