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으로 출근한 노동운동가제1117호‘fsa 8b29516.’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디지털 자료 분류번호다. 검색창에 타자를 치고 따라가보면, 낯익은 흑백사진을 만날 수 있다. 신산스런 표정의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이 오른손으로 턱을 받친 채 저만치를 바라보고 있다. 남루한 차림을 한 커트 머리 두 아이가 여성의 양편...
거침없던 체스왕, 망명지에 잠들다제1116호미국과 옛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소련은 세계 최고의 체스 강국이었다. 이 시기 어떤 체스 경기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당시 막 소련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반체제 인사와 소련 체스계에서 가장 촉망받던 ‘모범적 공산주의자’의 대국이라면 어땠을까? 1978년 필리핀에서 열린 빅토르 ...
괴짜 인권운동가의 긴 투쟁제1114호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70여 년간 이탈리아에는 수십 개의 내각이 들어섰다. 1948년 공화제 출범 이후 기독교민주당 연립정권이 40여 년의 장기 집권에 성공했으나, 군소 정당 난립, 당내 파벌 간 알력 싸움 등으로 1996년까지 내각이 55차례 바뀌는 등 정치적 혼란 속에 있었다....
공포의 시대를 돌아보라제1113호혐오범죄에 스러진 넋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 또 다른 혐오가 민낯을 들이민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무지와 혐오를 뒤섞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화환은 2016년 5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악’의 현현이다. “난 누구든 다 믿어. 다만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사람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바마코의 눈, 눈을 감다제1112호 최근 몇 년간 예술계에선 서아프리카 말리의 사진작가 말리크 시디베(Malick Sidibé)의 1960~70년대 사진이 다시 주목받았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아프리카 사진’에 바치는 첫 전시를 열었고, 잭 셰인먼 갤러리에선 시디베의 개인전이 진행...
아픈 아이를 두고 의사는 떠났다제1111호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은 처음부터 아득했다. 칙칙한 색감이 현실감을 덜어냈다. 어둑한 복도로 느릿하게 들것이 들어왔다. 복도 끝은 중환자실이었다. 병실에서 나온 그는 초록색 수술복 차림이었다. 몇 차례 복도를 오가던 그가 이내 화면에서 사라졌다. 야간 당직근무를 위해 응급병동으로 향한 ...
철거용 철퇴 막은 ‘폭스의 유령’제1110호 1910년대와 1940년대 사이 ‘종합예술’ 영화의 황금기. 미국 전역에는 마치 신전처럼 보이는 건축 양식의 대형 영화관이 수백 개 지어졌다. 그것은 ‘무비 팰리스’(영화 궁전)라고 불렸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도 무비 팰리스가 몇 곳 있었는데 대부분은 사라지거나 멀티플렉스로 개조됐고, ...
아옌데 연정에 참여했더라면제1109호 기억은 상대적이다. 최고의 순간도, 최악의 순간도 기억된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들여다보는 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삶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은퇴한 독재자가 쓰러진 것은 2006년 12월3일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16년6개월간 철권을 휘둘렀던 칠레의 독재자를 쓰러뜨린 건 심장...
굿바이, 미스터 나이스제1108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날린 매력적인 ‘대마초 밀수왕’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하워드 마크스가 4월10일 영국 웨일스 남부의 자택에서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 마크스는 1970년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대마초를 유통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43개의 가명을 썼고, ...
역사상 첫 퓰리처상 반납 끌어낸 ‘진짜 기자’제1107호 “지미는 8살이고, 3세대째 헤로인 중독자다. 조숙한 꼬마는 연노랑색 푸석한 머리에, 부드러운 갈색 눈망울을 하고 있다. 암갈색 팔뚝은 깡마른 채다. 아기처럼 부드러운 피부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주근깨처럼 박혀 있다. …아이는 5살 적부터 중독자로 살아왔다.” 26살 기자를 ‘스타덤’에 올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