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제주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왓은 ‘밭’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왓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다. 해안길을 따라, 중산간 길을 따라 어디든 왓이 있다. 제주 서쪽에 비옥한 왓이, 동쪽에 척박한 ‘빌레왓’(너럭바위가 있는 돌밭)이 있었다. 왓을 지키기 위해 검은 돌로 쌓은 ‘밭담’은 제주의 마을 풍경을 만들었다. 제주 전역의 밭담을 이어붙이면 용이 구불구불 솟구쳐오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 ‘흑룡만리’라는 말도 있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을 먹이고, 살리는 구실도 왓이 했다. 해녀들이 물질로 먹거리를 가져오던 바다는 아예 ‘바당밭’(바다밭)이라고 불렸다. 왓을 따라 제주 여행을 떠나보자. 아직 그 길이 낯설다면, 여기 <한겨레21>이 건네는 제주 비밀노트가 있다. 제주의 길과 오름, 자연, 문화, 역사, 맛과 재미를 담았다.
제주 서귀포 섶섬 큰한개창에서 조혜정 기자가 점쏠배감펭 한 마리를 바라보며 유영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서귀포 세 개 섬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쓰자면 손가락이 다 아프다. 한겨울부터 초여름까지 볼 수 있는 모자반숲과 사시사철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는 감태밭은 또 어떤가. 운이 좋으면 섬으로 이동할 때 돌고래떼도 구경할 수 있고, 그보다 더 운이 좋으면 다이빙을 하다 거북이도 만날 수 있다. ‘니모’로 알려진 흰동가리를 보고 싶다면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섶섬 작은한개창으로 가면 된다. 제주 바다가 험하다고요? 세 섬의 다이빙은 주로 오전에 섬에 올라 세 차례 다이빙을 하고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체로 섶섬은 보목항, 문섬은 서귀포항, 범섬은 법환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5~10분이면 섬까지 닿는다. 다이빙을 한 차례 끝내면 평평한 바닥에 누워 쉬기도 하고,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으며 다이빙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섬에서 갈 수 없는 포인트는 보트 다이빙으로 즐긴다. 포인트까지 배를 타고 가 다이빙을 한 뒤 포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형태다. 바다로 곧장 걸어 들어가 입수하는 비치 다이빙 포인트도 여러 곳 있다. 말하자면 제주에선 자기 취향에 맞는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서귀포가 아니어도 성산, 협재, 모슬포, 화순, 우도, 사수항 등 제주 바다 곳곳에 훌륭한 포인트가 널려 있다. ‘서귀포 스쿠버다이빙’ ‘협재 스쿠버다이빙’ 이런 식으로, 저 동네들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검색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꽤 많은 다이빙숍이 나온다. 숙박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고, 다이빙 전용선을 가진 곳도 있고,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강사가 있는 곳도 있으니 홈페이지나 카페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이용하면 된다. 제주 바다가 너무 험하다는 이들도 있다. 그건 어떤 바다와 뭘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일단 수온부터 보자면 필리핀이나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20~30℃)보다는 확실히 제주 수온(14~26℃)이 낮다. 하지만 다이빙 성수기인 여름과 가을엔 대체로 20℃ 이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크게 추위를 느끼진 않는다. 여차하면 10℃ 아래까지 내려가는 동해와 비교하자면 제주 수온은 따뜻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조류. 문섬에 딸린 새끼섬은 제법 조류가 세기로 유명하다. 아주 심할 땐 물속에서 몸이 날아다니는 경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발리의 누사페니다, 팔라우의 페릴리우 같은 포인트와 비교해보면 제주의 평균적인 조류가 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정도 조류면 거슬러 치고 나가거나, 반대로 타고 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제주 바다가 험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남아에서처럼 ‘황제 다이빙’을 할 수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장비 조립과 착용은 물론 세척까지 현지 스태프들이 해주고, 출수할 때도 배 위에서 장비부터 받아 올려주니 몸만 움직이면 되는 그런 다이빙 말이다. 하지만 다이빙처럼 장비 의존도가 높은 레저를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안전과 직결되는 장비 사용법 정도는 숙지하고 확인도 스스로 해야 하지 않을까? 정식 교육을 받고 스쿠버다이버 인정증(C카드)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 귀찮음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푸르게 숨쉬는 자유 새끼섬 물속이 동네 목욕탕처럼 붐비고, 차에서 배로, 배에서 섬으로 무거운 공기탱크를 옮기고, 낑낑대며 장비 가방을 이고 지고 다니고, 웨트슈트 입느라 땀을 뻘뻘 흘려도 괜찮다. 부귀영화 따위 안 누려도 괜찮다. 푸르게 숨쉬는 자유를 선물해주는 제주 바다에 안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글 조혜정 <한겨레> 기자 zesty@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한겨레>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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