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김시녀(왼쪽)씨가 한혜경씨의 휠체어를 밀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씨가 2011년 4월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제2차 집단 행정소송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변 식당을 꿰고 길을 외울 정도로 다녔다. 김씨는 10년간 휠체어를 탄 딸 한씨를 밀고 삼성 본관, 국회, 법원, 근로복지공단을 수없이 찾았다. 이날도 강원도 춘천의 집에서 장애인 콜택시와 지하철을 타고 4시간 걸려 서울로 온 길이었다. 모녀는 10년간 별다른 수입 없이 버텼다. 아파트를 팔고 전세, 다시 월세로 이사 갔다. 이혼하고 음식 장사를 하던 어머니 김씨는 딸 병간호와 산재 투쟁에 바빠 일도 거의 못 나갔다. 반올림을 통해 조금씩 생계 지원을 받으며 힘들게 버텼다. 그래서 ‘10억원을 줄 테니 반올림이랑 손 끊고 산재 소송하지 말라’는 삼성의 제안도 받아들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딸이 막아섰다. 김씨는 딸의 뺨을 네 차례나 때리며 “엄마가 이렇게 힘든데 그래도 안 되냐”고 했다. 딸은 그래도 안 된다고 했다. 2014년, 함께 싸우던 피해자들이 반올림과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로 갈라지던 순간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김씨는 화병이 나서 딸과 함께 죽을 생각도 했다. 한씨는 그 무렵부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일을 강요받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고도 꿈과 현실을 헷갈려 옆에서 자는 엄마에게 화낸 적도 많았다. 2015년 천막농성을 시작한 뒤로 오히려 활력이 돌았다. 김씨는 딸과 함께 매주 토요일 밤을 농성장에서 보냈다. 그때마다 늘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해 반올림 활동가들에게서 ‘시설반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8년 11월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중재안이 나온 뒤 한씨는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로부터 보상받게 됐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래도 여전히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웠으면서도 10년 동안 국가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응어리가 남았다.

2018년 11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이 끝난 뒤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운데)와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왼쪽), 한혜경씨가 기념사진을 찍기에 앞서 함께 손을 잡고 악수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씨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읽기 위해 직접 쓴 최종의견진술서.
최근 이사한 강원도 춘천의 새 집에서 김시녀(왼쪽)씨와 한혜경씨가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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