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를 속여줘제1086호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 아주 탁월했던 한 사람을 기억한다. 미스터 오렌지가 그랬다. 타란티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에서 미스터 오렌지를 연기한 팀 로스 말이다. 그는 마약을 팔아본 적도 없으면서 마약을 팔다가 경찰에게 잡힐 뻔한 썰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외우고 또 외운다....
이 사람아, 전나무물을 해먹게제1086호 사람들은 송일원 할아버지를 팔불출 또는 전나무물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송일원 할아버지는 입만 벌렸다 하면 자기 아내 얘기를 합니다. 또 누가 아프기만 하면 전나무물을 해 먹으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육이오가 끝나고 아군 선발대가 동네를 지나면서 빨갱이와 내통한 사람을 찾아 총부리를 겨누고 위협했…
마음 쓰인다, 이 못난 것들제1086호세상 만물 만사 시간과 숨 쉬는 공기까지도 돈으로 계산되어버리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귀하고 얻기 힘든 것이 돈으로 치면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깊은 가을, 도시의 한복판이라지만 이곳의 계절도 가을인지라 집집마다 담장 안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연시, 대봉시, 석류, 모과, 사과,...
춤추느라 못 간다고 전해라제1086호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안톤 코르베인(Anton Corbijn)은 1990년대에 유투(U2),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너바나(Nirvana) 같은 유명 그룹들의 전성기를 사진과 뮤직비디오에 담으며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그랬던 ...
불륜이야, 운명이야제1086호 불륜은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흔히 한국 드라마의 양대 ‘막장’ 소재로 불려왔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령 김수현은 오래전부터 불륜을 여성 주체적 서사의 전위적 소재로 삼아온 대표적 작가다. 1978년 방영된 <청춘의 덫>은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
TV, 당장 꺼버리시오!제1086호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사진)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1976)의 영향을 받았다. 실제 감독이 그렇게 말했거니와, 방송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극중 메시지는 소재만 달리할 뿐 일치한다. <네트워크...
셰프를 잡아 돌린다고요?제1086호 제 손으로 밥 한 끼 차려먹기가 참 곤고하다는 시대, 음식을 둘러싼 성찬이 대중문화에 차려진 건 얼핏 기이한 일이다. 한국 사회가 ‘그럴싸한 음식’을 둘러싼 쟁투로 치열해진 지도 벌써 꽤 오래됐다. 그 치열함은 요리사를 일컫는 말을 ‘주방장’에서 ‘셰프’로 바꿨다. 낯선 호명이 일상화됐다는 건 그만큼 빈번했…
아버지의 역사제1086호돌아가신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계셨다.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에서 유학 중인 나에게 전화로 말씀하셨다. “한국에 돌아오지 마라. 여기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보수적인 아버지의 전쟁관은 어땠는가? 대학에 막 입학한 어느 날 나는 미군의 양민 학살을 다룬...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외 신간 안내제1085호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김학민·이창훈 지음, 푸른역사 펴냄, 2만원 1963년, 박정희와 5·16 쿠데타 세력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 총살했다. 그를 ‘밀사’로 보낸 북한은 그의 존재를 지웠다. 이후 남북관계는 극단의 증오와 불신으로 향했다. 저자들은 한국사에서 지워진 ...
만고 쓸데없더라도제1085호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 카오스와 복잡계 이론의 대부로 꼽히는 그의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에서는 약 10년마다 한 번씩 수학 교수법이 확 바뀌어 부모들을 좌절시키는데, 스트로가츠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그의 부모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삼진법이나 벤다이어그램은 들어본 적도 없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