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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데이터 공룡의 등에 오르는 방법

‘넥스트저널리즘스쿨’ 수강생의 미국 구글 본사 탐방기… 번역·지도·트렌드, 가파른 기술 발전과 뉴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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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1 17:24 수정 : 2016-06-0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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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저널리즘스쿨 수강생들이 구글 뉴스랩 사이먼 로저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김혜인, 이민경, 통역자, 사이먼 로저스, 연다혜씨. 이완 기자

“여기 맨날 사진으로 보던 데잖아! 구글대표 이미지!” 지난 5월16일, 우리는 ‘우버’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1시간을 달려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플렉스에 입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검색엔진 ‘구글’과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만든 곳, 구글의 본거지였다.

우버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하얀색 마시멜로를 품에 안은 초록색 안드로이드 모형이었다. 그 뒤로 커다란 구글 로고가 걸린 넓은 건물들이 동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방문자 센터가 있는 43번 건물을 향해 더 안으로 걸어가자,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보이는 육식 공룡의 화석이 서 있었다. ‘웬 공룡?’ 의아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공룡 테크 기업 구글에 왔구나!

우리가 구글을 방문해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첨단기술 기업의 최강자 구글은 왜 ‘돈 안 되는’ 저널리즘에 자원을 투자하고 있을까, 그들이 시도하는 뉴스의 혁신은 무엇일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저널리즘과 구글의 만남을 본 것은 지난 1월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이었다. <블로터>와 <한겨레21>이 구글코리아의 후원으로 진행한 디지털 시대 미래 언론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2주 동안 60여 명의 수강생이 하루에 서너 개씩 진행되는 강의를 들었다.

첫쨋주엔 저널리즘의 가치와 원칙을 되새기고, 기존 미디어들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살폈다. 둘쨋주엔 미디어에 활용할 수 있는 구글의 다양한 도구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등으로 데이터 시각화 실습을 했다. 2주 동안 쉼없이 달리면서 조별 과제와 개별 과제를 했고 최종 평가를 거쳐 3명이 선발됐다. 이민경·김혜인·연다혜, 이렇게 3명이 운 좋게 미국 구글 본사 탐방 기회를 얻었다.

첨단 기업인 구글에서 우리가 주로 만난 것은 흥미로운 기술이었다. 뉴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나 뉴스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심지어 지금 당장 이용 가능한 기술이 그곳에 있었다. 스마트폰에 구글 번역 앱이 설치돼 있다면 지금 켜보라. 카메라 아이콘을 누르면 구글 번역에 통합된 ‘워드렌즈’(Word Lense) 기술을 쓸 수 있다. 워드렌즈의 개발자 오타비오 굿은 독일을 여행하던 중 독일어로 쓰인 간판을 읽고 싶었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굿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워드렌즈 개발로 연결시켰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번역하고 싶은 안내판이나 문서에 초점을 맞추면, 해리 포터의 비밀지도처럼 차츰 원래 언어가 지워지고 그 자리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언어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워드렌즈·지오포굿, 발전하는 기술


취재하다 가끔 영어가 아닌 독일어나 중국어로 된 문서를 ‘해독’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워드렌즈를 이용하면 번역자를 찾거나 포털 검색을 하지 않고도 빠르게 해석이 가능하다.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아직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는다.

현재 가능한 대안은 한국어 대신 다른 언어로 우회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한국어-독일어 사이에 번역된 글의 양이 영어-독일어 번역 글의 양보다 훨씬 빈약하므로 영어 번역으로 우회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구글 번역은 데이터가 풍부할수록 번역 알고리즘을 더 정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오포굿’(Geo for Good)도 주목할 만한 구글의 서비스였다. 환경과 질병에 대한 기사를 쓰려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지오포굿팀은 구글의 축적된 지도와 기계학습(머신러닝) 능력을 모아 공공의료와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말라리아 발병을 획기적으로 낮춘 사례가 있다. 그동안 스와질란드 보건국은 지역 전체에 동일한 정도로 방역 작업을 했다. 지오포굿은 발병 위험이 높은 지역을 지도에 표시해 집중 방역을 하면 효과도 좋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라리아 발병 위험도가 매달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어디인지, 고도가 낮고 습도가 높아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곳은 어디인지, 이미 방역이 끝난 곳은 어디인지, 모기장을 설치한 곳은 어디인지를 지도에 중첩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집중 방역을 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말라리아 발병률이 눈에 띄게 낮춰졌다. 이 사례를 들으며 문득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떠올랐다. 많은 목숨을 잃기 전 우리가 이런 기술을 이용할 수는 없었을까. 미디어가 전염병에 최우선적으로 노출된 지역을 지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발전된 정보기술(IT)이 바꿀 수 있는 삶을 생각하게 된 기회였다.

실시간 번역과 지도 활용이 최신 기술이라면 우리 주변에 널린 데이터를 이용하는 ‘고전적인’ 방법도 배웠다. 구글 뉴스랩 데이터 팀은 실시간 검색어를 수집하고 있다. 어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무엇을 검색하는지 데이터를 축적한다. 그 데이터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미국으로의 이민 추세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인용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스페인어 검색량이 몇 년 동안 얼마나 증감했는지 자료를 뽑아 히스패닉 계통 이민 추세를 짐작하는 방식이다. 동성애에 대한 검색어를 추적하여 미국인들의 질문 유형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뀐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글에 저장된 데이터는 사회의 의식 변화를 잡아내고 있었다.

구글 뉴스랩과 ‘셸 위 뉴스’?

구글 ‘워드렌즈’ 앱을 가동한 모습. 스페인어 글자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져다 대면 바로 영어로 변환해 보여준다. 위키피디아

‘구글 데이터와 저널리즘’을 소개한 구글 뉴스랩의 사이먼 로저스는 진지한 기사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연예기사에도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온라인 연예기사가 기사 끝부분에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을 넣는데 이는 객관적이지 않고 기자의 편의에 따른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로저스는 지난 3월 말 오스카 시상식을 예로 들었다. 구글 데이터 팀은 후보작과 수상작이 발표될 때 검색어가 분초 단위로 변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이를 그래픽으로 보기 쉽게 만들었다. 시상식 초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검색량이 가장 많았다. 그러다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스포트라이트>가 상을 받으며 검색량이 치고 올라왔다. 이걸 모은 트렌드 서비스를 기사 속 그래픽으로 넣는 것이다. 수많은 ‘진짜’ 누리꾼들의 관심사를 ‘관음’할 수 있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노력은 왜 하는 것일까. 구글플렉스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들으며 계속된 이 의문은 마지막 구글 뉴스랩 총괄 리처드 깅그라스와 만남을 통해 풀렸다. 깅그라스의 말을 종합해보면, 구글과 언론은 전략적 공생관계다. 언론사 입장에선 (포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뉴스를 유통할 창구가 열리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구글 내부적으론 방대한 데이터를 이루는 근원이 뉴스에 있기에 뉴스가 미래에도 계속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풍성한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디지털 기술과 미래의 미디어를 고민하는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은 이 공생관계를 이어갈 가교 역할을 할까.

‘다양성’, 실리콘밸리의 가치

이틀 동안 7개 프로그램, 영어로 진행되는 일정. 한편으로 뿌듯하고 한편으론 벅찬 일정이었다. 구글 사람들에겐 1시간 단위로 쉼없이 이어지는 일정이 당연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이 다 빠질 때쯤 돌아오는 식사 시간은 행복했다.

구글은 거의 모든 건물에서 직원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직원의 출신과 종교 등 다양한 기호를 고려해 인도식(인도 음식을 주문하는 줄이 제일 길다!), 서양식, 일식, 채식자용 식사 등을 제공한다. 이 가운데 골라 먹으면 된다. 유리 그릇에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와 제철 과일을 골고루 담아 먹기도 하고, 종이 상자에 햄버거를 담아 먹기도 한다.

실내보다는 야외 테이블이 인기가 좋았다. 휴가철 백사장처럼 구글 광장에 파라솔이 꽂힌 테이블들이 도열해 있었다. 구글 직원들이 여유롭게 밥을 먹는 사이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여유와 이색적인 광경에 말없이 음식을 한술 입에 떠넣고 하늘 보고, 꿀꺽 삼키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직원 각자가 맡는 역할을 귀중하게 여기기에 직원 복지는 지출이 아니라 투자의 작은 부분이라고 믿는 기업문화가 살갑게 다가왔다.

식사를 하고 나면 으레 그렇듯 화장실을 가야 한다. 2일째 프로그램이 진행된 건물에는 방문자가 출입할 수 있는 구역 내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다. 장애인도 함께 쓸 수 있게 만든 화장실이었는데 크기가 우리 집 안방만 했다. 화장실을 쓰고 나오자 밖에 180도로 젖혀지는 휠체어에 탄 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를 도와주는 동료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갔다. 저 큰 휠체어가 화장실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저만한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편으론 첨단기업에서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거동이 가능한 직원이 일하는 광경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구글에서 일하는 한국인 개발자와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외부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인 개발자는 한국 기업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 구글 기업문화의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다양성’이라고 했다.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개인의 능력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언제 출근하는지, 언제 퇴근하는지, 자리에는 붙어 있는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의 업무만 잘 이해하고 해내면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해봐’라고 말한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면 그 역시도 ‘잘했다’고 말한다.”

저널리즘 구현은 누가 하나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을까.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결국 저널리즘은 언론이 구현하는 거고 구글 같은 테크기업은 도움을 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아.” “사실 난 아까 개발자들이 개인으로서 생각을 말하기보단 구글 대변인처럼 말해서 답답했어.” 이야기는 새벽 1시를 넘겼다. 시차 때문인지, 구글에서 보고 온 기술 때문인지, ‘돌아가면 무얼 할까’ 고민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민경 넥스트저널리즘스쿨 2기 수강생 ispirite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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