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에 ‘여기에 지나는 사람 10명 중 1명은 성소수자입니다’ 현수막을 내걸었던 ‘마포구 레인보우 주민연대’(마레연)의 회원 대부분은 레즈비언이다. 레즈비언들은 2000년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주도해왔다. 가장 인권에 민감하고 행동에 과감한 성소수자인 것이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사회: 그래서 지금 얼마나 되신 거죠? 혜정: 딱 10년하고 이제 한 달이 지났어요. 10주년 기념일에 결혼식을 했어요. 혜정씨는 “그런 역경들을 겪어가면서”라고 말했다. 그는 “둘이 합쳐서 2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처음 만났다”고 돌이켰다. 파트너와 처음 만난 겨울에 돈이 없어서 자기 옷만 샀는데 “서로 미안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당시에 샀던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혜정: 처음에 내가 용돈을 안 주는데 달라는 소리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샤워할 때 지갑을 몰래 꺼내봤더니 1천원짜리가 이만큼 있어요. 혹시 직장에서 훔쳤나, 생각도 했죠. 며칠이 지나도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1천원짜리가 왜 그렇게 많냐고. 대답하기를, 회사에서 점심은 대놓고 먹는 식당이 있고, 저녁에는 똑같은 데서 먹기 질리니까 사장님이 4천~5천원씩 식대를 준대요. 그러면 그걸 1천원짜리 김밥을 사먹고 2천~3천원을 아껴서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내놓고…. 파트너의 일이 잘 풀리고, 혜정씨도 열심히 맞벌이를 해서 지금은 집 장만을 계획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졌다. 그는 “힘든 시간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나는 다른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라면서도 “한번은 이 사람이 속을 썩여서 정말 자살하려고 옥상에 끈을 맨 적도 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혜정: 그래서 제가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첫째는 결혼식이고, 둘째는 돈 있으면 바람을 피운단 생각을 했어요. 집이며 통장이며 제 명의로 했어요. 보이시한 부치와 여성스러운 펨 레즈비언 커플을 보이시한 부치(Butch)와 여성스러운 펨(Femme)으로 나누기도 한다. 혜정씨가 펨이라면 신랑은 부치다. 이성애적 통념으로, 부치가 가부장 같아 보이지만 펨이 관계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오래된 커플이 그렇다. 진아씨는 펨에게 재산권을 주는 경향에 대해 “제도적인 걸 원하지만 안 되니까 차선책을 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혜정씨의 경우는 커플이 싸우면 파트너 어머니가 쫓아와서 “나는 혜정이 아니면 싫다”고 하실 정도로 신뢰를 쌓았다. 혜정씨는 “헤어지고 싶어도 파트너의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고, 우리를 롤모델로 여기는 레즈비언 후배들한테 면목도 없어질 것 같다”며 웃었다. 물론 그는 지금도 파트너를 깊이 신뢰하고 사랑한다. “여자지만 남자 같은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계에서 단점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혜정: 곧 새 직장에 나가는데, 결혼했다고 얘기했어요. 굳이 여자랑 결혼했단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요즘은 이성애자도 결혼하고 호적에 바로 안 올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중에 알려지면 저 여자랑 결혼했다고 얘기하면 되고. 직장만 빼고 친구나 가족 모두가 알고 있어서 무서울 게 없어요. 옛날에는 협박도 ‘가족한테 이른다’ 이랬는데 다 아는데 뭘. 하하. 이렇게 자긍심 넘치는 커플이지만, 생계가 걸리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의 파트너가 동네에서 자영업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관계를 알면 영업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된다. 그래서 커플인 것을 티 내지 않으려 “둘이 동네에서 좀 떨어져서 걷는다거나” 조심한다. 6년을 살아온 동네를 떠날까 싶은 생각도 든다. 혜정: 동네 분들이 저희를 친척으로 알고 있어요. 저희 부모나 그쪽 남동생이 수시로 왔다갔다 하니까요. 요즘은 미디어 영향도 있고 해서 눈길이 달라요. 한번은 식당에 갔는데, 약간 레즈비언 같은 아주머니 한 분이 ‘둘이 사귀지?’ 그래요. ‘네? 가끔 그런 소리 듣는데요’ 그러고 말았어요. 요즘 우리 여기 너무 오래 살았다, 그래요. 결혼식을 올릴 만큼 관계가 공인되기를 바라는 혜정씨. 동성 커플의 법적 관계 중에 느슨한 파트너십과 친족관계까지 포함하는 결혼제도 가운데 무엇을 원할까? 혜정: 딱 파트너십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저는 파트너 어머니와 어떻게 보면 며느리 같지만, 며느리는 아닌 관계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그이한테 좀 과한 사랑을 보여주는 분이세요. 법적 결혼으로 딱 엮이면 시월드가 겪어질 것 같아서…. 레즈비언 커플인 게 저한테는 좋은 면이 있는 거죠. “첫사랑을 시집보낸” 기억 모두들 웃으며 “무서운 분”이라고 했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에 공감도 갔다. “다시 태어나도 레즈비언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43살 수민씨는 5년, 2년, 9년 사귄 애인이 있었다. 지금 애인과는 5년째 동거를 하고 있다. “첫사랑을 시집보낸” 기억도 있는 그에게 관계의 법·제도화는 남다른 감회를 부른다. 수민: 9년 사귀고 헤어졌을 때, 걷다가 이만큼 빈 공간을 훅 밟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뭐냐면 서로 ‘너랑 못 살겠다!’가 아니었거든. 점점 마음의 끈을 놓다가 나는 다시 잡아가고 있었어. 마지막에 뭐가 안 맞아서 헤어지게 됐는데. 우리가 법적 부부거나 애가 있었다면 ‘그래, 참고 살자’ 해서 다시 연결될 수 있었을 거야. 그는 지금 인권운동 하는 애인을 만나서 잘 지낸다.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어머니도 “너만 좋다면 좋다”고 인정했다. 앞으로 운동하는 애인의 조력자로 레즈비언 커플의 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키우고 있다. 장구한 연애의 역사와 솔직한 욕망을 가진 그도 ‘성소수자라서’ 아팠던 기억은 있다. 수민: 9년을 살았던 친구가 회사에서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잘못해서 얼굴에 뿌렸대요. 눈에 들어가서 병원에 간신히 실려갔는데 그 전화를 받고도 갈 수 없었어요. ‘내 친구가 아파서 가야 한다’고 회사에 말할 수는 없잖아요. ‘악!’ 소리도 못하고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는 지금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 연하의 애인에 안정된 직장, 주말이면 어울려 운동하고 살아온 날들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는 “식구가 다섯”이라고 하는데 “개 아들, 개 딸”이라고 부르는 강아지 세 마리를 포함해서다. 어느새 40대에 접어든 그는 “어제 갑자기 6살짜리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꿈 이야기를 꺼냈다. 수민: 나는 늘 엄마한테 엉겨붙는 딸을 보면 정말 부럽거든. 왜 요즘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꿈에서 내가 개를 너무 좋아하니까 개가 변해서 애가 됐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사랑하니까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개는 다른 데 가 있고 어떤 여자애가 와 있는 거야. 마치 길을 잃어서 우리 집에 온 것처럼. 애를 보살피다가 보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전화를 걸라고 했어. 근데 자꾸 암호 같은 번호를 누르는 거야. 내가 ‘이리 줘봐’ 그래도 애가 자꾸 숨기려고 해.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는데…. 그 신호를 받고 온 사람이 나를 음해할 것 같았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여자애 얼굴이 너무 또렷하고…. 그러나 혼자는 입양할 수 있어도 레즈비언 커플은 입양이 더욱 어려운 현실이 있다. 수민씨의 다음 세대인 진아씨는 커플은 아니지만 “회사 사람들 빼고는 모두 알 만큼” 커밍아웃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진아씨는 “커밍아웃 다 하고 싶어요.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유는? “그게 내 삶을 설명할 대표적인 거니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빼면 별거 안 남잖아요.” 그런 그가 30살까지 철저하게 레즈비언이란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진아: 우리 언니가 누가 봐도 레즈비언이었죠. 중학교 때부터 내가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인식한 순간부터 언니를 보면 알겠더라고요. 근데 제가 중학교 때 우리 언니가 사귀던 사람이 결혼을 했어요. 그 언니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죽겠다’고 하는 걸 제가 봤죠, 엄마가 충격받는 걸 보고 ‘나는 그래선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진아씨는 중학교 시절 예쁜 여자한테 마음이 가는 자신을 보면서 성정체성을 깨달았다. 그 자체로 고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참담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15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시간이 흘렀다. 그의 나이 30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비로소 언니에게 말했다. 진아: 언니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는데…. 15년 동안 엄마도 숨기고, 저도 숨기고, 언니도 숨기고. 언니한테 ‘엄마도 알고 있었으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고 했어요. 저도 커밍아웃 하고. 언니가 더 충격을 받았죠. 1년 동안 언니를 못 만났어요. 학교선 모범생 코스프레, 밖에선 팬 코스프레 12살 터울이 나는 언니는 언제나 엄마 같았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살아온 자매는 그랬다. 언니는 레즈비언 커플로 16년을 살았지만, 동생의 커밍아웃에 충격을 받았다. 진아씨는 “언니는 되게 조카를 갖고 싶었고 엄마의 마음이었던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여자 얘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됐지만 말이다.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게이와 레즈비언이 위장결혼을 하면서 생긴 이야기다. 레즈비언 이야기가 나온 드문 한국 영화다. 청년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