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책 읽는 소리제834호 “사노라면 겪게 되는 일로/ 애증이 엇갈릴 때/ 그리하여 문득 슬퍼질 때/ 한바탕 사랑싸움이라도 벌일 듯한/ 투구꽃의 도발적인 자태를 떠올린다// 사노라면 약이 되면서 동시에/ 독이 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궁리하며/ 머리가 아파올 때/ 입술이 얼얼하고 혀가 화끈거리는/ 투구꽃 뿌리를 씹기도 한다(...
〈슈퍼스타K 2〉 서바이벌의 법칙제833호 두 번째 ‘K’가 제 이니셜을 찾았다. 이번엔 ‘H’, 허각(25)이다. 예선부터 결선 무대까지 3개월에 걸친 케이블TV 엠넷 <슈퍼스타K 2>의 대장정 끝에 우승한 허각은 2억원의 상금보다 더 값진 ‘슈퍼스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음모론·결정론보다 운명...
“현재를 즐겨라, 아님 말고”제832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전복의 상상, 상상의 전복: 프랑코 정권기 스페인 걸작선’을 선보였다. <부랑자들>(1960), <사냥>(1966), <까마귀 기르기>(1975) 등 카를...
PIFF를 3분으로 만든다면?제832호 잘 찍지도 못하면서 - 부산에서 영화를 찍다 #1. 영화를 찍으란다 “부산에 가서 영화를 찍어보는 건 어때?” “…네?” 농담인 줄 알았다. 하긴 내가 한동안 너무 징징댔다. 부산국제영화제(PIFF) 출장 계획을 잡아놓고 선배에게...
눈사람은 녹고 짠지 단지도 없네제831호 오전 11시30분, 서울 북쪽을 가로지르는 내부순환도로 고가가 바라보이는 길음역 부근 해장국집. 벌써 소주 세 병을 비운 남자는 가게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목소리를 높인다. 조직의 총무를 맡았던 남자는 법정드라마의 검사처럼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로 상대방을 휘어잡는다. 말이 많은 쪽이 억울한 ...
단장 짚고 공책 든 구보씨 따라 걷기제830호전세계 문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쓴 <스테이>(Stay)에, 소설가 김영하가 서울에 관해 쓴 글의 제목은 ‘단기 기억 상실증’이다. “만약 도시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다면 서울에는 아마 이런 진단을 내렸을 것이다. 단기 기억 상실증. 마치 알츠하이머병 환자처럼 서울은 현재...
노래여, 정직하게 가슴을 울려라제829호 오디션 참가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노래를 시작한다. (“음색은 그럭저럭 괜찮네.”) 참가자는 1절 중반쯤이 되자 서서히 표정이 변한다. (“표정이 왜 저래? 너무 오버하잖아.”) 후렴구에 들어선다. (“음정이 너무 불안한데? 그리고 이건 모창 수준이야.”) 노래가 끝나고 참가자의 얼굴이 ...
‘위대한 유산’ 할머니의 손맛제828호평양 할머니 식당, 욕쟁이 할매 보신탕, 할매 손칼국수, 강원도 할머니 족발… 그 외 무수한 할머니 식당들. 해방 뒤 할머니의 손끝에서 ‘식당’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할머니 얼굴이나 이름이 간판에 새겨진 세 집을 들렀다. 한 분은 살아서 식당 일을 여전히 돕고 있고, 한 분은 노환으로 식당으로의 외출이 힘들...
길거리에 세계 요리 뷔페 차렸어요제827호 설탕을 국자에 담고 불 위에 올린다. 불은 은근해야 한다. 쇠젓가락으로 휘휘 젓다 녹으면 재빨리 소다를 넣는다. 아메리카노 커피처럼 진한 갈색이 라테 커피처럼 부드러운 베이지색으로 변하며 부풀어오른다. 이때, 재빨리 국자를 철판 위에 뒤집는다. 굳기 전에 설탕을 얇게 펼치고 모양 틀을 찍는다....
2010년 프로야구, 괴물 출현!제826호 2010년 한국 프로야구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면 롯데 이대호와 한화 류현진의 두 타석 승부를 빠뜨려선 안 된다. 7월21일 대전구장 롯데전에서 한화 왼손 투수 류현진은 올 시즌 세 번째 완봉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0으로 앞선 9회초 투아웃 1·3루에 타석에는 올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