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6일 (왼쪽부터) 남종영 기자,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김연수 소설가가 제14회 손바닥문학상 결심에 올라온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구의 온갖 문제가 소용돌이쳤습니다. 파국을 향해 치닫는 지구에 많은 사람이 ‘재생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구제불능으로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인간의 틈에서 희망을 본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22년 전 자동차를 버리고 채식 위주 식단을 실천하는 60대(‘행복한 왕따’), 학원을 가지 않고 생태주의 여성을 산에서 만난 중딩(‘지구-2㎝ 아래의 세상’) 등 나이, 성별, 픽션·논픽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구’라는 주제를 향해 ‘백일장’을 해오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22년 12월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결심을 거쳐 응모작 123편 중 최종 3편을 골랐습니다. 대상에 홍수현의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 가작에 김수정의 ‘카스피주엽나무’, 전지은의 ‘짝수인간’을 당선작으로 올립니다. 예심을 한 <한겨레21> 기자와 결심 심사위원이 글을 읽으며 행복한 한 달이었듯이, 당선작에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도 지구를 생각하고 글을 완성한 것으로 뿌듯한 ‘달리기’였기를 기대합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오랫동안 걷다보면 동일한 온도의 체온을 나눠 갖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온도가 딱 1도라고 생각했다. 그 1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신념이기도 했다.”(‘1도의 세계’) _진행·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무작정 종말을 기다려야 할까기후위기, 동물권, 미세플라스틱, 비거니즘 등의 문제에 접근할 때 죄책감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죄책감은 처벌(앞날)에 대한 공포와 체념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죄책감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무엇도 하지 않고 종말을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기이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점에 주의하며 작품들을 읽었다.‘짝수인간’은 세계기후협약에 따라 인류의 반은 짝수 날짜에, 반은 홀수 날짜에 깨어나게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내는 짝수이고 남편은 홀수인 난처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난처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야기로서는 제일 재미있었다. 다만 비슷한 발상의 소설이나 영화가 이미 있었다는 점이 한계로 남았다.‘카스피주엽나무’는 제목도 좋고 문장도 좋았다. 내용도 주제의식이 또렷해 따라 읽기가 편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몸에 축적돼 발생할 일을 현실적인 공포로 느껴지게끔 하는 상상력이 무척 안정적이고 전문적이었다. 대상을 받아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긴 이야기의 도입부처럼 느껴지니 계속 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는 우주선이 화자인 소설이다. 사물지능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를 찾아가는 임무를 띤 우주선인데 충돌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역시 난처한 상황. 문장력도 좋고 묘사도 잘돼 있는데 읽기가 쉽지만은 않은 묘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대사에 읽는 맛이 있고, 농담도 유쾌하다.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도 산뜻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끌렸던 소설은 ‘토마토가 사라진 세계’였다. 소설이 미완성처럼 느껴져 아쉬웠지만, 토마토가 내가 아닌가 하는 독백도, 소설 속 소설인 ‘잠들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다. 김연수 소설가색채 감각의 독특함
이득과 불편 사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