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라 생강이 한참 모자라네 [농사꾼들]제1438호 올해(2022년) 초, 내년 전남 곡성으로 이주를 결심하고, 집을 구하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으로 수익을 낼까 고민하던 찰나 이웃의 권유로 토종 조선 생강 농사 100평을 하게 됐다. 본업인 토종씨드림 활동가의 일과 따로 공부하는 일이 바빠서 안 하려 했는데, ‘농사도...
어디 도망 못 가는 나무를 심자[농사꾼들]제1436호 이 땅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서른 중반, 개인적으로 세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 사건이 있었다. 지난 시간 내가 한 모든 선택이 후회스럽고 나이는 먹고 모아둔 돈은 없는 현실이 한심스러웠다. 스님들 책을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매일 팔딱팔딱 뛸 것 같던 그즈음,...
맨손으로 세운 밭 [농사꾼들]제1435호 올해로 4년째 이 밭을 쓰는 우리는 이 땅의 단점을 잘 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것. 폭우가 내릴 때마다 우리 텃밭에서도 얼마나 많은 작물이 죽어나갔던가. 흙이 딱딱해 두둑을 충분히 쌓기 힘든데다 우리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 비가 올 때마다 애써 쌓아올린 두둑이 파이고 깎여나갔다. 거기에 풀이 무성...
뱀은 어디서 왔을까제1434호 “뱀이다.”비명과 함께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오금이 저려왔다. 지난봄 벌어진 일이다. 모진 겨울을 건너 따사로운 햇볕이 고마운 날이었다. 밭 한 귀퉁이에서 물을 저장하는 큰 대야를 옮기려 한쪽을 드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새끼 뱀 두 마리가 똬리를 튼 채 ‘뭘 봐?’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대가리가...
겨울 고라니 먹을 것까지 챙겨야지제1433호 옥수수 파는 건 끝났지만 옥수수 농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덜 여문 것, 너무 쇤 것을 빼고 딱 좋은 것만 골라 따서 팔고 나니, 절반은 그대로 옥수숫대에 매달린 채 남았다. 남은 옥수수는 완전히 여물어 말라가고 있다. 엄마랑 진부에 갔다. 엄마는 남은 옥수수를 보더니 그대로 바구니를 들고 옥수수밭에 ...
주의! 언덕을 함부로 파헤치지 말 것제1432호 텃밭 임대료를 입금한 뒤 주인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밭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여기만은 아니겠지’ 싶었던 곳이 당첨이다. 남쪽에는 아파트가 떡하니 자리잡아 해를 가리고, 차도와 버스정류장 바로 아래에 있는 모호한 자리라 오래 묵혀 풀로 뒤덮인 땅이었다. 호기롭게 로터리치는(밭의 흙을 뒤집는) 일 ...
그래도 농사를 지을 테다제1431호 “그거 물릴게요. 계산에서 빼주세요.”쉰 살이 되도록 오로지 자존심 하나로 버틴 내가 동네마트 계산대에서 사려던 물건의 가격표를 보고 모양새 빠지는 짓을 한 건 2주 전이다. 평소 참나물이나 콩나물 등 나물 반찬이 먹고 싶을 때 내가 사다 해먹는다. 이날따라 채소 매대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푸릇푸릇한 ...
농사 왜 지어요? 대답은 내년에제1430호 옥수수 수확을 마쳤다. 옥수수 팔아 160만원을 벌었다. 이건 매출이고, 택배비·포장재·씨앗·비료·농기구 등 들어간 비용을 제하면… ㅋㅋ 계산은 생략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친이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뭐 번 거겠어.”멋모르고 800평이나 옥수수를 심어버렸던 우리 부부는 올해 농사로 많은 걸 깨달...
집 180m 앞에 텃밭이 생겼다제1429호 “우리 공항철도 타고 딱 한 역만 더 가볼까?”그렇게 인천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취업길에 상경한 나는 서울에서 일하고 결혼까지 했으니 쭉 서울 사람으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좁은 신혼집에 살림살이가 불어나 이사를 피할 수 없던 시기에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집값이 너무 올랐다. 주말마다 ‘부동산 투어’를 하다...
패잔병의 전리품 ‘개복숭아술’제1428호 올해 농사는 망했다. 옥수수, 고추, 오이, 호박, 가지도. 숨넘어갈 듯한 가뭄에 이어 한 치 오차도 없이 들이닥친 장마를 이기지 못했다. 얼치기 농군이 부지런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주말마다 덥다고 안 가고 비 온다고 안 가고 피곤하다고 안 갔더니 밭이 작살났다. 지금 밭을 지배하는 건 내가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