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탈리아 언론은 오랫동안 그를 ‘괴짜’로, 급진당은 ‘돈키호테적’이라는 말로 묘사하곤 했다. 판넬라는 ‘정치적 쇼’에 능숙한 베테랑 운동가였다. 그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시위는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나 있어 이목을 끌었다. 교황과 절친했던 무신론자 판넬라는 오랜 정치생활 동안 수많은 단식투쟁을 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1970년대 이혼과 낙태 허용을 요구하기 위해 벌인 단식투쟁이었다. 이혼법 투쟁 당시 그는 하루 3잔의 커피와 비타민으로 78일을 버텼다. 그는 최근까지도 단식투쟁을 벌였는데, 2007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처형된 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투쟁에 나섰고, 2011년 81살로 교도소 과밀 수용에 반대하며 벌인 단식투쟁은 석 달간 이어졌다. 그는 장황한 연설과 극적인 연기로도 유명했다. 1995년 판넬라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로마의 나보나 광장 한복판에서 거리의 사람들에게 공짜로 대마초를 나눠주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탈리아의 불법 마약 정책이 마피아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며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한번은 선거캠페인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하는 시위로 14만8천달러를 거리의 시민들에게 뿌렸고,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에 저항하며 벌인 단식투쟁 중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소변을 마시기도 했다. 폭력적인 정치테러가 난무하던 정치적 격변기, 그의 변칙적 시위들은 정치 참여 방법에서 이탈리아인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했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이들이 그와 급진당이 정치적 혼란기에 유용한 안전밸브 역할을 했다고 여긴다”고 썼다. ‘시민의 자유’ 수호자였던 그는 시민의 권리를 탄압하는 동유럽 공산주의 정부를 극렬히 비난했으며, 초기 유럽연방주의자 중 한 명으로 유럽 통합에 힘쓴 이탈리아의 유명 정치가 알티에로 스피넬리 등과 함께 유럽연합(EU)의 탄생을 위한 개혁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판넬라는 무신론자였고, 이탈리아 사회 내 문제에 관여하는 바티칸 교황청에 맞서 싸우는 반교권운동에 평생을 바쳤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최근 들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부활절 주일, 판넬라는 8천여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선 수많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부활절 축복이 이뤄지고 있었다. 판넬라를 비롯한 ‘비신도’들은 기아에 시달리는 전세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려고 이곳에서 행진을 벌였다. 이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관중을 향해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어려움에 처한 어린아이들”을 돌봐달라고 간청했다. 이들의 시위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표한 셈이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판넬라의 생일에 자신의 책을 선물로 보냈고, 2014년 판넬라가 교도소 환경 개선을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벌일 때 단식을 중단하라는 설득 전화를 직접 걸기도 했다. 바티칸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판넬라가 반교회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무척 좋아했으며, 재소자의 인권 옹호 등 인권 문제와 관련해 교황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판넬라에게는 구식 자유주의 문화와 민주적 급진주의가 공존했다. 급진적 인권운동에 앞장선 그는 자유시장주의자였고, 국가 부채 증가에 반대했으며, 복지국가에 비판적이었다. 전통적 좌우 이념의 스펙트럼 안에 위치짓기 힘든 인물로 지지자들에게는 ‘탈이념적’이라는 평가를, 반대자들에게는 ‘냉소주의자’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80년대 이탈리아 사회당 당수였던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와 동맹을 맺는가 하면, 1994년과 1996년 선거에서는 중도우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지지했다. 2006년에는 다시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좌파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영국 <데일리뉴스 서비스>는 이에 대해 “판넬라는 이렇게 함으로써 기득 정당과 기업들의 지배적 위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이 선택들은 이탈리아를 더 현대적이고 인간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그가 벌여온 긴 투쟁의 일부일 뿐이었다”고 썼다. 탈이념적 혹은 기회주의자로 평가 판넬라는 결혼한 적이 없다. 그는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유족으로 그의 오랜 여자친구로 알려진 산부인과 의사 미렐라 파라치니가 있다. 이로사 객원기자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