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 사람제1494호 “노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형에게 보낼 그림엽서에 적을 소감을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속에는 뭐라 이름하기 어려운 광풍이 소용돌이쳐 도무지 진정할 줄을 모른다. ‘지상의 숙명에 묶인 인간의 고뇌’라느니, ‘육체의 어두운 뇌옥에서 벗어나 영원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혼’이라느니, 그럴싸한 수사학이야 왜 없…
안 보여도 “자존감 회복 차차차, 분명 느껴질 자이브”제1494호 눈을 감고 춤을 춰본 사람은 안다. 영화 <여인의 향기> 속 한 장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트너와 춤추는 게 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대를 낀 채 뛰어오르거나 몸을 흔들면, 이내 균형감각을 잃고 비틀거린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여도 거울을 보고 확인할 길이 없다...
심심한 시간 점유하는 다이소, 국민가게에 대한 국민의 바람제1494호 점심 식사 뒤 산책 겸 들른 다이소 매장. 히잡 쓴 외국인, 탕후루 꼬치를 한 손에 든 초등학생, 정장 차림의 남자, 등산복을 갖춘 중년 여성까지 복작인다. 이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이렇게 차곡차곡 진열된 상품들의 행간(行間)에서 이 도시의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다이소하다’가 국민 기분이 됐다는 ...
노안이 왔다면 눈에 마음을 맞춰야 한다제1494호 사춘기에는 감정이 널뛴다. 갱년기를 겪는 중년도 다르지 않다. 내 마음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사춘기에는 더 빨리 커지고 아름다워지며 강해지고 싶다. 그래서 ‘허세’를 부린다. 중년들도 ‘센 척’하기는 비슷하다. 점점 떨어지는 체력과 안 돌아가는 머리...
고구마 또는 한정식, 마음의 전쟁과 희망의 존버제1494호 해마다 연말이면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을 선정한다. 그럴 때 ‘올해의 드라마’도 빠지지 않는데 내게 ‘올해의 드라마’를 꼽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2023년 내가 사랑한 드라마들은 각각의 이유로 좋았고, 아무리 좋았어도 싫은 점이 하나씩은 있었으니까. 드라마 박애주의자의 슬픈 운명이랄까. 그럼...
성소수자 축복하는 게 하나님의 사랑제1494호 미국 시카고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려고 한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자, 어떤 40대 여성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카고 다운타운의 오래된 미국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현혜원씨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여자 목사님이었다. 어떻게 미국에 갔는지 묻자, 그는 한국에선 여자가 목사 될 수 없는 분위기라 도망치듯 나왔...
계속되는 파도가 우리를 지금, 여기로 이끌었다제1494호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2000년 작 <화양연화>는 주모운 역을 맡은 양조위(량차오웨이)가 매미 울음으로 들끓는 앙코르와트, 어느 구멍 난 벽에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한 뒤 폐허가 된 사원을 빠져나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장면을 흉내 내어 나무 구멍에 입을 대고 사랑을 고백한 ...
“평생 마실 소주 1만병 한계”…남은 소주가 몇 병입니까제1493호 주로 남 얘기만 해오던 <한겨레21> 기자들이 한 해를 보내며 ‘개인적인’ 올해의 ○○을 꼽아보았습니다. 테니스를 배우다 많은 공을 잃어버리며&nb...
옥새 교통카드, 색동 앞치마…우리 것이 힙한 것이여제1493호 우리 곁에 있지만 힙(hip)한 줄 몰랐던 것, 남들이 찬탄한 뒤에야 비로소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서 불티나게 팔린 경북 영주대장간의 호미(전통 농기구 그 호미가 맞는다. 2019년부터 원예 부문 상위권),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2...
사람도, 산도 알기 어렵다…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다제1493호 주로 남 얘기만 해오던 <한겨레21> 기자들이 한 해를 보내며 ‘개인적인’ 올해의 ○○을 꼽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