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도 몸이 있다제1396호 전문적으로 번역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번역을 말할 때 기대는 책이 있다. 책상 위에 늘 펼쳐져 있는 책, 다와다 요코의 <여행하는 말들>이다. 나는 번역하는 동안만큼은 그 책을 덮지 못한다. 불문학을 번역하는 내가 독문학을 번역하는 일본 번역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조금 이상하지...
창작자로 사는 마음제1396호 마이큐(MY Q)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19살 때다. 1집 타이틀곡 <며칠째>를 들으며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 있나 싶었다. 세월이 지나 그의 새 앨범 소식을 들었다. 기대 반 걱정 반 음원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앨범에 달린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저희 동네에 작은 구멍가게...
‘동양의 레닌’이 재간을 키운 곳제1396호 박진순(朴鎭順)이라는 사람이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살았던 이다. 1930년대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는 잡지 <삼천리>에 그 사람의 인물평이 실려 있다. 그는 러시아 거주 재외동포였다. 조선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단체 한인사회당 창립에 참여하고, 국제당 제2차 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
개복숭아 효소 폭발 사건제1396호 우리 집 부엌 한편에 나만의 아주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엔 내가 요리할 때 종종 쓰는 보물이 가득하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만든 각종 효소다. 스무 개 남짓 밀폐된 병에 담겨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주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농번기 때 밭에 다녀온 주말에 만들었다. 피곤한 몸을 이끈 채 한 시간이고...
여성의 몸을 훑는 여성들제1396호 내 몸을 구석구석 훑는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선이다. 뭐가 묻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기엔 시선의 궤적이 넓다. 대체로 내 얼굴부터 가슴과 허리, 다리 그리고 다시 얼굴로 돌아와서 내 귀의 피어싱을 바라본다. 이 궤적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 시선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은 건 ...
웃기는 정치에 디테일을 얹으니제1396호 “팬덤 정치 문화 때문에 진영이 많이 갈리고 비판 댓글을 두려워하면서 정치 풍자가 사라졌다. 수위와 균형을 맞추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2011년부터 <에스엔엘>(SNL)을 이끌어왔기에 그 노하우가 생겼고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최근 정치 풍자를 내세운 코미디쇼 가 호평을 얻고 ...
중독, 몰락으로 가는 폭주 기관차제1395호 흔히 하는 새해 결심 중 하나가 술, 담배, 약물 등을 끊겠다는 것이다.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중독은 힘이 세다. 중증 중독자들은 찰나의 기쁨을 위해 많은 자원과 기회를 포기하고 때론 목숨까지 건다. 왜 그럴까?미국 행동신경과학자 주디스 그리셀의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이한...
방문판매 벨 누를때 손이 떨렸다제1395호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중학교 뒤에 시영아파트를 지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1984년 어느 여름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싣고 고덕시영아파트 20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 맨 뒷동이라 산이 가깝고 공기가 맑아서 좋았습니다. 아직 여름방학 전이어서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며칠 동안 ...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작] 불안할 용기제1395호 <한겨레21>은 해마다 손바닥문학상을 공모합니다. 2020년부터는 주제를 정해 원고를 모집했습니다. 2021년의 주제는 ‘어제와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모두 225편의 글이 도착했고, 최종심에 오른 21편 가운데 당선작 3편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로드킬당한 동물의 ...
딱 한 번만 진짜가 되고 싶다제1395호 “무엇이 저 학생들을 저렇게 열심히 하게 하는 걸까요?”연극과 뮤지컬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기말을 앞두고 프로덕션 공연을 한다고 땀을 흘리고 있다. 한 학기 동안 연출가는 자기가 연출할 작품을 선정하고 연기 전공인 학생들, 그리고 무대설치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협업해서 작품을 올린다. 한 학기 내내 공부하고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