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편3.0 3기 단체대화방 갈무리
조배원 저는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에서 살고 있고, 언니는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이 그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희 자매가 ‘지역’이라는 코드를 바라보는 방식이 묘하게 달라요. 지역에서 자란 청년과 서울에서 다시 돌아가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청년의 삶과 생각을 비교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송영석 ‘지역의 삶’에서 대안을 추구하는 좋은 사례도 있지만, 서울로 가지 못한 지역 청년들은 ‘서울의 삶’과 비교적 유사한 선택지를 고르려 하고, 지역 유명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이에 해당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가 실제 지역 청년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도 궁금합니다. JiEun 지역이 대안이 아니라 목적일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이 생기네요. sonjanghee 서울에서 나고 자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모두 서울처럼 되려고 하거나, 모든 지역을 서울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안목과 뒷받침도 중요할 것 같고요. 조배원 공감 백배입니다. 공적 고민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대화 살며 겪은 얘기로 시작한 대화가 공적인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지역의 삶이 대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을지’ ‘혁신도시는 이런 질문 앞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독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2020년 연중기획으로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을 다루기로 한 <한겨레21>에 숙제이기도, 다룰 법한 기사 주제이기도 한 질문들입니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며 이야기가 넓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새해 첫날,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를 표지이야기(제1295호)로 다루기로 했다는 이야기에 어느 한쪽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시각이 전해집니다. 정회빈 이공계 연구직의 경우 주 52시간제와 양립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습니다. 주 52시간제를 지키자면 연구 속도가 더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놀면서 일해야 창의성이 높아진다지만, 당장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기도 하네요. 연구직의 주 52시간제 이야기도 보고 싶습니다. 송영석 주 52시간제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 같아요. ‘주 40시간+12시간’일 텐데요. 주 35시간 근무제를 이미 도입한 기업을 심층 보도한다면 사람들이 ‘주 40시간+12시간 근무제’ 이상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훈(토머스) 주 52시간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여전히 일주일 내내 일하고 한 달에 고작 두 번 평일에 돌아가며 쉬는 식당, 모텔 같은 일터의 현실에 대한 고발도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제도가 시행되는 시점에 이런저런 이유로 적용과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그 제도가 일반화한 후에도 여전히 배제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주 5일제 노동도 한국 사회에서 그랬고요. 독자의 생각과 기자의 취재 어우러져 누구도 쉽게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주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세심하고 폭넓게 고민할 지점을 짚어내는 것일 터입니다. 독자 이야기 듣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주 52시간제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 쉬는 것조차 어려운 사업장이 도처에 있고, ‘쉬면서 일한다’에 낯선 세대도 엄연히 함께 일합니다. 이런저런 고민, 한 번 기사에 모두 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꾸준히 바라보고 써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독자의 고민과 기자들의 취재가 모여 한주 한주 기사가 전해집니다. “제1296호가 집에 도착해 있네요. 잘 읽겠습니다.”(이상훈)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 며칠 뒤에는 으레 “독후감 남깁니다”(조배원)로 시작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때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송년호(제1293호)에서 짚은 지난 기사 가운데 특성화고 졸업생 20명 추적 보도가 좋았습니다. 예전에 <한겨레21> 14주년에 <21>과 나이가 같은 전국 각지의 중학교 2학년 학생을 인터뷰했어요. 강남의 국제중학교 다니며 변호사가 꿈이라는 학생, 선생님이 지금껏 본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깡촌 학생. 그 중2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역시 추적 보도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백종수) 여성 농부 힘 실어주는 행동으로 때로 소소한 행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육아를 마치고 밤 10시 넘어 <한겨레21>을 읽고 있어서 속도가 남들보다 좀 느립니다. ‘마녀들의 씐나는 작당’(제1294호) 기사를 읽고 여성 농부님들의 따뜻한 손길로 재배된 생산물에 힘 실어주고 싶어서, 논밭상점에서 꿀고구마 10㎏ 한 상자 시키고, 블로그에 가서 이웃 신청도 했어요. 느린 독자의 느린 소감입니다.”(박은주) 때로 스스로 돌아봅니다. “‘시간 여행자 양준일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면’(제1296호)을 읽으면서 1990년대 경직된 학생운동가로 살던 시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양준일을 보면서 ‘자본주의 문화의 첨병’ 운운하던 선배, 고개를 끄덕이던 제 자신도. 그래서 다시 보게 된 양준일에게 미안하네요.”(이상훈) 때로 마음 아파합니다. “쌍용차 복직 예정자 기사(제1295호)가 계속 생각납니다. 오랜 시간 걸려 한 걸음 나아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이 참 갑갑하고 답답합니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잔인한 현실에는 없는 걸까요?”(박서진) 때로 좀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도에 특별히 흠을 잡거나 나무랄 데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광고 때문에 한국 언론에는 기업 편향적이거나 시장 중심적인 경제 기사가 범람합니다. 이런 시류에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힘있는 경제 콘텐츠가 한겨레 쪽에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송영석) 때로 고맙습니다. “모든 언론이 화제성 보도를 할 때 모두가 주목하지 않은, 한구석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채식급식 해주세요’(제1290호) 기사에 채식하는 사람들 모두 <한겨레21>에 감사하고 있어요. 스쳐가는 보도는 많았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채식인의 인권을 조명해준 적이 없었습니다.”(박은주) 고민 지점 함께 포착 고심한 말과 말이 이어지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잠깐 시선 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안에 품고 있던 말이 메시지로 적혀 올라오고,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끝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내달리는 모습. 좋은 대화가 주는 짜릿함이 남기는 건 결국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 잡지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다짐하는 중에도 알찬 한마디 한마디가 대화창에 새겨집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