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이 시골이지제1397호 시골의 겨울이 도시의 겨울보다 더 훌륭하고 훨씬 갸륵할 리는 없다. 귀농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시골의 겨울을 더 평화롭고 훨씬 서정적이며 여하튼 아련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글쎄. 시골 겨울의 근원은 길고 그래서 심심하다는 데 있다. 농사를 중심으로 짜인 시공간에서 농사가 사라진 계절의 풍경은 기본적으로…
불편하고 재미난 농막 생활제1395호 4평짜리 집(실은 창고)을 짓고 보니 느끼는 게 많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것. 무심히 쓰는 전기와 상하수도, 가스보일러, 온수, 정화조 모두 엄청난 문명의 산물이더라는 것.농막은 최대 20㎡를 넘지 않아야 하고, 땅을 파고 기반공사를 할 수 없으며, 최소의 지지대 위에 가설물로 설치해야 한다....
2021년, 김장 자립 원년제1394호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북방 가문 ‘스타크’의 영주는 늘 읊조린다.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 여러 중의적 의미로 쓰이는 ‘밈’이 됐는데, 밭농사를 시작한 이후 그 얘기가 ‘김장해야 한다’로 들렸다. 텃밭의 생몰은 김장의, 김장에 ...
겨울밭에서 준비 중인 찬란한 탄생제1393호 이미 서리가 여러 번 다녀간 12월 초 주말, 밭에서 뒤늦게 고추 지지대를 뽑았다. 고추 줄기는 워낙 잘 쓰러지는 탓에 봄에 모종을 심은 뒤 한 줄기마다 지지대를 하나씩 세워줘야 한다. 시골 동네 철물점에 가면 길이에 따라 지지대 1개당 500~1천원에 판다. 이래저래 사 모은 지지대가 ...
처음 가져보는 4평 집,작고 소듕해제1391호 밭에 농막을 설치했다. 펜션에 달방을 얻어 지내보니 돈도 돈이지만, 밭에 갈 때마다 짐을 챙겨 왔다 갔다 하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고, 한번 가서 몇 시간밖에 일하지 못하니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농막을 놓으면 월세도 아끼고, 아침에 눈뜨면 밭일하고 해가 나면 쉬다가 느지막이 다시 일해도 되니 좋을 ...
고춧대의 탈출구는 어디에제1390호 멀리서 한 사내가 계속 지켜보는 듯했다. 그것만 빼면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말려뒀던 고춧대를 태우고 있었다. 수확을 마친 고춧대는 애물단지다. 다 자란 고춧대는 작은 나무 같다. 뽑아내기엔 뿌리가 깊고, 흔들리고 쓰러지지 말라고 조조의 연환계(배를 묶어놓는 계책)처럼 줄로 고춧대들을 연결해놓다보니 ...
생강 뿌리가 아니었어제1388호 “앗, 이건 뭐지?”10월22일 밭에서 마지막 가을걷이를 하다 신기한 걸 발견했다. 올봄 처음으로 모종을 심은 생강을 캐려던 차였다. 생강은 집에서 감자탕이나 김치찌개 등을 끓일 때 넣거나 겉절이를 무칠 때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종종 쓴다. 주로 잘게 썰어 말린 뒤 분쇄기로 가루를 ...
나랑 땅 보러 가지 않을래?제1387호 감자를 캐고 나니 번아웃이 왔나보다. 10월 초에는 달방 계약을 했던 펜션에서 짐을 다 뺐다. 그리고 진부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5도2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 생활을 접고, 주말 동안 문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넷플릭스와 배달음식으로 연명하거나, 어떤 주말엔 에어쇼를 보러 가는 ...
고추 따다 땀 닦아봤소?제1386호 텃밭 농사는 결국 김장에 가닿는 여정이다. 그 여정의 8할은 고추와의 관계 맺음이다. 고추, 늦봄부터 여름에 걸쳐 재배하는 대표적인 양념 재료. 장모님은 텃밭을 시작하며 ‘우리 김장 고추 자급 원년’을 선언하셨다. 최소 서른다섯 근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고운 고춧가루 서른다섯 근이 얼마나 ...
겨울 동안 얼지 마, 죽지 마제1385호 때 이른 시월 한파는 초보 ‘얼치기 농군’의 가슴에 겁만 잔뜩 심어놓고 갔다. 껍질의 절반도 채 노랗게 익지 않은 함지박 크기만 한 맷돌호박이 벌써 얼면 안 되는데…. 올해 처음 모종 사다 심어 다섯 달 만에 어린아이 주먹만 하게 열린 하늘마 열매는 서리 맞으면 쉬이 썩는다던데…. 뒤늦게 심은 들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