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마야인 ‘애니깽’ 후손의 전통 한복이 벽에 걸려 있다. 이 후손은 할아버지 이전 세대가 썼던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망이 높다. WPP재단 제공
‘고려사람’ 작업은 매그넘 수상도
마이클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자란 이민 3세다. 1977년,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볼리비아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움직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한국인 대부분은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미국을 종착지로 생각했고, 이곳 한인공동체에서 만나 결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그 꿈을 좇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뒤 1986년, 마이클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4개월 만에 부모와 함께 다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다.
2001년 아버지는 자신이 1980년대부터 써온 일안반사식 카메라를 15살 아들의 손에 쥐여줬다. 그 카메라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포기한 아버지의 젊을 적 꿈이 담겨 있었다. 아들은 그 카메라의 초점을 이민자 후손이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맞췄다. 그리고 세계를 다니며 한인 동포들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는 사진가가 됐다.
마이클은 이미 ‘애니깽’ 작업 이전부터 ‘고려사람’ 작업을 통해 한인 동포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석사과정으로 언어학을 공부하던 중 중앙아시아 거주 한인 동포들이 사용하는 함경도 방언과 이들 특유의 언어에 관심을 가졌고, 2014년 연구조사차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세 차례 여정을 떠났다. “난 카자흐스탄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다. 난 고려사람이다.” 마이클은 아직도 이들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항상 외국인이어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고려사람’ 위에 투영돼 있었다.
‘고려사람’ 사진 작업은 언어 연구라는 본래 의도를 넘어 보도사진 집단인 ‘매그넘’ 주관 ‘30살 미만 30대 사진가’(30 Under 30) 사진 공모에 선정돼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사진 전문 월간지와 수원국제사진축제를 통해 한인 동포에 대한 마이클의 작업이 소개됐다. 이후 그는 영국 런던에서 사진학 석사과정을 공부했고, 현재는 유럽에서 살고 있다.
‘집’의 의미를 묻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닌 그는 어디서도 ‘집’(home)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저는 어디서나 외국인이에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다른 외모와 미국 태생이란 이유로, 미국에서는 라틴 문화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돼야 했죠.” ‘집’을 찾고 싶었던 마이클은 2006년 정부가 주관한 재외동포 대상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서울에 머물며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공부한 적도 있다.
세계적인 보도사진상을 받은 그는 스스로를 ‘사진기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진은 제가 연구하는 대상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해요. 어쩌면 사진가라는 소개도 언어학과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 ‘마이클’을 한정짓는 것 같아요.”
마이클은 사진 공모에서 수상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여러 공모를 통해 사진으로 취재한 한인 동포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는 이번 2017 월드프레스포토 수상 이후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로부터 받은 특별한 전자우편 내용을 소개했다. “조부모님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한국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당신의 사진을 보고 지금 나 자신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마이클에게는 수상보다 이런 소통이 더 중요하다. 작업 시작부터 사진 공모 수상까지 모든 과정은 지금 그에게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의미 있는 경험이 되고 있다.
마이클은 이번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진작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자란 한인 동포예요. 국제 이민이 빈번해지는 세계화 사회에서 아마 ‘민족’은 우리 한인 동포에게 뿌리와도 같은 상징이 될 거예요.”
“한인 동포 연구 계속할 것”
그는 앞으로 자신만의 정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 동포에 대해 계속 연구해나갈 예정이며, 올해 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가 ‘고려사람’ 작업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한인 동포에 대한 더 많은 사진은 마이클과 ‘월드프레스포토’ 누리집에서 각각 볼 수 있다.
http://www.michaelvincekim.com
https://www.worldpressphoto.org/collection/photo/2017/people/michael-vince-kim
김성광 <한겨레> 디지털기획팀 기자 flysg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