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공간] 용산공원에는 용산이 없다제1351호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은 공모를 통해 용산 미군기지에 조성될 공원의 이름을 ‘용산공원’으로 확정했다고 2021년 1월16일 발표했다. 모두 9401건의 시민 제안과 전문가 심사 등을 종합한 결과였다. 애초 이 사업의 이름이 ‘용산공원 명칭 공모전’이어서 “결국 ‘용산공원’으로 정할 것이면 공모를 왜 했냐...
[역사 속 공간] 조선 왕 넷 배출한 천하명당은 어디?제1348호 세종이 태조 6년(1397년) 4월10일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태어났다.(<세종실록> 총서)태종이 ‘장의동 본궁’에 가서 건축하는 것을 두루 살펴봤다.(<태종실록> 1407년 8월16일)태종이 ‘영견방 본궁’을 수리하도록 지시했다.(&l...
[역사 속 공간] 설추위 겪어봐야 사람의 진면목을 안다제1345호 “공자는 설추위 이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네 계절을 지나도 시들지 않는다. 설추위 이전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설추위 이후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공자는 설추위 이후를 특별히 칭찬했다. 지금 그대(제자 이상적)가 나에게 이…
[역사속 공간] 조선 왕들의 얼굴, 한 줌 재가 되다제1342호 “옛사람의 말에 ‘만약 털 하나라도 다하지 않았다면(다르다면) 나 자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태워버려라.” 1418~1422년 세종 이도는 화가들에게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상왕 시절 어진(왕의 초상화)을 그리게 했다. 그러나 이를 본 이방원은 어진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바로 태우라고 명령...
[역사 속 공간] 광화문광장은 본디 거리였다제1338호 “여러 관청이 산처럼 서로 마주 보니별들이 북극성을 둘러싼 듯하다.달 뜬 새벽의 관청 거리는 물과 같고말수렛소리는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는다.”(정도전의 <신도팔경> 중 ‘열서성공’)“줄처럼 곧고 긴 거리가 넓고별처럼 둘러싼 여러 관청이 나뉘어 있네.궁궐문으로 관리들이 구름처럼 모이는데 훌륭…
[역사 속 공간] 서울의 ‘향교동’과 ‘구름재’는 어디인가?제1334호 “옛날 나는 서울 북쪽 옥류동에 살았다. 서울의 북쪽은 사대부로서 세거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청풍계에 세거한 (장동) 김씨, 자하동에 세거한 (의령) 남씨, 옥류동에 세거한 (기계) 유씨가 가장 오래됐다.”조선 후기 영·정조 시기에 형조참의를 지낸 유한준(1732~1811)은 문집 ...
[역사속 공간] 추사가 서촌을 ‘장동’이라 부른 까닭제1332호 “날이 4월임에도 이리 춥사온데, 어머니와 한결같이 잘 지내시옵니까? 아버님께서는 감기로 불편하시다 하던데 어찌 하오신지요? 즉시 나으시고 모든 일이 한결같으신지 멀리서 애태우는 마음이 끝이 없사옵니다. 대구 감영의 모든 일은 한결같이 편안하옵니까?”대구에 있던 아내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1818...
[역사속 공간] 수도이전은 기득권과의 전쟁이다제1329호 “도읍을 옮기는 일은 세가대족(대대로 잘나가는 집안)이 싫어하는 일이다. 재상들은 송경(개성)에 오래 살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니, 도읍을 옮기는 일이 어찌 그들의 뜻이겠는가?”1393년 2월 개성, 태조 이성계는 새 수도 후보지인 계룡산 자락을 살펴보려고 새벽부터 수레를 준비시켰다.…
[역사 속 공간] 서인-남인은 왜 휘그-토리가 되지 못했을까제1324호“사대부의 예의와 왕가의 예의가 다르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1차 기해예송(예법 논쟁) 때 서인과 노론의 지도자였던 송시열이 한 말이다. 사실상 “사대부와 왕가가 평등하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송시열이 생각한 조선 사회의 근본이었다. 당시 왕인 현종으로서는 모욕당한 것이었고, 사대부로서는…
[역사 속 공간] 이 좋은 풍광에 피비린 역사가제1320호지난 5월6일 유니온약품그룹의 석파문화원서울미술관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곳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조정만이 처음 별서(교외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로 조성한 곳이다. 석파정 들머리의 바위에 새긴 ‘소수운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