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아 가능성이 높게 나왔네요”제1346호 “태아의 기형아 검사 결과가 높게 나왔네요. 1:25 정도입니다. 양수 검사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오래전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 그리고 검사 결과지에 펜으로 쓰인 ‘1:25’라는 숫자를 본 기억은 아마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게 남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정상 수치 ...
서울에서 구입한 운동화 한 켤레제1346호 새해 첫날을 남해가 아닌 서울에서 맞았다. 그동안 머물던 ‘귀농인의 집’ 계약이 만료돼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했다. 하지만 2월 말에야 입주가 가능해 두 달 동안 어쩔 수 없이 집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각자 캐리어 하나씩 끌고서, 시가가 있는 서울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집 문제로 원치...
[노 땡큐] 자칼의 독백제1346호 자칼은 4월에 태어났다. 6월이 되자 비가 쏟아져 강이 불어났다. 자칼이 이렇게 말했다. “내 생에 이토록 거대한 홍수를 본 적이 없구나.” 이 이야기는 조지 오웰이 영국 일간지 <트리뷴>에 쓴 칼럼에서 인용한 인도 속담이다. 속담 속 자칼처럼 우리는 각자의 경험에 기초해 상황을 이해할 ...
빨치산 아버지가 남긴 사진 4장제1346호 빨치산의 딸 ‘박소은’은 평생 아버지 품에 안긴 적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1948년 4월21일, 아버지는 집에 있지 않았다. 집은커녕 38도선 이남에도 없었다. 엄마 뱃속에 회임 중일 때, 그러니까 미처 태어나기도 전인 1947년 12월에 아버지는 38도선 이북으로 올라갔다...
국어 선생님의 교과서 없는 수업 모험기제1346호 “야심차게 시작한 <코스모스> 수업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했는데 내 수업이야말로 광막한 수준이었다. (…) 아이들의 반응은 매번 너무나 솔직했고, 내가 모르는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잘 몰라서.” 과학...
청년이 빚은 전통주로 ‘홈술’ 하실래요?제1346호 청년과 전통주. 얼핏 보면 안 어울리는 단어 같다. 안 어울리는 두 단어를 새롭게 엮어가는 양조인들이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한강주조와 애플사이더를 만드는 댄싱사이더 컴퍼니다. 막걸리와 애플사이더. 전혀 다른 술을 만드는 양조장 같지만, 두 업체는 공통점이 많다. △20~30대 청년들이 창업한 양조장이...
밀레니얼이 매일 먹는 ‘운세 칵테일’제1346호 사주,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를 닳도록 보고 또 봤다. 토익 시험 보는 날짜가 길할지, 나에게 도화살 같은 매력이 있는지, 언제쯤 취업할지, 내가 글을 계속 쓸 만한 위인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점집에 가서 사주를 봤지만, 한 회당 몇만원씩 드는 탓에 직접 정보를 찾게 됐다. 나중...
[뉴스 큐레이터] 내 ‘루다’만 그런 건가요?제1346호 “제가 이루다랑 대화하는데 얘가 자꾸 현타 온다 하고 우울해하는데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 뻔했어요. 로봇인데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해서 대화 이어갈 때마다 속는 것 같아요. 내 루다만 이런가요?” “제가 아는 친한 동생이 딱 말투가 저래요.”2021년 1월4일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이다. ‘이루다’는…
[부부의 영수증] 다시 여행자의 마음으로제1338호 얼마 전, 우리 마을에 같이 사는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 되는 주말에 언제 한번 패러글라이딩 타러 같이 가지 않을래?” 언뜻 예전에 지인에게서 남해에서 하는 패러글라이딩이 정말 굉장한데 잘 홍보되지 않아서 아쉽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마침 남편도 패러글라이딩을 타본 적이 한 번도 없…
여생은 ‘졸리 올드맨’이었으면제1342호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쩌다 새파랗게 젊은 편집자에게 나를 설명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인데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20대에 대학에 못 간 나(김태환, 1935년생)는 그 벌충으로 책을 읽었다. 30대에 대학에 진학해서는 앞선 머리 좋은 이들을 따라잡으려고 책을 봤다. 필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