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7월6일부터 6주 동안 교육연수생 프로그램(제1064호 표지이야기 ‘좋은 기자 프로젝트’ 참조)을 진행하고 있다. 연수생들은 현직 <한겨레21> <한겨레> 기자들이 진행하는 10여 차례의 기사 분석·저널리즘 특강을 듣는다. 8월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21>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이뤄진 5차 기사 분석 특강을 지면 중계한다. _편집자
이문영 기자는 요즘 ‘콜드 브루(cold brew, 저온 추출) 커피’를 즐겨 마신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데 시간이 제법 든다. 뜨거운 물 대신 차가운 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맛과 향이 풍부하다. 특강 시작에 앞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이 기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커피가 미각을 깨워줘요. 미각이 예민해지는 만큼 세상살이에 더 예민해지면 좋을 텐데요.”
진지하게 해석하면, 그에게 ‘예민한 세상살이’란 사건 기사로 품지 못하는 일상의 문제를 감지하는 것이다. “사건이 노크를 하면, 그로부터 파장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
사건은 없지만, 일상은 있다
“그거 얘기 돼?” 한국 언론이 기사 가치를 평가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란다. 이때 ‘이야기’는 대부분 ‘사건’이다. 일간신문은 사건으로 넘친다. 사건과 사건이 경쟁하며 가장 ‘임팩트’ 있는 게 뽑혀서 1면부터 배치된다. 이 기자는 이번 특강에서 다룬 3가지 기획 ‘눈물의 밥상, 인권 밥상’(2014년 8~12월), ‘주간 고공21’ 시즌1~3(2013년 7월~), ‘가난의 경로’(2015년 5월~)의 공통점으로 사건보다는 일상을 다룬 점을 꼽았다.
이주노동자의 논밭과 노동자의 고공농성장, 빈민의 쪽방촌에는 ‘대단한’ 사건이 없다. 그는 다만 “엄청난 일상들”이 있다고 했다. “사건이라는 건 언젠가는 수습되고 끝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일상은 끝나지 않아요. 수습되지 않고 계속 가요. 사람이 정말 힘든 건, 그 사람한테 벌어진 사건보다는 그 사람이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일 가능성이 많거든요.”
먼 곳의 사건보다 가까운 곳의 일상이 독자에게 더 가닿는 점도 있다. “사건은 언론이 진실을 탐구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지만, 개별 사건은 사실 (독자와) 무관한 경우가 많아요. 지역 어디서 살인사건이 났다?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죠. 하지만 일상은 연결돼 있을 수 있어요.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실은 우리 일상과 그대로 연결되는 부분이죠.”
이 기자의 고민은 이처럼 일상과 일상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 일상과 일상을 잇는 ‘관계’를 드러내는 일에 있었다. ‘우리의 밥상은 인간다운가’를 물었던 ‘눈물의 밥상’(제1025호 표지이야기 ‘눈물의 밥상’, 제1033호 표지이야기 ‘우리가 눈감은 인신매매’ 등 참조)이 대표적이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자는 나(소비자)의 일상과 그들(이주노동자, 고용주인 농·축산·어민)의 일상이 얽힌 착취의 메커니즘을 보여줬다.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불행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밝혀냈다. “기존 보고서와 언론 보도의 질문은 ‘그들은 어떤 인권침해를 왜 당하고 있나’에 멈춰 있었다. 질문부터 바꿔야 했다. ‘그들의 비참한 노동과 우리는 무슨 관계가 있나.’”(<신문과방송> 2015년 3월호 ‘<한겨레21> 눈물의 밥상 시리즈 취재기’) 시리즈를 기획한 계기는 사건이었다고 했다. 2014년 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국 의류봉제업체 약진통상 앞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가 발단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공수부대가 진압하다가 노동자 5명이 숨졌다. 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유혈 사태를 다뤘다. 이 기자는 노동자들이 만드는 ‘옷’에 주목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한테 도달했을까 궁금했어요. 누군가의 피가 묻은 옷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가 우리 일상의 가장 기본적 단위인 ‘밥’, 먹거리도 생각했죠.” 그는 사건으로 시작해 일상으로 도착했다. 이 기자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사건이 지나가고 남은 일상의 공간”이다. 사건이 지난 뒤, 그 공간으로
하늘에서 농성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담거나 때로는 그들이 직접 글을 쓰는 ‘고공21’(제970~978호 시즌1, 제1043~1071호 시즌2, 제1072호~현재 시즌3)도 비슷하다. “노동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이유는 스스로 사건이 되기 위해서죠. 사건으로 기사 가치를 판단하는 언론에 대한 절망의 표현으로 기자들은 해석해야 합니다. 해고가 되고 굉장히 오래 싸워왔는데도 주목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갑니다. 하늘에 올라가는 건 그 자체가 사건이기 때문에 언론들이 기사를 쓰죠.” 그러나 농성이 길어져 하늘이 일상이 되면, 언론은 기사를 쓰지 않는다. 100일, 1주년 등 시기에 맞춰 기사를 쓰는 정도다.
이 기자도 그랬다. 2013년 봄에 한 대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200일 될 무렵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철탑을 맨손으로 올랐다. 이 기자를 향해 노동자들이 말했다. “200일 동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게 신기한가?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할 땐 무관심하다가 이럴 때만 보도하는 거 불편하다. 우리는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려고 올라온 게 아니다.”
기사를 마감해 내보냈지만 그 말은 이 기자의 마음에 남았다.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에게) 하늘이 일상이 되면 땅에서 겪던 일상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늘에서 이분들이 다시 사건을 만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매거진 속의 매거진 ‘주간 고공21’을 기획한 계기다. 사건이 있든 없든 기사를 내보내고, 그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까지 땅에 있는 사람들과의 언로를 마련한다는 약속이었다.
지난 4월 연재를 시작한 ‘가난의 경로’ (제1059호 표지이야기 참조)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9-20에 모여 사는 쪽방 주민들의 일상을 1년 동안 추적하는 탐사기획이다. 이들에게 강제퇴거를 요청하는 딱지가 2월에 붙었다. 강제퇴거라는 ‘사건’을 몇몇 언론이 단발성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기자의 시각은 달랐다.
“사건으로 접근하면 퇴거 말고 더 이상 쓸 게 없어요. 하지만 저는 주거가 불안정해서 견딜 수 없는 상황뿐만 아니라 가난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언론이 주목해야 한다고 봤어요. 가난은 긴 시간 그들이 옮겨다닌 경로에서 형성돼요. 이주 이후에 펼쳐지는 일상을 어떤 그릇으로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문자의 힘 살리려고 만든 ‘문영체’
‘문영체’. <한겨레21> 기자들이 이 기자 특유의 문체에 붙인 이름이다. “땅을 삼켰던 난폭한 물이 앙상하게 야위었다. 가뭄이 물의 살을 발라내자 물속에 파묻힌 땅들이 마른 뼈처럼 드러났다. 수몰의 역사를 축적한 물의 기억들은 갈라진 강바닥과 건물터 위에만 존재했다.”(제1068호 특집 ‘물의 뼈 가난의 뼈가 앙상한 가뭄’ 참조) 다른 기사들과 구별된다.
그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고 했다. 문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영상이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영상이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문자는 전달할 수 있다”고 이 기자는 말한다. “이야기를 풀어가거나 구성하는 방식에서 문자가 영상과 차별화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부인할 수 없는 건 ‘좋은 문장’과 이야기 구성과 전개 방식이에요.” 영상 매체가 ‘그림’을 찾으려 애쓸 때, 문자는 좀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 된다’는 건 권력의 민주화와 관련 있다고 봐요. 권력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어요. 그게 힘의 원천이거든요. 반대로 차별받는 존재들, 존재를 왜곡받는 이들은 제대로 이야기됨으로써 그 왜곡을 벗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죠.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매체로서 문자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기자는 “매거진이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획들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한겨레21>은 실험적인 문체를 구현하고 문자의 힘을 실천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일상을 다루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 언론은 시간을 잘 허락해주지 않아요. 일간지는 사건들로 넘치고, 그 사건들을 채우기에도 지면이 모자라죠.” 그는 “특종은 세상을 바꾸지만 일상을 파고드는 기사는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고공21’은 최근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하늘 다섯 군데에 노동자가 매달려 있다(대우조선해양·생탁과 택시·기아자동차·CJ대한통운·동양파일 노동자들이다). ‘조속한 폐간’을 위해 창간됐지만, 오히려 주간이 벅찰 만큼 하늘의 일상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면 무뎌지는 법이다. “(고공농성이라는) 비슷한 방식과 (하늘에서의 일상이라는) 유사한 고통이 우리에겐 일상이에요. 그 일상을 깨트릴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게 고통이죠.” 하지만 이 기자는 계속 적는다. “올라가 있는 분들의 답답함이 내 답답함보다 훨씬 커요. 일상을 다루는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고 시작한 기획이기 때문에, 아직은 어쨌든 해야죠.”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
사건은 끝나도 일상은 끝나지 않는다. ‘고공21’이 끝나도 고공농성은 계속된다. ‘가난의 경로’ 1년 추적이 끝나도 가난은 계속된다. “관건은 이거예요.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 동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기자의 동행은 ‘문영체’와 더불어 계속될 것 같다. “‘편안한 일상’을 구성하는 ‘가혹한 현실’을 발견해내는 것이 이 시대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신문과방송> 앞의 글)
강남규 교육연수생 slothlove21@gmail.com
8월11일 오후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이문영 기자(오른쪽 세 번째)가 교육연수생 5명과 취재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 기자의 고민은 이처럼 일상과 일상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 일상과 일상을 잇는 ‘관계’를 드러내는 일에 있었다. ‘우리의 밥상은 인간다운가’를 물었던 ‘눈물의 밥상’(제1025호 표지이야기 ‘눈물의 밥상’, 제1033호 표지이야기 ‘우리가 눈감은 인신매매’ 등 참조)이 대표적이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자는 나(소비자)의 일상과 그들(이주노동자, 고용주인 농·축산·어민)의 일상이 얽힌 착취의 메커니즘을 보여줬다.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불행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밝혀냈다. “기존 보고서와 언론 보도의 질문은 ‘그들은 어떤 인권침해를 왜 당하고 있나’에 멈춰 있었다. 질문부터 바꿔야 했다. ‘그들의 비참한 노동과 우리는 무슨 관계가 있나.’”(<신문과방송> 2015년 3월호 ‘<한겨레21> 눈물의 밥상 시리즈 취재기’) 시리즈를 기획한 계기는 사건이었다고 했다. 2014년 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국 의류봉제업체 약진통상 앞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가 발단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공수부대가 진압하다가 노동자 5명이 숨졌다. 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유혈 사태를 다뤘다. 이 기자는 노동자들이 만드는 ‘옷’에 주목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한테 도달했을까 궁금했어요. 누군가의 피가 묻은 옷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가 우리 일상의 가장 기본적 단위인 ‘밥’, 먹거리도 생각했죠.” 그는 사건으로 시작해 일상으로 도착했다. 이 기자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사건이 지나가고 남은 일상의 공간”이다. 사건이 지난 뒤, 그 공간으로
지난 4월 이문영 기자(왼쪽)가 ‘고공21’ 취재를 위해 강세웅(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장연의(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씨가 농성 중인 광고탑에 오르는 모습. 류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