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는 언제까지?제1153호 일요일 오전 11시, 집안이 고요해졌다. 나와 둘째아이만 남았다. 하루 전, 남편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놀러 왔다. 생일파티를 마치고 다음날 다 함께 ‘딸기농장 체험’을 하기로 했다. 날이 따뜻하면 나도 5개월 된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함께 가리라 마음먹으니 설렌다. 딸기 따기 체험, 나도 ...
산에 사는 애인제1153호 바야흐로 봄꽃의 계절이다. 아직 눈이 쌓였지만 남쪽에서 변산바람꽃, 복수초, 노루귀 등 황홀한 꽃 사진들이 올라온다. 산행 중에 쉽게 마주치기 어려운 꽃을 만나는 건 망외(望外)의 기쁨이다. 일부러 꽃을 찾아가도 알현하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야만 한다. 산행 위주로 하다보면 더욱...
우리집 고양이는 집사를 사랑할까제1153호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내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고양이와 단둘이 있을 때면 설득에 나서곤 했다. “나는 네가 인간의 말을 하는 걸 알고 있어. 나한테만 얘기해줘. 서커스를 시키거나 언론에 알리거나 하지 않을게.” 고양이는 대체로 ‘무슨 개소리냐’는 심드렁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그조...
당신의 가출을 응원합니다제1153호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의 시 ‘가족’ 전문이다. 가족은 아름답지 않다. 평화롭지도 않다. ‘가족은 아름답고 따뜻해야 한다’는 사회의 믿음이 감옥이고 지옥인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는 당신이거나 당신 옆 사람이다. 정부의 ...
4차 산업혁명의 짝꿍제1153호 ‘블록체인’(Block chain)이란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을 잘 모른다면, 한때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떠올려보자. 비트코인은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법정화폐로 인정받을 만큼 파격적으로 인지도를 넓혔다. 비트코인의 거래 과정...
광장이 키운 예술제1153호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2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가 떨어졌다. 일순 서울 광화문광장은 환호에 휩싸였다. 세월호 유가족과 해고노동자들은 물론,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와 광화문 캠핑촌 식구들은 얼싸안았다....
촛불 시민의 대안 ‘평등 공화국’제1153호태평양전쟁이 시작되기 한 달 전(1941년 11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공포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굳이 ‘법통’이라는 논란 많은 단어를 쓰면서까지 임시정부 계승을 강조하므로 건국강령은 우리 헌법의 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건국강령은 새 나라의 기초로 ‘혁명적 삼균제도’를 제시…
<여행학교> 외 신간 안내제1152호 여행학교 김현아 쓰고 엮음, 뜨인돌 펴냄, 1만5천원 “책상과 칠판과 교무실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토론과 스승,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한 소통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학교가 된다면 그곳이 치열한 배움의 현장일 것이다.” ‘길(Road) 위의 학교(Schola)’라는 뜻의 여행 ...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벌제1152호 “양봉하는 데 필요한 필수 도구 6가지는 무엇일까요?” 지난해 봄, 양봉 수업 두 번째 시간에 동료 도시양봉가들과 손가락을 꼽으며 풀던 문제다. 정답은 벌, 벌통, 훈연기, 내부 검사용 칼, 솔, 방충복이었다. 한 해 양봉을 해보면 이 6가지 말고도 소비(벌집), 급수기, 화분떡(화분 뭉쳐둔 ...
세련된 아빠이고 싶지만제1152호 ‘좀 추레하긴 하다.’ 멍한 표정으로 유모차를 잡고 있는 내 얼굴이 엘리베이터 문에 비쳤다. 대충 물만 묻혀 정리한 뒷머리가 여전히 떠 있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입 주변에는 볼펜으로 찍어놓은 듯 수염이 듬성듬성 났다. 입고 있는 바지 왼쪽 무릎에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