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만 알아듣는 말도 많아.
장난감이나 뭐 그런 거에 사용설명서 있잖아. 나는 그거 한 번 읽고 이해가 안 됐어. 그거 누구 보라고 만든 거야?
엄마·아빠 보라는 거지, 뭐.
나, 레고 진짜 많거든. 석 달 동안 이만한 레고 만들어봤어.
‘취급 주의’ 이런 말들, 여섯 살짜리가 어떻게 알아. 결국 아빠한테 다 물어봤다고.
나, 나! 전에 지금보다 키 작았을 때 기차 타고 엄청 곤란했던 적 있잖아. 내가 책을 진짜 좋아하거든. 책에서 본 적 있는데 손잡이가 닿지 않아서 우산을 탁 걸어 매달리는 장면이 있어. 내가 그걸 진짜 해봤거든. 그랬더니 어른들이 나를 완전 이상한 애로 보는 거야. ‘쟤, 왜 저래?’ 이러는 거 같았어.
그게 문제가 뭐냐면, 아예 안 닿으면 시도도 안 하는데, 조금만 점프하면 손잡이를 잡을 수 있을 때가 있어. 그러면 애들이 점프해서 손잡이를 잡고 거기에 매달리는 거야. 그게 좀 위험하잖아. 나도 옛날에 그랬어.
주은 그게 점프한 아이들의 잘못인가?
은호 그렇게 하고 싶게 만들어놓은 게 잘못 아니야? 손잡이가 아예 낮게 있으면 매달릴 일도 없지, 뭐.
윤 사고 나는 애들이 없겠지.
제원 아, 그러면 어른이 다니기 좀 불편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어린이에게 맞추려다 어른들이 엄청 불편해지는 거잖아.
윤 어른은 어른용 손잡이, 어린이는 어린이용 손잡이가 있으면 되잖아.
제원 그러면 의자에 앉기 불편해지잖아. 고개를 숙이거나 점프해야 하니까 문제가 더 많아질 거 같아.
주은 어른이 좀 참으면 되지 않아? 어린이는 아예 잡을 수 없는 거고, 어른은 조금 불편한 걸 견디는 정도잖아.
은채 손잡이를 조정할 수 있게 하면 어때? 어른이나 어린이도 같이 쓸 수 있게 말이야. 어린이가 손잡이를 잡아야 할 때는 내려서 쓰고, 지나다닐 때 불편하면 올리고. 이렇게, 버튼 누르면 탁탁 조절되게.
제원 그거 좋다. 버튼! 자동!
왜 우리를 위한 건 없지?
제원 대통령선거 때 후보들이 나와서 ‘뭐 해주겠다, 뭐 해주겠다’ 그랬잖아. 우리한테는 뭐 해준다고 했나? 없었나?
윤 난 한 개 본 거 같아. ‘아동학대 방지’인가, 그거.
은호 난 몰라. 못 봤어. 공약이 엄청 많더라고.
윤 솔직히 사회에서 어린이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 같아. 우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
주은 맞아, 대통령선거 같은 거도 못하고.
은호 야, 그건 솔직히 인정해야지. 우리가 뭘 잘 모르잖아.
제원 어른의 권리는 많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우리는 어른의 보호를 받고, 그래서 못하는 게 많지. 어른은 혼자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은호 엄마랑 어린이랑 같이 투표소에 들어갔다고 해봐. 어린이가 분명 엄마한테 ‘엄마, 나 누구 찍어?’라고 물어볼 게 뻔해. 장난으로 도장을 막 찍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어린이는 ‘중2병’도 경험하고 철 좀 든 다음에 투표할 권리를 얻는 게 좋아.
윤 무슨 소리야! 어린이도 투표해야 해. 그래야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지. 어른 수는 점점 줄어들잖아.
제원 한국은 자살을 엄청 많이 하는 나라야. 특히 청소년들!
은호 청소년도 투표 못하거든.
주은 야, 우리가 나이를 더 먹으면 투표권을 얻는 거야.
은호 어린이까지 투표하면 투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기 힘들지도 몰라.
은채 나도 그 생각에 찬성해. 물론 어린이를 차별하는 건 옳지 않지만, 솔직히 어린이는 생각하는 게 어리다고.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도 보호자와 같이 봐야 하고, 보면 안 되는 것도 있어. 어린이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은 보면 안 된다는 건 누가 정해?
은호 내가! 나의 뇌가!
제원 컴퓨터한테 나이를 알려주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하자.
윤 그러면 인공지능한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거잖아.
제원 보호자 동의를 받아서 볼 수 있잖아.
은채 어린이가 모든 기준에 다 맞지는 않아. 어린이도 한명 한명 다 달라.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성장한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 큰 사람 작은 사람 누구한테 맞출지, 아니면 평균을 낼지…. 음, 기준을 어떻게 할지는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주은 어린이가 안 하니까 모르는 거지, 하면 잘할지도 몰라.
은호 어른은,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뭔가를 배우라고 해.
윤 “저녁 먹기 전에 들어와!” 놀 때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항상 하는 말이야. 어른은 우리가 밥을 많이 먹고 커야 한다고 생각해.
은채 어린이는 말 그대로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고, 어리니까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 같아.
윤 어린이는 몸집이 작은 어른이란 말도 있잖아. 그게 옳다고 생각해. 어린이는 몸집이 작을 뿐이지 어른이랑 똑같다고.
사회의 기준, 어디에 맞춰야 할까
윤 벌레나 새도 알에서 시작해. 어른도 옛날에 우리보다 더 작은 아기였다고. 그러니까 어린이를 기준으로 모든 걸 만들면 누구나 다 편하게 쓸 수 있어.
주은 윤이랑 비슷하긴 한데, 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어.
제원 누가 원하는 건데?
주은 모두.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은채 약한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할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손이 불편한 사람도 쉽게 쓸 수 있는 컵이 있다면, 손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잘 쓸 수 있어. 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강한 사람도 다 할 수 있지만, 반대는 쉽지 않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약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제원 돈이 엄청 많이 들 거야.
은호 기술이 발달했잖아. 이런 거 하라고 기술을 발전시킨 거야.
제원 그런 물건이 잘 안 팔리면 망하니까, 사람들이 무서워서 만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소비자가 그런 물건을 잘 사줘야 해. 모든 물건을 어린이도 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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