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카페 겸 제로웨이스트 가게 ‘이공’에 <한겨레21> 통권5호 ‘쓰레기 TMI’가 놓여 있다.
귀하고 높고 외로운 ‘제로웨이스트 가게’
이공의 사명감과 고민 앞에, 잡지에 큼직하게 적힌 TMI(너무 과한 정보)는 다소 부끄러운 제목이다. ‘이게 무슨 투 머치?’ 꾸짖는 듯하다. 이공은 카페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는 자체 퇴비화 시설에 넣어 퇴비로 만든다.(이공에서 일하는 제이(활동명)는 “카페 음식물쓰레기 질이 좋잖아요”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과일 껍질과 밥풀이 든 퇴비통을 열어 보였다.) 탄산수를 페트병째로 들여오지 않기 위해 직접 제조한다, 휴지 냅킨은 치우고 소창으로 만든 헝겊 냅킨을 쓴다, 테이크아웃 컵은 없앴다, 대신 대여용 텀블러를 두었다,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부터 음료에는 우유 대신 두유를 넣는다 등등. 다 적지 못했다. 납득할 수 없는 물건의 행로가 빤했고, 방법을 찾다보니 하나둘 하는 일이 늘었다. “좀 하드코어하기는 한데… 광주에 몇 없는 제로웨이스트 공간이다보니 다른 분들도 참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이공에 제로웨이스트숍을 들인 왕꽃(활동명)은 설명했다. 그런데도 분명 문제는 또 발견될 것이고, 해야 할 일은 또 더해질 것이다. 그렇다. 무겁고 또 무거운 쓰레기 앞에 아무리 해도 ‘투 머치’는 없다. 늘 어딘가 부족하다. “어느 누구든 ‘여긴 안전해’, 느낄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쓰레기 TMI’도 부족하다. 왕꽃이 짚어줬다. “서울·수도권 말고 다른 지역의 소각이나 매립 상황을 좀더 다뤘으면 좋았겠어요. 예를 들어 광주는 소각장이 없어 직매립(소각 없이 매립)을 하고 있거든요.” 맞다, 지역의 쓰레기를 놓쳤다. 담배꽁초와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깊게 담지 못했다.(이공은 담배꽁초를 주워 온 이들에게 ‘쓰레기 TMI’를 무료 배포한다.) 종이와 종이팩은 다르며, 종이팩을 따로 분리배출할 방법만 있다면 더 많이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적지 못했다.(왕꽃은 종이팩 분리배출 캠페인 ‘카페라떼 클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쓰레기 TMI’는, 너무 과한 정보일 리 없다. 빈곳투성이다. 부족한 정보다. 이공 한편에 놓인 잡지의 묵직함이 문득 부끄럽다.“정확한 쓰레기 정보를 모아줘서 좋아”
그래도 이들은 이 부끄러운 잡지를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했다. 왕꽃은 환경에 관심 있는 시민이 모이는 곳에 “보부상처럼 짊어지고 가서” ‘쓰레기 TMI’를 팔기까지 했다. 대체 왜? “보통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주간지에 정확한 쓰레기 정보를 이렇게 열심히 모아준 것이 좋아서 우리 가게에 꼭 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제이는 말했다. 전북 군산 전시공간 겸 제로웨이스트 가게 ‘자주적 관람’ 최정은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학교든 기관이든 곳곳에 놓여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어요. 정보량이 상당해서 인터넷 기사로 읽기는 힘들 텐데, 그래도 읽어보면 생각할 계기가 될 텐데요.”(최정은 자주적 관람 대표) 굳이 사 볼 필요는 없다. 자주적 관람은 잡지를 읽고 싶은 사람이 부담 없이 빌려 갈 수 있도록 대여도 한다. “근데 보더니 대개 그냥 사 가시기는” 했다.읽는 이들에게 이 묵직한 잡지는 그러므로 (애초의 기획 의도와 달리) 쓰레기 정보의 총집결이 되지 못했다. 16명 훈련된 기자가 달라붙었건만 쓰레기 세계를 소개하는 짤막한 광고에 그쳤다. 낙담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목표를 수정한다. 읽고, 잠시 생각하고, 둘러보고, 불편함을 발견하고, 고치려 해보고, 이야기하고, 또 같이 시도해보는 시작점에 ‘쓰레기 TMI’가 있길 바란다. (평소 <한겨레21>스럽지 않은) 격한 선동이길 바란다. 불씨이길 바란다. 그렇게 이 잡지 혹은 광고 혹은 선동문, 혹은 불씨가 당신의 손에 쥐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인스타그램에는 잡지 사진과 함께 ‘내일 지구가 망하는 게 자명하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 심는 마음으로(soopeul_)’ ‘TMI를 좋아해요. 조금 더 많이 알면 조금 더 관심이 기울여지거든요(opencloset_Suit)’ 같은 글들이 적혔다. 불필요한 소비를 누구보다 줄이고 싶은데도 이 종이 뭉치만큼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절망 앞에 뭐라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알고 나면 답답할 게 분명한 물건의 무게를 직시하고 감당하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모여 잡지 ‘쓰레기 TMI’는 모두 팔리고 말았다. 재고가 없다. 못 구했다는 낙담을 듣는다.‘쓰레기 TMI’… 잡지에서 책으로
‘쓰레기 TMI’를 책으로 만들어 다시 낸다. 9월13일에 나온다. 잡지보다 좀더 굵직하고 묵직하다. 글 몇 개를 추가하고 재생용지를 썼더니 그렇게 됐다. 불가피하게 세계에 무게 몇 그램을 더했다. 1만2천원이다. 되도록 쓸모 있는, 꼭 필요한 만큼의 무게이길 바랄 뿐이다. 광주=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한겨레 벗도 겨리와 함께 줍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