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고향이었던 ‘교황’의 생애제1002호“김현 비평은 높은 자리에서 작품을 지도하기보다 그것에 바짝 다가가 다정스레 입 맞추었다”는 어느 작가의 표현을 빗대자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비평은 작품에 다가가 살포시 입 맞추기보다 독자의 자리에서 그것을 깐깐하게 톺아보는 것에 가까웠다. ‘독일 문학의 교황’이던 그는 ‘주례사 비평’을 할 줄 몰랐…
공학과 디자인은 쌍둥이제1001호“디자인이란 예전에는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며 이는 바로 공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디자인공학’이 전세계 기업의 기준이 되었지만, 헨리 페트로스키 미국 듀크대학 석좌교수가 자신의 첫 책 <인간과 공학 이야기>(To engineer is human...
기자가 찾아나선 ‘친일토벌부대’제1000호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1938년, 지금의 중국 지린성 안투현에 ‘간도특설대’가 만들어졌다. 만주국 치안부 산하 부대의 하나로, 조선인으로 이뤄진 특설 부대였다. 일제는 만주국을 세웠지만 항일 무장세력의 끝없는 저항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제는 이들을 ‘비적’ ‘공비’라 부르며 토벌작전에 열을 …
기자라는 이름이 매력적인 이유제999호미국에 최초의 ‘거대한 실패’를 안겨준 베트남전쟁은, 얄궂게도 역대 최고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케네디 시절에 시작됐다. 물론 그 전쟁을 구체적으로 수행한 인물은 케네디 사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부통령 린든 존슨이었지만, 미국이나 베트남 모두에 아물지 않는 상흔을 남기고 세계에 미국 패권주의의 사나움을 드러…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제998호영화는 한 세기만에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예술로 떠올랐고, ‘거장’이라 불릴 만한 수많은 영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높은 제작 비용과 세세한 분업 체계 덕분에 영화는 ‘어느 누군가의 작품’이 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거장들은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작가’가 됐다. 이들은 때로 자서전처럼 직접 저술한…
‘작은 거인’의 삶, 마오와 같고도 다른제997호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20세기에 한해서 본다면 굉장히 객쩍은 예측이었다. 지난 세기 자신의 국기를 붉은색으로 갈아치운 대다수 나라들은 후후발 자본주의국가(러시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3세계의 식민지(북한·베트남·캄보디아 등)였다. 산업혁명의 발원…
과학사를 권력 빼고 바라보면제996호마젤란은 태평양을 발견하고 탐험한 최초의 항해자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태평양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마젤란보다 수천 년 앞서 대양을 항해했던 이들에게 그가 한 여행 따위는 이미 일상이었다. 유럽 문명 중심의 세계사에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역사적 착각’을 바로잡는 일은 과학사에…
우리의 노동은 약하지 않았다제995호“한국에서는 노동이 약하고 국가가 강했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 민족국가 건설의 전략과 목표, 그리고 노동 정치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노동자는 체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모습에 머물렀다고 이해하는 것”이 국가와 노동의 관계를 바라본 기존 관점이었던 탓에 60년대는 그저 ‘약한 노동’과 ‘강한 국가’의 …
박근혜 시대의 20자평은?제994호새삼 역사를 서술하는 작업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현대사가 담긴 역사 교과서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고, 역사상 최초의 원거리 전투병력 파병이었던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제대하지 못한 늙은 ‘노병’들이 격한 시위를 하는 세상이니 말이…
노래와 시를 타고 퍼진 혁명의 열기제993호먼 훗날 2013년 한국의 겨울을 이야기할 때, 너도나도 종이에 손글씨를 써가며 ‘안녕들 하십니까’를 물었던 일들은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 수많은 대자보를 대하는 우리의 감정은 지금은 너무도 생생하지만, 언젠가 감정은 휘발되고 건조한 사실들만 남는 시기가 올 것이다. 물론 신문기사를 비롯해 지금의 이 감정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