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누런 구두를 신고 죽었다제1336호 아름다운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 돌려 보듯이 어여쁜 장정의 책은 열어보지 않을 수 없다. 중절모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퉁퉁한 남자가 한구석에 조그맣게 들어 있고 중앙에는 작품의 상징이 되는 물건 한두 개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표지를 넘기면 센강은 하늘색, 뤽상부르공원은 연…
[책의 일] 위선적인 것 쓸데없는 짓 자기기만제1335호 처음엔 믿지 않았다. 직장인인데 일주일에 댓 권의 책을 읽는다는 말을. ‘얇은 책만 골라 보거나 페이지를 막 넘기겠지.’ 늘 자기 한계를 기준으로 남을 가늠하는 나쁜 버릇이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열 번 읽었고, 문학 전공자지만 중력파·양자물리학에...
[노랑클로버] 어떤 감도 버려지지 않는다제1335호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복숭아 철과 귤 철 사이 쓸쓸함이 가을 타는 게 아니겠느냐고. 그 말이 좋았다. 가을의 외로움을 깔끔하게 정의했다고 생각했다. 복숭아 철과 귤 철. 더운 김이 가시고 찬 바람 드는 그 사잇계절. 그 쓸쓸한 계절에도 단맛은 있다. 포도의 새큼한 단맛, 배의 물기 ...
[몸생물학] 왜 임신과 출산은 아파야 할까제1335호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난임 카페를 들어가보면 자주 발견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수정은 인간의 일이나, 착상은 하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시험관시술로 불리는 보조생식술은 원래 몸속에서 이뤄지는 수정란 형성과 초기 배아 발생 과정을 몸 밖, 즉 실험실 시험관에서 직접 유도하는 과정입니…
[부부의 영수증] 출근하는 데만 3시간제1335호 퇴사와 동시에 남해로 이주한 지 6개월이 지날 무렵, 남해에서 처음 일자리를 구했다. 첫 1년만큼은 하고 싶은 일만 즐기자고 생각했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앞에 불안감은 커졌고, 특별히 소속된 곳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니 자주 무기력해졌다. 뭐라도 일거리가 있으면 좋겠…
[세일즈우먼] 가게를 열고, 아침 오는 게 무서웠다제1335호 나는 스물아홉 살이 되기까지 사고파는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내 기억으로 중학교 때 학용품 살 돈을 달라고 하니 어머니가 쌀을 한 말 퍼주면서 이고 가 팔아서 쓰라고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팔아야 하나 엄청 근심하면서 장을 향해 갔습니다. 가는 길에 계장리 ...
[시험과 답] 오뚝이처럼 다시 책상으로제1335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가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막내 린아가 타이(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함께 볼 거라며, 관심 있으면 같이 보자고 했다. 물론 관심 있다. 블랙핑크는 린아와 타이가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나는 그 전에는 큰 관심이 없다가 일전에 아이들이 보여준 뮤직비디오를 다 ...
[뉴스 큐레이터] 너 인성 문제 있어? 나 인성 문제 있어!제1335호 “넌 유디티(해군특수전전단) 훈련 좀 받아야 해.” 시작은 유튜버들의 농담 반 진담 반 한마디에서였다. 행동이 굼뜨거나 느린 이들에게 ‘군대 보내야겠다’고 하는 레퍼토리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헬스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를 운영하는 유튜버 김계란이 게임과 먹방을 주 아이템으로 하는…
마르크스 vs 마르크스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제1335호 “카를 마르크스 귀하. (…) 저는 귀하와 성만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2001년 트리어의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하느님께서 어떤 유머를 숨겨두신 게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합니다. 트리어는 1818년 귀하께서 태어난 곳이자 유년기를 보낸 곳이고, 훗날 귀하의 부인이 될 예니...
[인생 뭐야구] 우리는 인생에서 투수일까 타자일까제1334호 “야구에서 아무리 위대한 타자도 5할 타자는 없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것이다. 실패는 언제나 성공보다 많다. 그게 정상이다.” 책 <일이 모두의 놀이가 되게 하라>(이강백 지음)에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하긴 인생을 야구에 빗대 설명할 때도 으레 “야구는 10번 중 3번만 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