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인식과 수양을 위한 사유의 습관… 동과 서의 보편적 진리는 어디에 있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일본 등의 나라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들이 도로 왼쪽으로 달린다. 이들 나라에 가서 “차들이 왜 반대방향으로 달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게 왜 반대방향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우리에겐 차량의 우측통행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 맞는가?
영국에서는 옛날 마차 타고 다니던 시절 마부가 왼쪽에 앉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부가 왼쪽에 앉아 오른손으로 채찍질을 하면 마차에 탄 사람이 채찍에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마부석이 오른쪽에 만들어졌고, 그 전통이 자동차에 그대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에 대해 우측통행 나라에서는 “자동차가 우마차냐?”고 반박할 것이다. 이들은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야 오른손으로 기어 등을 조작하기 쉽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그럼 왼손잡이는 국가를 따로 만들어 좌측통행을 해야 하나?
아무리 인간의 이성이 개명을 거듭하더라도, 이런 사소한 관습조차 ‘전 지구적인 통일’에 이르기는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쪽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며 보편타당한 진리 추출 일상의 관습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일종의 습관이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마음의 습관들”(habits of the heart)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언어를 쓰는 겨레마다 서로 다른 “사유의 습관들”(habits of thinking)이 언어에 남아 있다.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은 논쟁과 논박을 통해 가장 보편타당한 진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들의 사유의 습관들은 이후 서양 철학의 뿌리깊은 전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칠십 노인이 될 때까지 등에(날파리)처럼 사람들을 성가시게 만들며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참된가?” “당신의 판단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묻고 다닌 일에서부터, 평생을 시계추처럼 살다간 이마누엘 칸트가 쓴 기념비적으로 난해한 저작 <순수이성비판>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결국은 “인간이 무엇을 (진실로) 알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서양 철인들의 사유의 중심에는 ‘인식론’(epistemology)의 문제가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고대 중국인들의 ‘사유의 습관’은 좀 달랐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상적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무엇을 알 수 있느냐”보다 “무엇이 될 수 있느냐”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상대방이 어떻게 사고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논박을 벌였다면, 공자나 노자 등 중국의 철인들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의 중심 사상인 ‘어짊’(仁)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했다. 노자 또한 자신이 말하는 길(道)을 들으면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리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가령 “가장 수준이 낮은 선비는 길에 대해 들었을 때 깔깔대며 비웃을 것이고, 중간치 선비는 반신반의할 것이고, 최상의 선비는 힘써 실천할 것”이란 말이 그런 예이다. 서양 철학의 중심에 ‘인식론’이 있다면, 동양 철학의 중심에는 ‘수양론’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양론이라고 하면 좀 모호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인식이든 수양이든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참된 인식은 사고가 치밀하게 변해야 얻을 수 있고, 수양은 사람됨이 변해야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논어>에는 “人不知而不온(心+溫에서 삼수변 뗀 것), 不亦君子乎?”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대부분의 번역서들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옮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성내지 않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꾹 참으면 된다. 그러니 이 구절은 이렇게 옮기는 게 온당할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이 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성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성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아마도 마음공부를 많이 해야 하겠지만. 고대 중국의 철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과 달리 ‘인식’보다 ‘수양’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누구의 논리가 더 타당한가를 두고 싸운 게 아니라, 누가 더 마음그릇이 넓은가를 두고 경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논쟁’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고대 중국인들은 ‘덕쟁’(德爭)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권력자를 위협하던 사유의 습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은 ‘개념’을 사다리 삼아 보편성을 얻는 길을 걸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법’보다 우선시하고, ‘진실’을 ‘관습’보다 높은 곳에 두었다. 이런 ‘사유의 습관’은 현실의 권력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권력자들은 “국가보안법이 있으니까 이를 어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근본적으로 “국가보안법이 과연 정의로운가”를 등에처럼 따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진실과 정의, 아름다움 등의 추상 개념을 사다리 삼아 보편적인 사유에 도달하려 했다. 이 전통이 견유학파와 스토아학파에 이르러 세계시민주의로 연결된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는 자신이 어떤 시민권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오히려 자랑했다. 그는 “인간은 우주의 시민”이므로 도시국가에 대한 사랑(애국심)은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인간은 시민이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서 존엄하다”는 것과, “삶의 최고의 가치는 국가를 위해 살거나 죽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고결하게 사는 것, 신을 기쁘게 하며 사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유의 습관’은 달랐지만, 고대 중국의 철인들도 같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의 일화를 읽어보자.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共王)에게는 ‘번약’(繁弱)이라는 활이 있었다. 초왕은 여기에 ‘망귀’(忘歸)라는 이름의 화살을 걸어 운몽(雲夢)이란 사냥터에서 교룡과 야수를 사냥하다 그만 활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신하들은 사냥터를 까뒤집어서라도 이 천하의 명궁을 찾자고 했다. 그러나 초왕은 이렇게 멋을 부렸다. “그만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초나라 사람이 그것을 주울 것이다. 굳이 찾아 무엇하겠는가?” 여기까지는 왕이 역시 신하보다는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공자(孔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평했다. “초나라 왕이 아직 인의(仁義)를 덜 닦았다. 그냥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사람이 그것을 주울 것이다’라고 하면 되는 거지, 하필 초나라를 들먹거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대표적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공손룡(公孫龍)의 글을 모아놓은 <공손룡자>(公孫龍子) 첫머리에 나온다. 시야를 넓히는 덕쟁은 어디로 사라졌나 “로마 시민보다 우주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나, “초나라 사람을 아끼기보다 천하를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은 완전히 닮은 꼴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사유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초나라 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초왕의 발언을 반박하는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인간’ 개념에 이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초왕이 아직 인의(仁義)를 덜 닦았다”(楚王仁義而未遂也)는 표현을 썼다. 공자의 발언에는, 인의를 닦음으로써 사람이 마음그릇을 넓혀 초나라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것은 논쟁의 방식이 아니라 덕쟁의 방식을 통해 보편성에 이르는 길이다. 논쟁과 덕쟁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둘은 어느 것 하나가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오늘날 보더라도 둘 다 유효한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덧 ‘덕쟁’을 잊은 시대에 살고 있다. leess@hani.co.kr

끊임없이 의심하며 보편타당한 진리 추출 일상의 관습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일종의 습관이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마음의 습관들”(habits of the heart)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이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언어를 쓰는 겨레마다 서로 다른 “사유의 습관들”(habits of thinking)이 언어에 남아 있다.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은 논쟁과 논박을 통해 가장 보편타당한 진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들의 사유의 습관들은 이후 서양 철학의 뿌리깊은 전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칠십 노인이 될 때까지 등에(날파리)처럼 사람들을 성가시게 만들며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참된가?” “당신의 판단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묻고 다닌 일에서부터, 평생을 시계추처럼 살다간 이마누엘 칸트가 쓴 기념비적으로 난해한 저작 <순수이성비판>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결국은 “인간이 무엇을 (진실로) 알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서양 철인들의 사유의 중심에는 ‘인식론’(epistemology)의 문제가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고대 중국인들의 ‘사유의 습관’은 좀 달랐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상적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무엇을 알 수 있느냐”보다 “무엇이 될 수 있느냐”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상대방이 어떻게 사고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논박을 벌였다면, 공자나 노자 등 중국의 철인들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의 중심 사상인 ‘어짊’(仁)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했다. 노자 또한 자신이 말하는 길(道)을 들으면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리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가령 “가장 수준이 낮은 선비는 길에 대해 들었을 때 깔깔대며 비웃을 것이고, 중간치 선비는 반신반의할 것이고, 최상의 선비는 힘써 실천할 것”이란 말이 그런 예이다. 서양 철학의 중심에 ‘인식론’이 있다면, 동양 철학의 중심에는 ‘수양론’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양론이라고 하면 좀 모호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인식이든 수양이든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참된 인식은 사고가 치밀하게 변해야 얻을 수 있고, 수양은 사람됨이 변해야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논어>에는 “人不知而不온(心+溫에서 삼수변 뗀 것), 不亦君子乎?”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대부분의 번역서들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옮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성내지 않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꾹 참으면 된다. 그러니 이 구절은 이렇게 옮기는 게 온당할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이 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성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성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아마도 마음공부를 많이 해야 하겠지만. 고대 중국의 철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과 달리 ‘인식’보다 ‘수양’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누구의 논리가 더 타당한가를 두고 싸운 게 아니라, 누가 더 마음그릇이 넓은가를 두고 경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논쟁’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고대 중국인들은 ‘덕쟁’(德爭)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권력자를 위협하던 사유의 습관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은 ‘개념’을 사다리 삼아 보편성을 얻는 길을 걸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법’보다 우선시하고, ‘진실’을 ‘관습’보다 높은 곳에 두었다. 이런 ‘사유의 습관’은 현실의 권력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권력자들은 “국가보안법이 있으니까 이를 어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근본적으로 “국가보안법이 과연 정의로운가”를 등에처럼 따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진실과 정의, 아름다움 등의 추상 개념을 사다리 삼아 보편적인 사유에 도달하려 했다. 이 전통이 견유학파와 스토아학파에 이르러 세계시민주의로 연결된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는 자신이 어떤 시민권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오히려 자랑했다. 그는 “인간은 우주의 시민”이므로 도시국가에 대한 사랑(애국심)은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인간은 시민이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서 존엄하다”는 것과, “삶의 최고의 가치는 국가를 위해 살거나 죽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고결하게 사는 것, 신을 기쁘게 하며 사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유의 습관’은 달랐지만, 고대 중국의 철인들도 같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의 일화를 읽어보자. 춘추시대 초나라 공왕(共王)에게는 ‘번약’(繁弱)이라는 활이 있었다. 초왕은 여기에 ‘망귀’(忘歸)라는 이름의 화살을 걸어 운몽(雲夢)이란 사냥터에서 교룡과 야수를 사냥하다 그만 활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신하들은 사냥터를 까뒤집어서라도 이 천하의 명궁을 찾자고 했다. 그러나 초왕은 이렇게 멋을 부렸다. “그만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초나라 사람이 그것을 주울 것이다. 굳이 찾아 무엇하겠는가?” 여기까지는 왕이 역시 신하보다는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공자(孔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평했다. “초나라 왕이 아직 인의(仁義)를 덜 닦았다. 그냥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으니 사람이 그것을 주울 것이다’라고 하면 되는 거지, 하필 초나라를 들먹거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 명가(名家)의 대표적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공손룡(公孫龍)의 글을 모아놓은 <공손룡자>(公孫龍子) 첫머리에 나온다. 시야를 넓히는 덕쟁은 어디로 사라졌나 “로마 시민보다 우주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나, “초나라 사람을 아끼기보다 천하를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은 완전히 닮은 꼴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사유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초나라 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초왕의 발언을 반박하는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인간’ 개념에 이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초왕이 아직 인의(仁義)를 덜 닦았다”(楚王仁義而未遂也)는 표현을 썼다. 공자의 발언에는, 인의를 닦음으로써 사람이 마음그릇을 넓혀 초나라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것은 논쟁의 방식이 아니라 덕쟁의 방식을 통해 보편성에 이르는 길이다. 논쟁과 덕쟁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둘은 어느 것 하나가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오늘날 보더라도 둘 다 유효한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덧 ‘덕쟁’을 잊은 시대에 살고 있다. lees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