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자, 남자라고 하면 되잖아. 왜 항상 남자가 먼저야? 여자가 먼저면 안 돼?
여자가 먼저인 것도 많아.
번호순으로 보면 1이 먼저잖아. 왜 남자를 먼저 세우냐고.
아까 인터넷을 보다 진짜 어이없는 거 봤어. 화면을 카카오톡 대화창처럼 만들었는데, 여자 사진에만 분홍색으로 볼이 칠해져 있었어.
진짜야, 나도 봤어. 이거 봐, 여자 대사는 글씨체도 달라.
여자라고 글씨체가 다 이런 건 아닌데.
꼭 이런 식으로 구분해야 해? 어차피 사진 나와서 다른 사람인 거 아는데.
볼 터치를 원한다고? 절대 아닐걸.
확실히 고정관념이 많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음악방송에서도 걸그룹은 치마 입고 발랄한 춤을 추는데, 보이그룹은 정장 입고 박력 있고 멋있는 춤을 춰.
멋있게 춤을 못 춰서 그럴 수도 있어.
걸그룹은 꼭 치마 입어야 해? 바지 입어도 되는데.
바지 입는 경우도 많아. 자기가 입고 싶은 걸 입겠지.
아니거든. 스타일리스트가 해주거든.
그렇긴 해. 가사도 걸그룹은 연애·고백·설렘 위주라면, 보이그룹은 질투·분노 위주란 말이야. 분위기도 여자는 핑크핑크한데, 남자는 다크다크하고.
멜로디도 걸그룹은 발랄한데, 보이그룹 막 싸울 거 같아. 드세고 독하다고.
세민 난 아침 드라마 완전 팬인데, 맨날 여자가 남자한테 존댓말 써. 아내는 “여보, 식사하셨어요?” 묻고, 남편은 “어, 먹었어. 당신 먹었어?”라고 대답하고. 솔직히 우리 부모님도 그러시거든. 엄마는 아빠한테 존댓말하고, 아빠는 엄마한테 반말해.
수민 드라마에서는 꼭 그러더라.
수빈 우리 집은 두 분 다 말을 놔서.
우혁 우리 부모님은 서로 존댓말을 해.
수빈 남자가 여자한테 반말할 때는 그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세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한테 반말하면 드세다, 이상하다, 독하다고 해.
수민 맞아. 여자한테 반말하는 남자를 보고 독하다고 하지는 않아. 반말하는 사람이 남자면 괜찮고 여자면 안 괜찮게 봐.
우혁 난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해.
세민 어쨌든 내가 본 대부분의 드라마에선 여자가 남자한테 존댓말을 했거든.
수빈 여자는 남자한테 존댓말하고, 남자는 여자한테 반말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 거야.
준혁 그럴 때는 보통 남자가 더 나이 많아 보이지 않아?
수빈 나이가 같거나 비슷해 보여도 그래.
우혁 친구 사이는 다 반말 쓰지 않아? 그럼 될 텐데. 여자 일 남자 일이 따로 있나?
수빈 1·2학년 때 교과서 기억나? 그림 보면 소방관·군인·정치인은 맨날 남자였어. 스튜어디스·간호사·어린이집 교사는 여자고.
준혁 이유가 있겠지. 좋아하는 직업이 달라서 그런 거 아니야?
수빈 여자가 그 직업을 더 좋아한다고?
준혁 응.
수빈 옛날엔 그랬을지도 몰라. 지금은 아니야.
우혁 보통 남자가 그런 일을 해서 그런 거 아냐? 남자 소방관이 더 많아서.
준혁 그림을 그리려고 자료를 찾아봤는데, 집안일을 주로 하는 사람이 여자였던 거야. 그래서 그렇게 그린 거지. 다른 자료를 못 찾았을 수도 있어.
우혁 미래로 갈수록 더 공평해질 거야.
수빈 자료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요즘은 성별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직업을 가지잖아.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로.
준혁 책을 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해마다 교과서를 바꾸는 건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바꾸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빈 교과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만드는 건데.
세민 사회도 배우고.
우혁 수학이나 과학 같은 거 배우지.
수민 공부 말고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
수빈 이런 교과서로 배우면 성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역할이 정해졌다고 생각할 것 같아. 1·2학년 때는 어려서 그게 이상하다고 못 느낄 거 아니야.
수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교과서에 그려진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는 거야.
수빈 만약 3·4학년 교과서에 이렇게 나오면 학생들이 바로 항의할걸.
세민 교과서는 아이들의 동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지.
수민 나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착 자리잡았어. 이런 게 쌓이면 고정관념이 되겠지? 교과서는 우리가 배우는 거니까 좋은 가치가 나와야 하는데….
우혁 중학교 교과서에는 공평하게 나오지 않을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평하게 표현될 수도 있어.
수빈 성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세민 좀 자세히 알려주면 좋을 텐데.
우혁 그런 걸 어떻게 자세히 얘기해.
수빈 학교에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겉핥기식이야. 솔직히 성교육이라고 할 수도 없어. 배운 게 거의 없으니까.
세민 성교육이 꼭 몸만 다뤄야 해?
우혁 어른이 될 때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면 좋잖아.
성역할 고정관념 벗어나기, 우리 가족부터
세민 성교육 시간에 왜 신체 변화만 다루냐고. 성역할이나 성평등 같은 거도 알려줬으면 좋겠어.
수빈 당연히 나와야지.
우혁 솔직히 자기가 하고 싶은 직업은 다 할 수 있잖아. 성교육을 하거나 말거나 모든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 성역할이나 성차별을 따로 배워야 해?
수빈 진짜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준혁 취미로 하기도 하지.
세민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직업들 있잖아. 부모님이 막 되라고 하는 의사·변호사·검사·판사, 이런 직업은 압도적으로 남자가 더 많대. 그런데 이상해. 솔직히 공부는 여자들이 더 잘하지 않아? 시험도 더 잘 볼걸?
우혁 여자가?
수빈 왜냐면 여자가 뇌 발달이 더 빠르대.
모두 크크크.
준혁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맨날 남자랑 여자랑 꼭 싸우는 느낌이야.
수민 싸움이 되는 게 속상해. 무조건 남자는 남자 편, 여자는 여자 편이 되잖아.
수빈 같은 성별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는 게 많아서 그런 거 같아.
준혁 솔직히 난 너희랑 친해서 여자 편을 들 수밖에 없어.
수빈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야. 자기 생각의 문제지.
우혁 나는 공정하게 판단하는데?
수빈 어쨌든 다들 성차별이나 고정관념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거네.
준혁 그래도 모두 없앨 수는 없을 거 같아.
수민 없애야지. 시대가 변하고 있어. 옛날에는 여자가 일하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잖아. 근데 지금은 여자도 일해. 맞벌이하는 사람도 많고. 전에는 차별당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드러낼 수 있어야 해.
준혁 옛날부터 계속 이어져온 거니까, 아직 성차별하는 사람이나 가정도 있어. 그 집 아이들이 그걸 본받아서 따라 하면 더 이어질 수도 있고. 사람들은 선한 거보다 악한 걸 더 많이 따라 해서 아예 없애는 건 힘들지 몰라. 그러니까 줄이는 데 신경 써야 해.
수민 점점 줄이다보면 없어질 텐데…. 그거보다 당장! 바로!
수빈 과정이 없으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까 천천히 줄여나가는 것도 괜찮을 거야.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노력하면 없어질 수 있어.
세민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이 벗어날 수 있도록 제안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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