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인심 걸렸네제1384호 “삼촌 오늘 바빠요? 안 바쁘면 이따 대추 좀 같이 털어요.” ‘농달’이 말했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했다. 경기도 포천 집에 처음 입주한 지난해 이맘때, 이른바 ‘대추 파동’이 있었다. 마을엔 대추나무가 많다. 마당 안에 심어져 주인이 분명한 것도 있지만 대개는 누가 따도 아무렇지 않은 길가에 있다. 그 ...
오징어게임의 ‘왕왕’, 탈락한 ‘미분류’제1382호 <오징어 게임>을 봤다. 과연 소문대로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 없어 9회를 연달아 시청했다. 몇 회였나, 생존자들이 게임이 끝나고 식사로 제공된 삶은 감자를 지친 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여성 참가자 새벽이가 들고 있는 감자가 푸르스름했다. 저 감자 해를 너무 쬐었네, 생각하는데 ...
그냥 못 나눠준다제1381호 수확의 철이 왔다고들 한다.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 된 건 오로지 서리를 앞둔 탓이다. 여름엔 지상의 더운 공기와 상층부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 맺히는 이슬이 가을엔 새벽 온도가 잠깐 영하로 내려가는 사이에 언다. 제아무리 튼튼한 작물도 서리를 맞으면 급격히 시들기 시작한다. 그러니 그 전에 수확해야 한다. 작물도…
호스의 추억제1380호 경기도 포천에서 농사짓기 전, 2년 정도 텃밭을 가꿨다. 회사 선배들이 하던 농장에 한 이랑을 얻어 겪은 농사의 맛은 썼다. 제일 쓴맛은 역시 잡초였다. 풀과의 전쟁. 멀칭(Mulching·농작물을 재배할 때 땅 표면을 덮어주는 일) 없이 짓기 시작한 농사는 그야말로 ‘풀투’였다. 작열하는...
무감자 상팔자제1379호 감자 심는 건 쉽다. 감자 심는 데는 더 이상 발전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최적의 도구가 있다. 우산처럼 생겼는데 양쪽에 손잡이가 달렸다. 손잡이를 모아 쥐면 우산 꼭지 부분의 금속으로 만든 입이 벌어진다. 한 사람이 우산 꼭지를 땅에 쿡 찔러넣은 다음 입을 벌려주면, 또 한 사람이 씨감자를 우산...
고추처럼, 고통에 중독되는 농사의 맛!제1378호 올해 고추농사는 대풍이다. 요즘 주말에 밭에 갈 때마다 양동이 가득 따온다. 이렇게 잘될 줄 미처 몰랐다. 옥수수는 비슷한 때에 한 그루당 두어 개씩 한꺼번에 열리는데, 고추는 그렇지 않다. 한 그루에서도 순차적으로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시차를 두고 풋고추가 열린 뒤 차례로 붉게 물들어간다. 이쪽 가지엔 ...
농사는 닭똥부터 시작된다제1377호 시골은 코로 여러 기운을 느끼는 동네다. 바람도 냄새가 있고 잡초도 향기가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고향인 나는 그 기운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계분’은 아니었다. 확실하다. 이른 봄, 계분 냄새는 시골의 거의 모든 것이다. 봄의 시골은 온통 계분으로 덮인다. 그런데 그 냄새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밭에는 거대 미역이 휘날리고제1376호 감자를 키우려면 멀칭은 필수다. 여기서 멀칭이란 풀이 자라지 못하게 두둑 위에 검정 비닐을 씌우는 것을 말한다. 전종휘 농사꾼님은 비닐을 혐오한다 했지만, 비닐 멀칭의 이점은 또 있다. 수분이 마르지 않아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감자가 땅속에서 알아서 자란다. 주말 농부에게는 노 비닐, 노 농사. 비닐 없이...
풀 뽑다 ‘열사’ 되는 건가제1373호 얼치기 초보 농군에 불과한 내가 처음 밭을 일굴 때 나름의 농사철학 비슷하게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소출이 좋은 농부는 못 될지언정 땅심을 죽이는 농부는 되지 말자. 전북 부안 변산에서 농사짓고 사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책을 몇 권 읽고 생긴 생각인데, ‘아는 것을 행하라’는 게 옛사람들의 가르침 아니던가...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제1372호 깨가 털어진 밭은 고왔다. 우유 빛깔이었다. 가을 햇살을 머금으면 반짝반짝한 게 언뜻 밭이 아니라 모래사장 같았다. 4대강 공사를 하기 전 내성천 모래톱이 저런 빛깔이었던가. 그때는 몰랐다. 왜 그런 맑은 빛깔이 났는지. 동네 다른 밭은 안 그랬다. 죄 거무튀튀했다. 멋도 모르고 외쳤다. “새 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