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사고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정부가 발표한 ‘2015 국민안전처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년간 4만2134건의 화재가 발생해 325명이 숨지고 1856명이 다쳤다. 하루 평균 115건의 화재가 일어난다는 통계다. 부주의가 51%로 화재 원인 1위였다. 현수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대한 화재보험을 들었다. 만에 하나 화재가 발생해 다른 집까지 불이 번지면 고스란히 개인이 갚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는 간밤의 사건·사고로 화재와 교통사고가 꼭 나온다. 그런데 소방서 추산 피해액은 터무니없이 적다. 건물의 몇 면이 탔는지 손해사정사들이 만든 기준으로 건물 피해만 발표하고 가구, 기계, 동산 등의 피해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최대한 보상받길 원하지만, 보험사는 손해액을 절감하는 게 목표다. 피해자가 손해를 입증해야 한다. 얼마 전 한 미국인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그는 아이들 장난감 영수증과 해외여행에서 피규어와 양탄자를 구입한 내역까지 자료를 제출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손해사정이 금액만 평가하는 게 아니에요. 피해자 편에서 위로하고 신뢰감을 갖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런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떨지를 생각하면서 의뢰인들을 만나는 거죠.” 예상치 못한 화마로 하루아침에 삶의 주거지와 생활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이 보험을 통해 긴급하게 삶을 복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동, 그래서 현수씨는 자신의 일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수씨는 딸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800곳이 넘는 화재 현장을 다녔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당할까 말까 하는, 참혹하고 처참한 풍경을 매일 만나야 한다. 소방관들은 방독면을 쓰고 화재를 진압한 후 현장을 떠나지만, 현수씨와 동료들은 마스크 하나 쓰고 먼지 날리는 화재 현장을 상주하며 폐허를 뒤져야 한다.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정도다. 신체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사도 마찬가지. 청천벽력 같은 사고를 당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무조건 보험금을 많이 산정해달라는 의뢰인을 설득하는 일도 힘들다. 대기업 보험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보험사와 계약해 위탁 사정을 하는 손해사정사들은 어떨까? 3대 생명보험, 4대 손해보험사가 만든 자회사 손해사정 업체는 12개. 대기업 보험사들이 위탁하는 손해사정 건수의 65%를 12개 자회사가 가져가고 나머지 932개 일반 손해사정 업체의 일감은 35% 수준이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영환 의원은 “대기업 자회사들이 독점하고 있어 일반 손해사정 업체는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성장과 서비스 향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보험사가 만들고, 그 기업에서 일감을 100% 물려받는 자회사 손해사정 업체들이 보험금 청구권자의 입장에서 손해사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이는 보험 소비자인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김현수씨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화물 피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했다. 차량과 화물 피해는 301건. 피해자들이 143억원을 청구했는데 70%인 101억원이 평가액으로 결정돼 지급됐다. 모든 차량과 화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선적의뢰서, 해운사 전산자료, 동영상 자료, 발주 및 송장 등을 통해 손해액을 평가했다. 이들 중 제주도로 이사하기 위해 세월호에 탔다가 부모와 오빠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지연이네 이삿짐도 포함돼 있었다. 트럭 한 대에 이삿짐 일부만 실었다. 평가액 420만원. 이삿짐 계약서와 짐을 함께 싸준 친척들의 얘기를 종합해 나온 금액이었다. 이삿짐에 있던 가족사진, 아이의 첫 그림, 엄마의 편지, 초음파 사진, 졸업장 같은 가족의 추억은 평가액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길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앨범은 얼마일까? 수장되어버린 아이의 첫 그림의 가격은 대체 얼마일까? 세월호 화물을 감정한 현수씨는 안타깝고 답답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진실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청해진해운이 사고 직후 국가정보원과 7차례 통화를 했고, 승객들에게 탈출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한 것이 청해진해운이었으며, 해경이 세월호에 다가갔다가 승객을 구하지 않고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졌다. 손해사정사가 잿더미만 남은 참사 현장에서 끊임없이 이성을 다독이며 실체의 ‘어떤 측면’을 더듬어가는 것처럼, 촉수를 곧추세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더듬어 찾아가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화재 아픔 위로할 수 있을까? 홍성영씨가 병원 문을 나선다. 그의 가방에 빛바랜 세월호 추모 리본이 달려 있다. 누군가가 생각난 듯 전화를 건다.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던 스물일곱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날은 아빠의 공무원 정년퇴임식 이틀 전이었다. 딸아이와 엄마, 아빠의 ‘병원살이’ 5년. 그사이 엄마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모는 정신과, 신경외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딸 곁을 지킨다. 자식이기 때문에 포기를 못한다. “점심 한 끼 사드릴게요.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정이 묻어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이후 온통 인공지능 이야기다. 일반의사, 손해사정사, 관제사가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사라질 전문직으로 뽑혔다. 손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알파고가 화재로 보금자리를 날려버린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로봇이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나라,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가 돈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시절이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화재사고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정부가 발표한 ‘2015 국민안전처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년간 4만2134건의 화재가 발생해 325명이 숨지고 1856명이 다쳤다. 하루 평균 115건의 화재가 일어난다는 통계다. 부주의가 51%로 화재 원인 1위였다. 현수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대한 화재보험을 들었다. 만에 하나 화재가 발생해 다른 집까지 불이 번지면 고스란히 개인이 갚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는 간밤의 사건·사고로 화재와 교통사고가 꼭 나온다. 그런데 소방서 추산 피해액은 터무니없이 적다. 건물의 몇 면이 탔는지 손해사정사들이 만든 기준으로 건물 피해만 발표하고 가구, 기계, 동산 등의 피해는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최대한 보상받길 원하지만, 보험사는 손해액을 절감하는 게 목표다. 피해자가 손해를 입증해야 한다. 얼마 전 한 미국인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그는 아이들 장난감 영수증과 해외여행에서 피규어와 양탄자를 구입한 내역까지 자료를 제출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손해사정이 금액만 평가하는 게 아니에요. 피해자 편에서 위로하고 신뢰감을 갖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런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떨지를 생각하면서 의뢰인들을 만나는 거죠.” 예상치 못한 화마로 하루아침에 삶의 주거지와 생활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이 보험을 통해 긴급하게 삶을 복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동, 그래서 현수씨는 자신의 일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수씨는 딸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800곳이 넘는 화재 현장을 다녔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당할까 말까 하는, 참혹하고 처참한 풍경을 매일 만나야 한다. 소방관들은 방독면을 쓰고 화재를 진압한 후 현장을 떠나지만, 현수씨와 동료들은 마스크 하나 쓰고 먼지 날리는 화재 현장을 상주하며 폐허를 뒤져야 한다.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정도다. 신체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사도 마찬가지. 청천벽력 같은 사고를 당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무조건 보험금을 많이 산정해달라는 의뢰인을 설득하는 일도 힘들다. 대기업 보험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보험사와 계약해 위탁 사정을 하는 손해사정사들은 어떨까? 3대 생명보험, 4대 손해보험사가 만든 자회사 손해사정 업체는 12개. 대기업 보험사들이 위탁하는 손해사정 건수의 65%를 12개 자회사가 가져가고 나머지 932개 일반 손해사정 업체의 일감은 35% 수준이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영환 의원은 “대기업 자회사들이 독점하고 있어 일반 손해사정 업체는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성장과 서비스 향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보험사가 만들고, 그 기업에서 일감을 100% 물려받는 자회사 손해사정 업체들이 보험금 청구권자의 입장에서 손해사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이는 보험 소비자인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김현수씨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화물 피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했다. 차량과 화물 피해는 301건. 피해자들이 143억원을 청구했는데 70%인 101억원이 평가액으로 결정돼 지급됐다. 모든 차량과 화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선적의뢰서, 해운사 전산자료, 동영상 자료, 발주 및 송장 등을 통해 손해액을 평가했다. 이들 중 제주도로 이사하기 위해 세월호에 탔다가 부모와 오빠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지연이네 이삿짐도 포함돼 있었다. 트럭 한 대에 이삿짐 일부만 실었다. 평가액 420만원. 이삿짐 계약서와 짐을 함께 싸준 친척들의 얘기를 종합해 나온 금액이었다. 이삿짐에 있던 가족사진, 아이의 첫 그림, 엄마의 편지, 초음파 사진, 졸업장 같은 가족의 추억은 평가액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길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앨범은 얼마일까? 수장되어버린 아이의 첫 그림의 가격은 대체 얼마일까? 세월호 화물을 감정한 현수씨는 안타깝고 답답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진실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청해진해운이 사고 직후 국가정보원과 7차례 통화를 했고, 승객들에게 탈출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한 것이 청해진해운이었으며, 해경이 세월호에 다가갔다가 승객을 구하지 않고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졌다. 손해사정사가 잿더미만 남은 참사 현장에서 끊임없이 이성을 다독이며 실체의 ‘어떤 측면’을 더듬어가는 것처럼, 촉수를 곧추세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더듬어 찾아가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화재 아픔 위로할 수 있을까? 홍성영씨가 병원 문을 나선다. 그의 가방에 빛바랜 세월호 추모 리본이 달려 있다. 누군가가 생각난 듯 전화를 건다.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던 스물일곱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날은 아빠의 공무원 정년퇴임식 이틀 전이었다. 딸아이와 엄마, 아빠의 ‘병원살이’ 5년. 그사이 엄마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모는 정신과, 신경외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딸 곁을 지킨다. 자식이기 때문에 포기를 못한다. “점심 한 끼 사드릴게요.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정이 묻어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이후 온통 인공지능 이야기다. 일반의사, 손해사정사, 관제사가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사라질 전문직으로 뽑혔다. 손해액을 산정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알파고가 화재로 보금자리를 날려버린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로봇이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나라,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가 돈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시절이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