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나 농약으로 벌이 사라지는 거면 다행이겠어”제1450호 종종 텃밭 둘레에 무성하게 자라던 풀이 누렇게 떠서 말라 죽은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밭 주인이 제초제를 뿌린 흔적이다. 밭 주인에게 연락해 제초제를 치지 말아달라고 사정했지만 우리 밭 바로 앞까지 제초제가 뿌려지고 나서 한동안 벌이 찾아오지 않았다. 벌이 사라진 뒤 늘 풍성하게 열리던 애호박에 한동...
희한해라, 내버려둔 감나무제1448호 2022년 초, 이사 갈 전남 곡성에 무턱대고 감나무밭 700평을 얻었다. 자연농을 하려니 우리 땅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풀도 좀 자라게 해야 하니, 땅주인의 눈치를 안 볼 땅이 필요했다 . 모아둔 돈은 없고, 과감하게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풀 뽑고 툇마루 누워 하늘 올려다보니제1447호 밭에 농막을 놓은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휴대전화 사진첩을 훑어보니 농막 자리를 만드느라 굴착기를 동원해 나무를 옮겨 심고, 땅을 다지는 사진부터 기초를 놓고 바닥부터 나무를 쌓아올려 벽체가 만들어지고 지붕을 올리고 마무리하는 사진이 역순으로 나온다. 새삼 추억이 새록새록. 우리 농막은 3.8×3....
농사를 지으면 내일이 기대된다제1446호 새해 떡국 대신 지난해 말린 시래기로 국을 끓여 먹었다. 시래기는 빨래건조대에 며칠 말리다 식품건조기에 넣어가며 오래오래 말렸는데 먹을 때도 반나절 전에 한 번 삶아 불려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재료가 아니다. 하지만 한입 먹어보니 올가을에 무농사를 지어볼까 싶을 정도로 구수한 맛이 깊다. 경기도 ...
돈을 벌겠다, 목표가 생겼다제1444호 2019년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일했다. 대표가 직원과 회원 몰래 개 200여 마리를 비밀 안락사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곳이다. 대표와 직원 사이 몇 차례의 갈등 끝에 회사를 나왔다. 이후 본질적인 고민을 했다. 대표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동물을 사고파는 이 자본주의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
옥수수 어디까지 먹어봤니?제1443호 10월 엄마가 옥수숫대에서 마른 옥수수를 몇 가마니 따가지고 온 뒤, 옥수수 먹기 2차전에 돌입했다. 엄마는 며칠을 두고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옥수수알을 분리했다. 과도, 송곳, 드라이버 등 뾰족한 것은 다 동원해서 단단하게 붙어 있는 알갱이를 알알이 떼어냈다. 할머니들에겐 품값으로 짜장면도 사주...
땅 욕심이 생겼다제1442호 주말농장이나 도시텃밭을 전전하다보면 ‘땅 욕심’이 생긴다. 땅에 좋은 미생물을 주거나 비닐 대신 비싼 왕겨로 멀칭(풀이 자라지 못하게 씌우는 것)할 때, 손이 많이 가지만 땅에 좋다는 작업을 할 때마다 “내 땅이었으면!” 외쳤다. 우리가 아무리 땅에 공들여봐야 내년에는 갈아엎어질 운명에 처했으니까. 그렇게 내 ...
구들에서는 머리는 차갑게 배는 뜨겁게제1441호 집에는 오래된 구들방과 시멘트로 짓고 기름보일러로 돌아가는 건물 두 채가 있다. 1980년대 지었다고 집문서에 기록됐으니 족히 30년 이상 된 건물들이다. 집을 보러 왔을 때 보니 구들방에 흔들의자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전기장판이 놓여 있었다. 이전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신 것 같다...
대낮에 낫을 든 여자제1440호 나무를 심은 이듬해 6월, 이장님이 호출한 용건은 풀이 너무 웃자라 민원이 쇄도하니 와서 어떻게든 하라는 거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미경작으로 벌금을 물게 된다고 했다. “주민이(―) 신고를 안(↘) 해도(↗) 항공사진을 찍어서(↘) 풀밭으로(↗) 나오면 면에서(↘) 처분 들어간다고요.(↘)” 맥없는 강원도 ...
두더지와의 평화협정제1439호 농사짓는 친구네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그 병을 오려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친구가 워낙 아기자기한 밭을 꾸리며 살기에 주변을 예쁘게 꾸미려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면서 땅을 울리기 때문에 두더지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거다. 야생동물은 농사의 큰 적이다. 2020년 초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