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성폭력 없는 넷세상에 살련다

333
등록 : 2000-11-0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사이버 공간에 범람하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사이트들

여성 인터넷 사용자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사이버성폭력신고센터(www.gender.or.kr)에 따르면, 개소 뒤 다섯달 동안 사이버스토킹, 명예훼손, 음란물게시, 성희롱 등에 대한 신고건수가 총 420건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증거수집이나 목격자 확보가 어렵고 신고를 꺼리는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감안할 때 실제 일어나는 사이버성폭력 피해가 엄청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폭력 행위들

현실세계에서의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이버성폭력 피해여성들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밤낮으로 울려대는 휴대폰과 음란한 문자메시지로 인해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감, 신경쇠약증상까지 보인다는 게 피해여성들의 증언이다. 얼마 전에는 자살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사이버성폭력은 가정, 직장, PC방 등 온라인 환경이 설치된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발생한다. 피해사례가 매우 다양해 유형화하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대략 네 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첫 번째 유형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이다. 성과 관련한 개인신상정보를 사이버상에 게재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개인의 성생활을 포르노로 제작하여 음란사이트에 동영상으로 배포하는 행위이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게시판에 게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 유형은 사이버성희롱. 채팅중에 갑자기 성적인 이야기를 꺼낸다거나 음란한 내용의 쪽지를 보내는 것, 메일을 통해 성적인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나 영상을 보내는 것 따위이다. 이 사이버성희롱은 전체 신고건수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보편적인 피해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사이버스토킹. 이메일이나 게시판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괴롭히는 행위이다.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적 고통은 물론이고 대인기피증이나 강박증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네 번째 유형은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언어폭력이다. 올 초 군가산점 논쟁 당시 ‘익명’의 남성들이 여성단체 등의 게시판에 여성비하적, 성폭력적인 욕설로 도배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밖에 채팅방의 제목을 ‘집단강간 파티’, ‘영계만 들어오세요’식으로 붙여 여성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이버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 대한 여성의 접근 기회를 차단하고 활동영역을 위축시킨다. 여성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사이버를 이용할 권리를 침해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자유롭고 평등한 사이버문화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근절돼야 할 ‘범죄’이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가 받는 고통에 비해 그 심각성이 사소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법적 대응수단도 미흡한 실정이다.

사이버 공간이 갖는 익명성과 비대면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사이버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피해여성들은 신고자체를 포기하거나, 신고 뒤에도 별다른 대책없이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맞서야 피해 막을 수 있어

(사진/www.haltabuse.org)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해결 방식이 그렇듯이, 사이버성폭력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이 먼저 나섰다. 최근 나우누리의 한 동호회에서 사이버스토킹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회원들을 중심으로 별도의 사이트(stopper.hihome.com)까지 만들어 가해자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부으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또 여성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인 ㅣbcity는 홈페이지(www.lbcity.com/Community) 상단에 ‘폴리스 아이콘’을 마련해 여기를 클릭하면 관리자에게 바로 접수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사이트 운영자가 적극적으로 사이버성폭력에 대응하면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사이버성폭력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접속을 끊거나 피하는 소극적 대응만으로는 또다른 피해의 재발을 유발시킬 뿐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 또 사이비성폭력이 만연하면 사이버공간에 대한 ‘규제와 타율’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 문제가 남성, 여성 구분없이 전체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제약할 수도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사이버성폭력 방지를 위한 국제연대를 부르짖는 사이트들(www.haltabuse.org, www.well.com/user/freedom)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이버마초의 테러 방지를 위한 여성친화적 사이버네트워크’를 표방한 시스터본드(sistebond.jinbo.net)의 활동이 요즘 눈에 띄게 활발하다. 이런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운동과 노력이 성숙한 사이버문화를 정착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유은정/ 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kej7112@hanimail.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