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를 위해 <한겨레21>과 <고래가 그랬어>가 함께 만듭니다. 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 분야별 개념과 가치, 이슈를 다루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격주로 싣습니다.
글 최성각·강수돌
그림 허지영
‘다른 나라’를 만들자
생태 최성각_ 시골에서 거위와 닭을 치고 풀 베어 거름을 만들며 글 쓰는 삼촌이야. 거칠고 험악한 힘에 맞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풀꽃세상’이라는 환경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새와 돌멩이, 지렁이에게 환경상을 주기도 했어. 쓴 책으로 <거위, 맞다와 무답이> <달려라 냇물아> <쫓기는 새>가 있어.
4차 집회 때에는 춘천 지역 한 국회의원 녀석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을 해서 춘천 시민들과 불 꺼진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같이 따졌어. 삼촌은 그 사람의 빈 사무실을 향해 함성을 외치는 게 너무 창피해서 혼났단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을 녀석이라 부르고, 가장 큰 권한을 허락한 대통령을 최소한의 존칭도 없이 마구 부르게 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탓이야. 동무들도 나중에 배울 맹자라는 중국의 사상가가 있어. 그는 “못된 왕이 고약한 짓을 하면 잡아 죽여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그래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맹자는 “우리가 죽인 것은 왕이 아니라 못된 녀석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답했지. 그때는 지금처럼 한 나라의 권력이 시민에게서 비롯되는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었어. 왕이 한 나라의 땅과 사람, 개와 염소, 벌레와 물고기 등 모든 것을 몽땅 소유하던 시대였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이상야릇하게 보이는 왕조시대에 맹자는 단호하고 이치에 맞는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어. 그래서 사람들이 <맹자>를 읽는 걸 금지하던 때도 있었단다. 동무들은 광장에서 뭘 느끼고 배웠니? 지금 당장은 잘 몰라도 괜찮아. 왜냐하면 2016년에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촛불 하나 들고 거리로 나선 일의 의미는 여러 사람이 긴 시간 동안 꼼꼼하게 해석할 테니까.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서 간직하기도 할 테고. 이번 집회 현장은 무언가 새로 시작되고,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곳이었어. 그리고 그곳은 엄청난 학교이기도 했어. 그보다 장엄한 민주주의 학교는 다시 없을 거야. 설립자도 없고 교장도 교사도 따로 없는 학교 말이야. 이 불행한 상황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겪었어. 대통령을 권력에서 끌어내리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계였지. 하지만 촛불로 그가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든 것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이었단다. 이번 일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한 나라의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야. 세금 내는 시민과 세금 받는 국가는 주인과 부하 관계가 아니라 계약관계라는 것도 차차 알게 되기 바라. 시민이 국가에 권력을 준 대신, 국가는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고 모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해. 그런 일이 쉽지 않기에 시민은 국가에 큰 권한을 주었지만, 대통령은 국가의 목적이 뭔지 알려 하지 않고, 국가가 할 기본적인 일을 내팽개쳤어. 세월호 침몰 때도 그랬지.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해야 옳은지, 아니면 바로 내려와야 옳은지를 결정하는 일이 남았어. 참 지루하고 복잡한 과정이 아닐 수 없어.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없어. 광장에서 사람들이 든 손팻말 중에 “이게 나라냐?”라는 게 있었어. 기억나는 동무도 있을 거야. 그래, 이건 나라도 아니지. 이건 나라가 아니었어. 이 나라는 참으로 오랫동안 ‘황금만능주의’라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나라였어. 부자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부정부패도, 살인적인 경쟁도, 법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냥 넘어갔지. 돈만 된다면 흐르는 강물을 시멘트로 막아도 괜찮고, 산을 마구 허물어도 괜찮고, 땅속의 지하자원을 다 끄집어내도, 멀쩡한 갯벌을 메우고 하늘·강·바다를 오염시켜도 괜찮고, 끔찍한 핵발전소를 지어대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돈이 곧 신이었단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보다는 비겁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던 병든 나라였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부추겼어. 하지만 모두 부자가 되지 못했어. 소수의 부자는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한 사람이 되어 비참하게 버림받는 나라였어. 그래서 시민들이 이런 짓은 이제 그만하자고 외쳤지. 이제 우리가 새로 만들 나라는 예전과는 ‘다른 나라’여야 할 거야. 각자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이 목적인 나라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거든. 환경 문제도 다른 이유로 생긴 게 아니야. 돈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 거지. 지구온난화도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진행되고 있지. 돈이면 모든 게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귀한 것이 너무나 많단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까? 최소한 돈이 전부가 아닌 나라, 너무 큰 부자도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없는 나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나라, 이 땅의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존중받는 나라, 누구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지배하지 않는 나라, 욕심 많고 사악한 사람이 처벌받고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아닐까? 꿈같은 이야기라고? 아냐. 설사 꿈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게 옳다는 것을 알게 됐잖아. 삼촌은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저성장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경제 강수돌_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이야.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살림살이 경제’를 되살리려고 노력해. 쓴 책으로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 <팔꿈치 사회> <잘 산다는 것> <살림의 경제학>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