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 사이 이상재가 있다제1002호통영.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남해의 푸른 물빛과 흩어진 섬들의 곡선과 붉게 피어난 동백의 단호한 낙하 같은 것들을 직접 감각해봤다면, 이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의 심성을 짐작하는 데 좀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물메기탕의 시원함도 맛봤다면 좋았을 듯싶다. 이런 바다의 향취와는…
이 외진 곳, 유명자를 잊지 마시라제1002호2011년 11월, 한 일간지에 썼던 칼럼의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한진중공업 노사 간 합의 소식을 듣고, 단체협약 회복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419일째 노숙농성 중인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을 찾았다. ‘아, 그 곱던 얼굴이…’ 내 말에 ‘그렇지요? 제가 본래 좀 예뻤지요?’라...
고급한 짝짓기제1002호배가 부른데도 더 먹거나 번식과 무관한 교미를 하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최근 안철수 세력과 민주당의 신당 창당 발표를 놓고 “저급한 짝짓기”라 비판한 새누리당 대변인의 대변을 보며 진지하게 ‘고급한 짝짓기’를 생각해봤다. 모두를 두루 만족시키는 거? 세상에 그런 짝짓기가 어디 있나. 번식을 ...
1등제1002호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최고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최고는 왜 아름다운지를. 은퇴 무대가 된 소치 올림픽에서도 그녀는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사했는데, 그것은(개인적 견해이긴 하지만) 최고와 1등은 다르다는 ‘자각’이었다. 그렇다. 1등과 최고는 분명 다른 것이다. 올림...
그들을 키운 건 팔할이 마감제1001호글마다에는 기자 이름이 적히지요. 하지만 글을 쓰는 건 인간이 아니라 ‘마감’이라는 놈입니다. 마감이 없으면 전세계 잡지는 종말을 맞이할 겁니다. “너 마감이냐, 나 한홍구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마감과 맞짱 뜹니다. 마감의 명치를 가격하여 우아하게 내리꽂습니다. 원고 청탁을 할 때부터 나는 원래 마감…
“독자들이 국제면을 읽는다”제1001호<한겨레21>. 스무 살이라고 한다. 놀랐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내 새끼라 여기며 미운 정 고운 정 쏟아놓고는 정작 그 나이를 몰랐다. 인연에 무심한 내 게으른 습성을 잠깐 나무랐다. 아무튼, 그 스무 돌 즈음해 세계니 역사니 변화 같은 아주 추상적인 낱말을 들이대며 상당히 교묘한 강압...
네 ‘멋’대로 입어라제1001호내가 만약 <한겨레21> 편집장이라면 김도훈에게 패션 칼럼을 맡길 것 같다. 그만큼 스타일이 돋보이는 기자인데,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주필이 되어 다시 한겨레신문사로 출근하게 된 그가 얼마 전 이렇게 투덜거리는 걸 들었다. “광대가 된 것 같아요. 여기선 아무도 저처...
‘역사의 종말’이 ‘희망의 종말’로제1001호<한겨레21>이 창간된 20년 전에 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에서 가야사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국어 실습을 겸해서 나의 고향에 유학 온 한국인들과 자주 만났는데, 상당 부분은 운동권 출신이고 그중 대다수는 이미 전향한 뒤였다. 그들이 1980년대에 꿈꾸었던 사회주의 본고장 소련...
1분 안에 옷걸이로 책받침대 만들기제1001호준비물: 옷걸이, 펜치 하나당 35원입니다. 전세계 어디에 가도 똑같습니다. 프랑스 몽마르트르에 가도, 우크라이나에 가도 똑같습니다. 옷걸이는 생산단가가 워낙 낮아 중국에서밖에 못 만듭니다. 그러니 서울 홍제동에서도 삼성동에서도 똑같습니다. 옷걸이를 모아서 세탁소에 가져다줘도 잘 안 씁디다. 새 ...
모래시계 말처럼 정말 검사가 많은가제1001호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시간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동안 수도 없이 거듭나겠다느니 뼈를 깎는 반성을 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 검찰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겨레21>이 창간되던 20년 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