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가 자신을 찾는 과정은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적 조처를 알아보고 판단하는 일이기도 하다. 2014년 6월7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람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소희씨와 보라씨는 서른 살 동갑 친구지만 ‘몸의 현재’는 다르다. 보라씨는 성별 정정까지 마쳤지만, 소희씨는 호르몬 치료도 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성으로 태어난 MTF 트랜스젠더는 여성이 되기 위한 인정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엔 성전환, 때로 성형수술이 있다. 주현: 이마, 코, 턱, 지방이식… 지금 얼굴에 들인 돈이 1500만원은 될 거예요. 저는 바탕이 여자 같아야 (성전환) 수술해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기 체인지를 한다고 해서 그게 보이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이는 걸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잖아요. 보라: 예전에 도서관에서 제 신분증을 보여줬는데 ‘본인이 오셔야 대출이 됩니다’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서 가슴 졸였어요. 그래서 저는 가장 처음 해야 하는 게 성전환 수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꾸기 전에는 정말 간절하죠. 소희: 가끔이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니까. 주민번호 앞자리 숫자를 1에서 2로 바꾸는 일은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은영씨는 “별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주민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내가 계속 무직인 상태로 있을 테니까”라고 필요성을 말했다. 번호를 바꿔도 낙인은 남는다. 보라씨는 “호적초본 같은 걸 뽑으면 성별 정정 기록이 남으니까. 그게 속이 좀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사무소 직원들이 서류를 보면서 옆 사람한테 ‘허!’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최소한 동사무소 직원 같은 이들이 열람을 못하게 했으면”이라고 희망했다. 성별 정정 너머의 세계를 말하는 이도 있었다. 주현: 대기업을 다니려면 전형적인 남자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윗사람이 ‘쟤 왜 저래?’ 하면 안 되니까. 저는 5년간 진짜 아저씨, 전형적인 과장님 포스로 살았어요. 배 내밀고. (웃음) 제 병적사항에 ‘성주체성 장애’로 나와요. 근데도 패스가 됐다고. 제가 군필이니까 용서가 되는 거예요. 사회가 그래요. ‘1번’으로 살기 위해 억누르고 변신하는 삶 주현씨는 “욕먹는 엄친아로 살았다”며 “거친 제조업에 입사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성향이 깨지지 않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자신의 트랜스젠더 성향을 알지만 다르게 살아보려 했던 그는 “거친 아저씨 500명을 혼자 컨트롤하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는 “끝에서 끝으로 갔다”고 말했다. 주현: 이게 아니다 싶어서 나왔죠. 나오자마자 머리를 막 기르고. 이제 발현이 되는 거지. 사실 전까진 누르고 살았죠. ‘1번’으로 살려면 계속 버텨야 하니까. 미리: 출근할 때요? 비니를 완전히 눌러 쓰고, 아예 변신을 해요. ‘1번’으로 살기 위해서 억누르고 변신하는 삶이 있다. 미리씨는 “회사에서는 남자로 알고 있죠. 좀 아슬아슬해요”라고 밝혔다. “나이에 비해 많이 버는, 180만원 월급”을 위해 그는 남자의 가면을 쓴다. 일부러 “다리 쫙 벌리고” 행동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지만, “얼마 안 남았으니까, 꾹 참자”고 자신을 달랜다. 6개월 뒤,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할 생각이다. 강요된 가면은 자살을 부른다. 은영: 외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는데, 환자들 중에 트랜스포비아(성전환자혐오증)가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남자 흉내를 내야 했죠. 다른 아시아계 간호사들이 여자 유니폼을 입고 편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속이 막 뒤집어지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자살) 시도를…. 소희: 계약직 공무원으로 1년 반을 일했는데, 툭하면 부장이 불러서 ‘머리가 뭐냐’ 스트레스를 줘요.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괜찮았어요. 제가 다 이야기를 하고 사장님도 괜찮다고 하고. 손님들도 저를 여자로 보니까. 보라씨는 대학원 면접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입학해 조교로도 일한 그는 “교수님 비서 수준으로 일을 해드렸다”고 돌이켰다. 교수들이 나중에 커밍아웃 사실을 잊은 듯 “옷을 뭐 그렇게 입냐”는 핀잔을 주었다.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그는 과노동을 했다. 오히려 성정체성이 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주현: 제 나이가 서른여덟인데, 일반 남자 선생님들 같으면 과외하기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하고 다니니까 엄마들 입장에선 어려 보여서 집에 들이기 쉽죠. 저는 ‘남자 선생님’으로 소개받는 대신에 비비크림 같은 걸 바르고 티를 팍팍 내요. 그런데 보니까, 이거예요.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하면 이상하게 여겨요. 근데 아예 첫 대면에서 ‘나는 이런 선생이다’ 하면 ‘그런가보다’ 해요. 부산에서 영어 과외를 하는 주현씨는 “실력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을 퇴직하고 “뭘 할까 생각하다 이 직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쓸 만한 자격증 4개가 있지만, “그건 해봐야 남자들한테 치이니까” 그랬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되려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자살을 시도했던 은영씨는 남다른 일을 하면서 여자로 살아간다. 남자의 가면을 벗자 안정이 찾아왔다 은영: 하루하루 (남자로) 연기를 계속해야 하는데, 평생 할 수 없잖아요. 지금 하는 일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다 여자로 대해줘요. 불법적인 일이긴 하지만…. 병원, 주유소, 택배회사, 스시집에서 일해봤지만 제가 유일하게 연기를 안 해도 되는 일이라서. 은영씨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좋았다”며 “내가 그런 느낌을 되게 필요로 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호사 실습 과정에서 자살 시도를 해 의사가 우울증 극복 진단을 내리기 전에는 복귀가 어렵다. 그는 “여자로 인정받는 일”이 좋기도 하지만 근심도 있다. “성별 정정이 되면 수능시험을 봐서 수의사가 되면 좋겠다”는 그에게 “어떤 환경이 필요한가” 물었다. 은영: 일단 주민번호 좀 바꿔주면 좋겠는데…. 제가 지금 남자친구가 있거든요. 지금 일을 이해해준다고 하지만…. 그래서 미안해요. 그만둘 수 있으면 그만두고 싶은데. 성전환 수술을 다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성기 제거 수술만 해도 성별 정정을 해주면 좋겠어요. 이렇게 성별 정정 과정에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트랜스젠더들은 “돈이 중요하다. 돈이 무기다”라고 말한다. 적어도 인생의 한 부분은 수술에 필요한 돈을 버는 데 바쳐진다. 어렵게 자신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호르몬 치료는 우울증 치료제 구실을 한다. 남자의 가면을 벗자 안정이 찾아왔다. 주현: 정신적으로 지난 15년 중에 지금이 가장 안정된 상태예요. 영어 선생으로 자리잡아서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호르몬을 하면서 (성전환) 수술도 준비하고 있고요. 얼굴도 이제 웬만큼 고쳤고. 이중 생활을 막 왔다갔다 하다가 그냥 딱 나로 사니까 제일 편해요. 타인에게 어떤 성별로 여겨지느냐를 “패싱(Passing)된다”고 한다. 예컨대 MTF 트랜스젠더가 여자 화장실에 가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여성으로 패싱되는 것이다. 주현씨는 “얼굴을 고치고 가장 만족하는 것은 여자 화장실을 다녀도 이제는 어색하게 안 본다”고 말했다. 타고난 외모나 나이에 따라 패싱되는 시점이 다르다. 은영씨는 “그냥 치마 두르고 나서 바로”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에서 불가피하게 남성으로 패싱한 미리씨는 “직장을 그만두면 연락을 끊는다”고 말했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다. “미용에 관심이 있는 (남자) 선생님”으로 패싱되는 주현씨도 걱정이 있다. 지금 대놓고 커밍아웃을 해서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 그는 “내 거 다 날아가”라고 짐작한다. 성전환 수술을 해서 성별 정정을 마치기 전까지, 직업 세계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유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카톡 커밍아웃’이다. 주현: 가족 중에는 부모님만 몰라요. 따로 나와 산 지 19년 됐어요. 집안에 일이 있어서 1년간 연락을 안 해요. 근데 카톡이 복병이야. 제가 일부러 화장한 사진을 올려요. 일부러 볼 테면 보라고 다 까놨어요. 이대로 보여주려고요. 가족들이 다 알아요. 은영: 페이스북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었어요. 거기는 성별을 여자로 했어요. 그리고 기존 아이디랑 결혼한 상태로 만들어버렸어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어? 너잖아’ 하면서 다 알아요. 가족들이 안다고 하늘이 무너지진 않는다. 보라씨는 “가족 중에 남자밖에 없었으니까 엄마가 좀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에 짐작과 다른 일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카톡 커밍아웃’ 미리: 저는 복받은 사람이죠. 가족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더 받았으면 받았지.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생활비가 따로 안 들잖아요. 이런 것만 해도 저는 은혜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술비도 빠르게 모으고 있고. 부모님한테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인터뷰 참가자들은 하리수(왼쪽)·최한빛으로 상징되는 ‘섹시한 MTF 트랜스젠더’ 이미지가 미디어에 의해 과잉 조장됐다고 지적했다. 평범하고 수수한 이들은 심지어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