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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좋은 것은 다 자연에 속한 것이었지

지구적 시점으로 ‘기후변화’ 주제 소설집 낸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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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11-05 02:12 수정 : 2022-11-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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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식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기후변화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과 죄책감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소년만 알고 있다’의 소년,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도경 등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사는 소년은 산호초가 하얗게 되는 백화현상을 목격하고 자신이 “건드리면 큰일이 나는 ‘지구의 버튼’이라도 누른 것은 아닐까?” 두려워한다.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할 만큼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에 사는 도경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읊조린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는 채로 고추는 익기 전에 썩어간다. 누구를 탓하기도 전에 불볕더위와 폭우를 오가는 여름 뒤에 겨울은 너무 일찍 도착했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2021년)은 김기창 작가가 작심하고 써낸 ‘기후변화’ 주제 단편집이다. 손바닥문학상이 내건 ‘지구’라는 주제에 맞춰 미리 써둔 듯한 소설들은, 이 주제가 이렇게 문학적일 수 있음을 웅변해준다. 10월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미래세대, 동물을 모아 ‘기후문제’로 총정리
어떻게 ‘기후변화’를 내걸 생각을 했는가.

“동물에 관심도 많고 사진에 영감을 받는 때가 많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정기구독했는데, 2013~2014년 즈음부터 한 호에 하나씩은 기후변화로 인한 침토, 북극 빙하가 녹는 것 등을 보여줬다. 북극을 소재로 하여 그렇게 처음 쓴 작품이 ‘약속의 땅’이다.”

소설을 보면 각주가 많이 등장한다. 자료를 많이 준비한 것 같다.

“1년 반 동안 10편을 썼다. 2018년부터 자료 조사를 꾸준히 했다. 아이디어를 잡으면 그걸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제목에도 ‘기후변화’라고 들어가는데, 문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걱정은 없었는지.

“우려라기보다 재미있을지에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경각심이나 문제의식을 심어주면서 재밌게 보여줄 수 있을까. 책과 다큐가 근래에 쏟아져나온다. 정보를 나열하는 비슷한 방식은 필요 없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기후변화를 보면 인간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동물도 등장시켰다. 미래세대가 겪어야 할 문제이기에 에스에프(SF·과학소설)로도 흘러갔다. 기후문제는 불평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그 문제를 작품마다 녹이려 했다.”

‘약속의 땅’은 북극이 배경이다. 북극곰과 새끼를 주인공 삼아 좁아지는 해빙 위에서 살아내야 하는 그들의 삶을 안타깝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년만 알고 있다’는 현재의 발리가 배경이고, ‘1순위의 세계’는 근미래의 울산,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는 현재 한국의 소도시다. 지구적 시점으로 지구의 여러 곳을 배경으로 하고 현재와 근미래를 오간다.

출간 뒤 내용이 점점 현실성 띠게 돼
“생각해보면 예외 없이 좋은 것들은 다 자연에 속한 것들이었다.”(‘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 “돌이켜보면 내가 꼽은 1순위는 대체로 날씨와 연관되어 있어.”(‘1순위의 세계’) ‘기분’(氣分)이라고 할 만큼 주위 날씨에 영향받는 인류의 감정적 체계가 변하는 것이 기후변화다. 기후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받는 약한 이들은 화를 내지만, 분노는 목표점을 못 찾고 떨어져내린다. “폭염도 못 막고 혹한도 못 막으면서 왜 나만 막아.”(‘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원인도 결과도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이 문학이 형상화할 과제다. ‘기후변화’가 심상의 기록인 문학으로 전화되는, <기후변화시대의 사랑>이 던지는 힌트들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큰 이야기도 있다. 소설집의 맨 앞 SF로 분류될 세 편은 돔이 건설된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돔 바깥(‘하이 피버 프로젝트’), 내부(‘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 경계(‘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로 나눠 세 편이 연작을 이룬다. 돔은 폭염과 폭우 등을 막아 기상 조건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공간으로, 수용인원의 한계로 거주자와 추방자가 존재한다. 지구 환경은 변했지만 인류의 어리석음은 여전한 것이 이 ‘기후소설’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추방자들은 땅굴을 판다. 그들의 목표는 돔시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닐 정도로 체제 순응적이다. 출간 뒤 책의 내용은 점점 더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사막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돔 건설’을 선언하기도 했고 ‘열파’는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흔히들 말한다. 예전에는 에어컨 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에어컨이 없으면 못 살겠다고. 몇 년 사이 사이즈가 커졌다. 폭염이 10일에서 15일로 길어지고, 홍수와 화재가 빈발했다. 기후난민도 발생했다. 홍수 때문에 살 수 없어지자 미국으로 향해 가는 긴 카라반 행렬이 만들어졌다. 기후변화를 이유로 난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지구를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으로 하려고 한다. 뜨거운 물로 씻어서 세제를 최소한으로 쓰고 텀블러를 갖고 다닌다. “얼마 전 스타벅스 텀블러 생산량이 어마어마해 ‘일회용품’이라 불러야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기후에 가장 책임이 적은 사람이 직접적으로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듯이 기후변화가 정의롭지 못하다.”

소재, 길이, 발표 형식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손바닥문학상을 준비하는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한다. 근래에 회자되는 작품들은 소설 형식을 따르지 않는 도전적인 작품이 많다. 정보라 <저주토끼>, 이기호 <눈 감지 마라>, 김동식 <회색인간> 등이 그렇다. 소재, 길이, 발표 형식 등이 새로웠다. 그리고 많이 써라. 쓰면 쓸수록 는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좋아진다.

작가는 현재 오늘의작가상을 받은 <모나코>와 <방콕>에 이어 도시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마산>(가제)을 집필 중이다. “한 도시의 성장과 쇠퇴, 도시가 가지는 보편적 속성을 그려보고 싶다.” 주인공은 1970년대, 1990년대, 2020년대의 20대 세 명. 일제강점기에 개항해 수출자유지역이 되어 외지인이 대거 유입하면서 한국의 7~8대 도시까지 이르렀던 도시, 창원과 합쳐져 이름이 없어지기까지 파란만장한 도시의 역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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