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시인의 노래제853호 마감이 됐다는데도 직원에게 졸라서 들어간 문학강좌반. 선생인 김용탁 시인(김용택)이 묻는다. 시를 써보신 분? 10여 명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든다. 시를 한 편도 안 써보신 분, 하고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든다. 미자(윤정희)도 쭈뼛거리며 손을 든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와이어 해방 선언제852호 브래지어는 ‘회색지대’에 있다. ‘목적의식’과 ‘생존’ 사이에. “예술이 고상한 정신을 양양시키기 위해서나 자신감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예술은 브래지어가 아니다.” 줄리언 반스는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10장 기소 중 15번 글)에서 이렇게 ...
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제851호 침이 고인다. 코는 부엌에서 무심히 끓고 있는 냉잇국을 흘낏대고, 입은 초고추장에 슬쩍 무친 달래를 바라본다. 눈은 살짝 데친 두릅 앞에 벌써 무릎을 꿇었다. 쑥을 넣은 냄비밥이 완성되면 서둘러 밥그릇을 집어들고 일단 냉잇국을 한 수저 뜬다. 동시에 달래와 두릅, 쑥이 마구 뒤엉켜 입으로 ...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판타지다제850호2000년, 네덜란드 엔데몰사에서 처음 리얼리티쇼의 포맷을 공개했을 때에는 자조의 뉘앙스가 남아 있었다. 외딴섬에 갇힌 남녀 커플 몇 쌍을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이 관찰하는(훔쳐보는) 전대미문의 엔터테인먼트쇼에 <빅브러더>란 이름을 붙여버린 아이러니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낀 게 아주 ...
코리아 갓 서바이벌제850호커다란 홀에 환하게 불을 켠 방들이 가득하다. 오른쪽 방 문을 열면 40대 남자가 네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엽기적인 표정과 함께 마술쇼를 펼치고, 다른 방 문을 열면 진지한 표정의 20대 남자가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연기에 여념이 없다. 왼쪽 끝 방에는 카메라 앞에 앉아 뉴스 원고를 읽는 아나...
‘60억명 중 1명’으로 돌아가는 ‘60억분의 1’ 사나이제849호 ‘60억분의 1’로 불린 인류 최강의 사나이가 무너졌다. 2월13일 미국의 종합격투기 스트라이크포스 무대에서 표도르 에멜리아넨코가 안토니우 시우바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6월 파브리시우 베우둠에게 당한 패배에 이어 두 번째 겪는 패배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격투 스포츠 무대에서 지는 것이 어울리지 ...
우정과 애정과 욕정 사이제848호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1992년 그룹 ‘피노키오’의 1집 앨범 수록곡 <사랑과 우정 사이>가 라디오 전파를 탔을 때 수많은 청춘남녀가 “이건 내 얘기!”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
똑딱이, 가볍다 가볍지 않다제847호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을 들어서서 복도를 따라 죽 걸어간다. 중간에 있는 계단을 걸어 3층까지 올라간다. 원형으로 된 공간이 내려다보인다. 들고 온 똑딱이 카메라를 꺼낸다. 카메라는 손에 감춰질 정도로 작다. 카메라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아래를 바라본다. MP3를 듣는다. 기다리기...
브라보! 아줌마 라이프제846호 국문학자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쓴 <독서>(비아북 펴냄)에는 ‘언문 제문’(諺文 祭文)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책에 따르면, 경상남도 중서부에는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의 초상에 와서 두루마리에 붓으로 적어 내려간 글을 읽는다. 그 글이 한글로 된 제문이라는 의미의 ‘언문 제문’이다. 언문 ...
남자들은 왜 ‘시가’에 빠져들었나제845호‘그 남자’는 아내 때문에 <시크릿 가든>을 봤다. 장관은 드라마 밖에서 펼쳐졌다. 족발을 한 손에 들고 소주를 들이켜면서 아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드라마를 눈요기 삼던 ‘그 남자’는 감탄한다. 그리고 빠져든다. “현빈(극중 김주원)의 대사가 예술이더라고요. ‘당신 꿈속은 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