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철학카페 35 ㅣ 현대미술 일반
지역·종교 등 뛰어넘는 타자와의 만남… 초월적 체험으로 예술적 지평 넓혀
인간에게 바깥이 없다면 그것만큼 갑갑한 일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내부가 어떤 한계에 부딪쳤을 때 사람들은 바깥을 찾는다. 바깥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움을 접하게 되고, 그 새로움으로부터 더욱 창조적인 성과들이 산출된다. 문화사에서 이렇게 타자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예는 무수히 많다.
추상표현주의와 그 이후 미국에서 전개된 여러 미술 작업들은 비서구와의 만남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영감을 길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프랑스 화가들이 일본 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피카소 등은 아프리카 예술의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50년대 이후의 미국 회화에서는 이런 비서구와의 만남이 매우 다채롭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사실상 매우 모호한 단어인) ‘동양’이라고 부르는 것과의 만남이 현대 예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에는 크게 두 요소가 동시에 작동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철학’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종교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그런 사상들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 창작에 구체적으로 관련되는 사항들(예컨대 서예)이다.
신비적 종교 사상가들의 깊은 영향 20세기 미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상당수의 미술가들이 영향받은 사상들이 대개 수준 높은 철학들이 아니라 다분히 신비적인 종교적 사상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그노시스파 사상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육체와 영혼의 확연한 이분법,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저주, 또 영혼의 세계에서 온 인류가 하나로 합일한다는 초월사상 등이 그노시스파 사상을 특징짓는다. 마크 토비가 빠져들었던 바하이교(Bahaism) 또한 이와 유사한 생각을 포함하는 종교였다. 바하이교는 인간 개개인의 개체성은 환상에 불과하며 사실상 대(大)인간이라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발상을 제시했다. 그것은 곧 그노시스파가 말하는 초월, 즉 모든 영혼들이 육신을 떨어버리고 피안의 세계에서 하나로 합친다는 생각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현대 미술에 끼친 종교의 영향에는 ‘초월에의 의지’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초월에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는 작품으로는 로스코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로스코의 화면은 사람들을 강한 종교적 체험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저편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태양빛처럼 그의 화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편’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모든 초월적 체험은 죽음과 관련된다. 초월이란 자신의 개체성을 버리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는 것이다. 개체성을 버린다는 것은 육신을 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죽음이 있어야만 신적인 세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봉신방’(封神榜)에서 볼 수 있듯이, 초월적 세계의 성립은 현실 세계에서의 죽음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월적 경험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로스코의 행위는 나름대로의 일관성에 입각해 있었다고 해야 하리라. 뉴먼 역시 카발라(=유대신비주의)에 심취했으며, 이 점에서 칸딘스키로부터 줄곧 이어져온 정신적 끈을 잇고 있다(뉴먼의 수직선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수직선을 잇고 있다). 20세기 화가들이 왜 유독 그노시스파나 카발라에 매료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것 같다. 그노시스파와 카발라에 매료된 화가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분위기의 영향도 존재했다. 예컨대 뉴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미국의 타자들, 즉 인디언 문화나 멕시코 문화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인디언들은 처음부터 재현의 예술을 발전시키지 않았으며 매우 상징적인 그림-문자를 통해서 자신들의 종교적 관심사를 표현했다. 또 멕시코 예술, 특히 그들의 벽화는 우선 거대하다는 점에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거대한 색면을 연상시킨다. 또 동북아 사상 역시 추상표현주의 이후 미술사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선(禪)이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본격적이고 이성적인 철학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초월적 사상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점에서 동북아 사유의 영향을 본격적이고 철학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대중적이고 신비주의/종교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의 구체적인 기법에도 비서구 문화는 여러 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클라인 같은 사람은 특히 서예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아 서예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당대 대부분의 회화가 ‘올오버’(all-over)의 기법(화면이 몇개로 등분되지 않고 전체가, 나아가 화면 바깥까지도 한덩어리를 이루게 하는 기법. 폴록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다)을 사용했지만, 어떤 회화들은 서구 회화의 대전제를 무너뜨리고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회화에 여백을 둔다는 것은 서구 회화에서는 낯선 개념이었고 따라서 이런 시도는 미술사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마더웰의 <스페인 공화국에 바치는 비가>(1953∼54)도 일정 측면에서는 이러한 영향을 반영한다. 마더웰 역시 서예에 깊이 심취한 화가였다.
또 화면을 흑백으로 그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색을 회화의 중심으로 생각한 서구인들에게 흑과 백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루이스의 <알파-파이>(1961)는 물론 여러 가지 색을 쓰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양의 난(蘭)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한가운데가 완전히 비어 있으며 선들이 양쪽으로 그어져 있다. 면보다는 선이 강조되며, 여러 선들이 평행으로 그려져 있다. 클라인의 <뉴욕>(1953) 역시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클라인의 그림은 매우 강한 터치로 그려져 있고 또 가녀린 곡선보다는 단호한 직선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자의 미학을 개척하고 있다.
동·서의 만남은 무엇을 남겼는가
현대 미술사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매우 의미 있는 새로운 지평들을 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양 화가들이 심취했던 것은 사실 그 자신들의 유대 전통이며, 거기에 다른 문화적 영향들이 가미되었다고 해야 하리라.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철학적 영향들이 대개 매우 초보적이고 다소 대중화된 그런 사상들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회화와 철학의 관계는 서로에게 직접 끼쳐진 영향을 통해서보다는 오히려 같은 시대에 대한 유사한 느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지점에서 더 두드러지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사진/ 마크 로스코의 <파랑 속의 하양과 초록>(1957). 뉴욕, 개인 소장.
신비적 종교 사상가들의 깊은 영향 20세기 미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상당수의 미술가들이 영향받은 사상들이 대개 수준 높은 철학들이 아니라 다분히 신비적인 종교적 사상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그노시스파 사상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육체와 영혼의 확연한 이분법,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저주, 또 영혼의 세계에서 온 인류가 하나로 합일한다는 초월사상 등이 그노시스파 사상을 특징짓는다. 마크 토비가 빠져들었던 바하이교(Bahaism) 또한 이와 유사한 생각을 포함하는 종교였다. 바하이교는 인간 개개인의 개체성은 환상에 불과하며 사실상 대(大)인간이라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발상을 제시했다. 그것은 곧 그노시스파가 말하는 초월, 즉 모든 영혼들이 육신을 떨어버리고 피안의 세계에서 하나로 합친다는 생각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현대 미술에 끼친 종교의 영향에는 ‘초월에의 의지’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초월에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는 작품으로는 로스코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로스코의 화면은 사람들을 강한 종교적 체험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저편에서 은은하게 비치는 태양빛처럼 그의 화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편’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모든 초월적 체험은 죽음과 관련된다. 초월이란 자신의 개체성을 버리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는 것이다. 개체성을 버린다는 것은 육신을 버린다는 것을 뜻하며, 죽음이 있어야만 신적인 세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봉신방’(封神榜)에서 볼 수 있듯이, 초월적 세계의 성립은 현실 세계에서의 죽음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월적 경험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로스코의 행위는 나름대로의 일관성에 입각해 있었다고 해야 하리라. 뉴먼 역시 카발라(=유대신비주의)에 심취했으며, 이 점에서 칸딘스키로부터 줄곧 이어져온 정신적 끈을 잇고 있다(뉴먼의 수직선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수직선을 잇고 있다). 20세기 화가들이 왜 유독 그노시스파나 카발라에 매료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것 같다. 그노시스파와 카발라에 매료된 화가들

사진/ 모리스 루이스의 <카프(Kaf.)>(1959~60). 뉴욕. 키미코 앤존 G. 파워스 컬렉션.









