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꿈 땜질하는 불꽃제1127호 따다닥 타다닥. 불꽃이 튄다. 흰 연기가 뭉실 솟아오른다. 타다다다다다닥. 눈부신 화염이 피어오르고, 거친 불똥이 나뒹군다. 불덩이가 철판 사이를 지난다. 쇳덩이가 붉게 물들었다가 검게 식는다. 불꽃이 철판에 붙은 불순물을 녹인다. 쇳조각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용접봉이 지나간 자리, 선실 벽과 바닥...
목소리를 억압당한 사람들의 나팔제1122호 국가인권위원회 14층 회의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노트북을 켠다. 상임위원들을 바라보며 발언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첫 번째 안건은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의 건’이다. 2011년 유엔이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을 발표한 이후 9개국에서 이행지침 수립을 완료했고, 19...
물 속에서 건네는 응원제1120호 “다리를 쭉 뻗어주시고 힘을 빼고 발목을 펴세요. 무릎 굽히지 마시고. 하나 둘 하나 둘.” 철썩철썩. 물이 튀어오른다. 그녀가 회원들의 발목을 하나씩 잡고 발차기를 돕는다. “제일 중요한 건 허벅지예요. 발목에는 힘을 빼야 돼요.” 이번에는 엎드려 연습이다. 철퍼덕철퍼덕. 거친 발차기, 물보라가 ...
근심을 자르는 칼날제1117호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정성스레 빗질을 한다.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핀다. 삭 삭 삭~. 엄지와 약지로 움켜쥔 미용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른다.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 빗이 모아온 모발을 단가위(짧은 가위)가 쳐낸다. 빗질과 가위질이 되풀이된다. 한쪽 날이 지그재그로 된 숱가위(틴닝가위, 머리숱을 조절하는 ...
말없이 진술하는 목격자제1115호 누군가를 응시한다. 오른쪽 어깨에 멘 가방에서 화각이 넓은 렌즈를 꺼내 카메라에 끼운다. 현장사진가 정택용(40)의 눈동자가 백발의 노인을 향한다. 때 이른 폭염, 백기완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찰칵, 셔터를 누른다. 시선을 돌려 상복 입은 한 노동자를 바라본다....
‘갑질’도 설움도 쓸고 닦는다제1112호 여자화장실. 고무장갑이 칸마다 수북이 쌓인 휴지를 들어 파란 비닐에 담는다. 물을 내리고 변기와 바닥 물청소를 한다. 손걸레가 벽, 문, 거울, 선반, 에어컨을 차례로 닦으며 ‘휘리릭’ 지나간다. 화장실 입구 분리수거함. 쓰레기가 뒤섞여 있다. 먹다 버린 일회용 커피용기가 가득하다. 뚜껑을 열어 ...
반창고 두른 손이 마음을 토닥이다제1110호 짝꿍의 손을 잡은 꼬마들이 줄지어 걷는다. 숲 속 나들이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합창 인사에 폐지 싣고 가던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 계곡물 앞에서 멈춘다. “여기부터는 손 놓고 갈게.” 한 녀석씩 돌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넌다. 낙엽...
봇짐 싣고 지구 일곱 바퀴를 돌다제1108호 웅장한 풍채의 트럭이 거만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트랙터(트럭의 앞부분, 견인차)에 가슴 높이의 대형 타이어 10개가 달려 있다. 트랙터에 연결된 길이 20미터 트레일러를 6개의 광폭타이어가 떠받친다. 마찰력이 커 제동 거리가 짧아지는 타이어다. 폭 3.7미터, 길이 15.5...
사라진 가족사진은 얼마인가요?제1106호 서류 뭉치를 꺼낸다. 교통사고 사실확인원. 3월1일 새벽 6시15분 55살 노동자가 충남 예산의 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버스에 치어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약도를 본다. 편도 2차선 간선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주행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일출 시간을 확인한다. 해 뜨기...
보통 그 이상제1104호 적막한 사무실, 휑뎅그렁한 책상에 홀로 앉아 노트북컴퓨터를 켠다. 독자들이 보낸 고민이 쌓여 있다.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느라 보지 못했던 사연을 하나씩 살핀다. ‘죽고 싶다’거나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많다. 웹툰(인터넷 만화)을 서비스하는 ‘레진코믹스’에 <내 멋대로 고민상담&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